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45세다)는 이미 유언장을 써 두었다. 내가 처음 유언장을 쓴 것은 39세로, 아버지의 죽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7년 전에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렇게 부모님을 모두 여의자 나도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반적인 생각대로 세상에 남은 사람에게 쓴 것이었지만 유언장을 쓰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발견했다. 분명 유언장은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 쓰는 것이기는 해도 그것을 쓰는 과정은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는 사실이었다!
유언장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경제적인 의미에서의 자산, 인적 네트워크 등)을 다시금 확인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관(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을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남은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작업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을 말하거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거의 터부시되었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반드시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허둥대며 유언장을 쓰기보다는 아직 인생에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유언장을 써 보는 것은 자기의 인생을 위해서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까?---pp.8~9
‘누구에게나 인생은 정해진 시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새삼 환기시켜 주는 것이 ‘유언장’이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마치 앞으로 무한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자신을 때때로 꾸짖는다는 의미에서도, 나아가 인생의 고비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우선 순위를 확인한다는 의미에서도 유언장의 존재는 분명히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벌써부터 죽을 걱정을 한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정된 인생은 되는 대로 사는 인생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허둥대며 대안을 생각하는 인생보다 훨씬 마음 편하고 알차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p.28
유언장을 쓰다 보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다시 평가하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인간 관계를 크게 나누면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장기적으로는 부모와 자녀, 단기적으로는 함께 일하는 상사와 동료, 아이들과 관련된 만남, 상황에 따라서는 이웃 등)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배우자나 애인, 친구, 상황과 처지에 따른 업무 상대 등)로 나눌 수 있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가’, ‘선택할 수 없는가’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와는 사귀고 누구와는 사귀지 말 것인지 결단을 내리고, ‘선택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또, 인간관계에는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기쁨은 물론 슬픔과 고통도 공유할 수 있는 둘도 없이 소중한 관계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자신의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결코 깨닫지 못할 때가 많아 의식적으로 자신과 그 사람의 관계를 되물을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되묻는 작업이 바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까’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자기 주변 인물의 뒷조사가 되기도 한다.
통상, 자기 주변의 인간관계를 냉정하게 평가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이런 주제를 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pp.34~35
문제는 왼쪽 위에 위치한 ‘싫어하지만 가치가 높은’ 클로버 그룹이다. 이 그룹에 속하는 사람은 능력은 많지만 인격적으로 대하기는 싫은 사람과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이 그룹을 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사람이 지닌 인맥과 정보를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때 과감하게 머리를 숙이는 방법. 또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지닌 자원은 매력적이지만 별로 존경할 것 없는 상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힘을 포기하는 방법이다. 어느 쪽이 좋은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왼쪽 아래의 ‘싫어하는 데다가 가치도 낮은’ 스페이드 그룹이다. 이 그룹은 정확히 말해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할 뿐 가치 없는 존재다. 가능한 인연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와 같은 그림표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심리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표를 만들고 있다. 그것을 분명한 형태로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려 보면 자신의 인적 자원 상황을 알 수 있다.---p.62
이 책에서 다루는 유언장은 ‘법적인 유언’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재평가하기 위한’ 것 두 가지다. 후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각서이므로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가 아닌가는 묻지 않는다. 형식도 완전히 자유다.
그러나 ‘법적인 유언’에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유언자가 죽은 뒤 법률(민법)에서는 유언자의 뜻이 그대로 실현되도록 유언서(법률적으로는 ‘유언장’이 아니라 ‘유언서’나 ‘유언’이라고 한다)의 효력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 유언에 쓰여 있으면 자신이 죽은 뒤, 가령 유족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실제로는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언서에 써 두기만 하면 모든 일이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유언은 유언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이므로 상대가 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 ‘형제 사이가 좋다’는 것도 메시지는 될지 모르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으므로 법률상 효력과는 무관하다. 일반적으로는 법적인 효력이 있느냐 아니냐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쓸데없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민법에서는 유언사항을 정하고 있다.---pp.82~83
이 책에서 생각하는 유언장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사용할 정보’, ‘자신이 죽은 뒤에 실무상 필요한 정보’, ‘남은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렇게 3부로 구성해서 생각할 수 있다.
구체적인 항목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제1부 …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사용할 정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 명단
·재산 목록
·인생의 중장기계획
·목표나 좌우명
·건강 기록
·자신만의 전화번호부
제2부 … 자신이 죽은 뒤에 실무상 필요한 정보
·법적인 유언이 있다면 어디에 보관했는가
·죽음을 알리고 싶은 사람과 기관 연락처,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 명단
·사무 절차가 필요한 일의 목록
·시신 기증과 장기 제공을 할 경우 연락할 곳
·장례식을 할 것인가, 장례식을 할 경우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사망 광고를 낼 경우, 그 매체와 내용
제3부 … 남은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
·일반적인 이별 메시지
·상대를 특별히 정한 이별 메시지
·(만일 있다면) 법적인 유언 ---pp.102~103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 목록
이것은 워크시트ⓕ ‘인맥 그림표’, ⓖ ‘신세를 진 사람 목록’을 이용해서 만든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다시 의식할 기회는 좀처럼 없는데, 이때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써 두자. 물론 특별히 덧붙일 사람이 없다면 ‘인맥 그림표’, ‘신세를 진 사람 목록’을 그대로 활용해도 상관없다.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신세 진 일은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 완전히 잊어버리기 쉽다. 이렇게 해서 ‘소중한 사람’을 손꼽아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싹트고 다음은 내가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이 싹튼다.
재산 목록
은행 계좌는 무슨 일이 있을 때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알아보려고 하면 번거롭다. 그럴 때 워크시트ⓗ 2에서 만든 ‘계좌 목록’이 큰 활약을 한다. 금융기관이나 지점명, 계좌 번호 일람표로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또 부동산은 워크시트ⓗ 1의 ‘재산 목록’에 대출금 잔액뿐만 아니라 빈곳에 중도 상환할 예정이거나 실행 기록, 모두 상환할 예정일 등을 써 두어도 좋다.
어쨌든 이런 자료를 늘 가까운 곳에 두면 자신의 자산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pp.106~107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유언장을 쓰면서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새출발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인생의 폐업’을 리허설함으로써 현실로 돌아왔을 때 ‘사실 아직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유언장을 쓰는 것은 ‘작은 새출발’이다. 물론 정말로 인생을 맨 처음부터 다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바탕으로 아직 손대지 않은 시간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남은 시간은 더욱 즐겁고 충실해지지 않을까?
1년, 1달, 하루 24시간처럼 시간에 ‘눈금’이 새겨져 있듯이 인생에도 ‘마디’나 ‘눈금’이 있다면 좋겠다. ‘유언장’이란 그 ‘눈금’이며 나아가 자기 가치관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각성제’와 같은 효용도 있다.
---pp.139~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