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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수원화성 여행
황윤
책읽는고양이 2024.11.04.
베스트
역사와 문화 교양서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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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 정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영조

국립중앙박물관
불이본
사도세자의 복권
규장각
장용영

2. 화성행행도 감상

동덕회
정조의 탕평책과 채제공
채제공의 독상시절
채제공 vs 김종수
화성행행도
건륭제의 강남순행과 여러 행사

3. 용주사와 서양화법

용주사 대웅보전 삼세불회도
정조와 불교
연행사와 천주당
낭세녕과 서양화법
초상화와 서양화법

4. 융건릉

버스를 타고
사도세자와 융릉
정조와 건릉
송시열이 본 미래
정약용

5. 수원화성에 들어서다

남문시장
국수를 먹고
정약용의 설계
봉돈
수원화성 건설 책임자 조심태

6. 본격적인 수원화성 구경

창룡문과 벽돌
또 다른 방어시설, 현안
동북노대
동북공심돈
정조와 동장대
실무책임자 이유경

7. 성 밖으로 나가다

포루(?樓)와 포루(砲樓)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꿩 치(雉)
화홍문을 지나

8. 장안문과 중국

장안문
장안문의 방어 시스템
행리단길
중국 성의 모습
정약용 발명품
서장대에 오르다

9. 정조의 꿈

도시의 자급자족
장용영의 어마어마한 자금
수원화성을 세운 진짜 목적
힘써 모아둔 자산의 결말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1

작가. 소장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마니아. 대학에서는 법을 공부했으나 역사와 박물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역사 자료를 찾고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감상, 고증, 공부하는 것이 휴식이자 큰 즐거움이다. 역사 인물, 고미술에 관한 교양을 대중화하고자 글을 쓴다. 삼국 시대와 신라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저서: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 여행》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도자기로
작가. 소장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마니아. 대학에서는 법을 공부했으나 역사와 박물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역사 자료를 찾고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감상, 고증, 공부하는 것이 휴식이자 큰 즐거움이다. 역사 인물, 고미술에 관한 교양을 대중화하고자 글을 쓴다. 삼국 시대와 신라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저서: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 여행》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도자기로 본 세계사》 《박물관 보는 법》 《컬렉션으로 보는 박물관 수업》 《중국청화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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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394g | 113*184*29mm
ISBN13
9791192753348

출판사 리뷰

정조는 어떻게 원대한 꿈을 이뤄나갔는가
수원화성을 통해 보는 권력 역학, 그리고 빈틈없는 정조의 실행력

영조에 이어 24세의 나이로 즉위한 정조는 처음 발표한 윤음(綸音)에서 선대왕인 영조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서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재위기간 내내 영조와 약속한 범위 내에서 사도세자의 추숭과 왕권 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영조와 정조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인 탕평책. 탕평책이 필요한 시대란 곧 세력다툼을 전제로 하는 만큼 사도세자의 생물학적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정조의 입지가 평탄치 않음을 시사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처지의 정조가 원대한 꿈을 실현해나가기 위해 어떠한 명분으로 영조와의 약속을 깨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였는지 상세히 풀어내고 있다. 맞닥뜨린 현실과 꿈의 간극을 정조가 어떻게 좁혀나갔는지 살펴보는 과정은 수원화성을 살펴보는 고고학 여행의 백미다.

청나라로부터 실익을 얻어내면서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 정조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정조의 유연성과 적극성

청나라가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며 명나라 전성기를 훌쩍 능가하는 탄탄한 국력을 보여준 시점에도 조선의 전반적인 정서는 병자호란 이후 이어지던 청나라에 대한 적대감과 이미 멸망한 명나라에 대한 소중화사상이 여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나라의 문화와 농업 기술 및 상업 발달 등을 적극적으로 배워 조선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실학이라는 학문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조는 즉위 초부터 청나라와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즉위 초반인 1780년, 건륭제 70세 축하를 위해 사신을 파견하면서 황제의 조선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건륭제 75세, 즉위 50주년을 기념한 천수연을 앞둔 연행사 파견에서도 특별히 70이 넘은 강세황을 사신으로 결정한 것은 정조의 적극적인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정조의 뜻대로 강세황은 조선을 대표하는 예술인답게 청나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여 양국 관계에 기여했다.

당시 연행사에 뽑힌 이들이 북경에 가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는 천주당이었다. 천주당은 중국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유럽으로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창구였기 때문이다. 특히 천주당에 걸린 서양화법의 그림은 신문물의 상징과도 같았다. 화가인 강세황의 파견은 이점에서도 탁월한 선택임을 입증한다.

1789년 정조는 도화서 화원 김홍도와 이명기를 연행사에 합류시켜 새로운 문물을 마치 사진 찍듯 그림으로 그려 정조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급변하는 시대에 새롭고 다양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군주였다. 연행사에서 돌아온 후 1790년 김홍도, 이명기가 감동(감독) 하면서 서양화법으로 그린 용주사 ‘삼세불회도’(140쪽)를 보면 새로운 문물을 반영한 정조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용주사는 18세기 조선 불교 미술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정조는 건륭제와 관련한 행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개최되는지 사신으로부터 보고를 받으며 상세히 알고자 노력하여 이를 왕권 강화의 계기로 활용했다.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13차례 방문, 어머니 혜경궁의 60세 생신을 기념하여 함께 수원화성을 방문한 1795년 행사를 책으로 정리하여 의궤로 남겼고, 특별히 기록화까지 그리도록 해 화원들이 병풍 8폭의 작품을 남긴 것. 수원화성에서의 군사훈련과 수원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과거시험 개최, 노인공경 행사 및 유교사당 참배 등의 행사가 바로 건륭제 행사를 벤치마킹한 예이다. 이는 정조가 여러 행사를 통해 황제 권력을 당당히 선보인 건륭제의 모습을 활용하여 현륭원과 수원화성 방문을 왕권강화로 연결시킨 한 예이다.

《화성성역의궤》와 비교하여 수원화성을 보는 것은 단순한 답사 이상의 의미
거대한 성곽에서 즐기는 디테일한 고고학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본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원본을 유지한 건축물만 등재 가능하지만, 수원화성은 조선 정조 때 축성된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이 파손·손실되었다가 다시 보수·복원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수원화성에 대한 청사진이 모두 담겨있는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의궤 덕분에 수원화성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게 된 만큼 《화성성역의궤》와 더불어 수원화성을 살펴본다는 것은 단순한 답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의궤 속 건물과 실제 건물을 비교, 감상하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역사적 배경 및 군사적 쓰임과 그에 따른 설계의 묘미를 짚어주는 대목은 병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흥미롭게 빨려드는 흡입력을 지녔다.

기록에 의하면 수원화성은 완공까지 10년을 예상했으나 2년 8개월 만에 획기적으로 완공되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준비의 결과였다. 여기에는 우선 처음 설계를 맡은 정약용의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 검토와 거중기 등 기술적인 뒷받침을 들 수 있다. 저자는 당시로서는 앞선 문화였던 중국의 성곽을 연구하여 적극적으로 수원화성에 적용한 사례 등을 꼼꼼히 기술하여 정조가 어떠한 성을 만들고자 했는지 이해를 돕는다. 이렇듯 이 책은 문헌조사, 기술력, 지도력, 경제적인 지원 등의 총체적인 뒷받침 속에 완공된 수원화성을 소개하면서 풍부한 문헌과 화보 자료를 동원해 다각적인 이해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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