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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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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7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70쪽 | 555g | 165*214*20mm
ISBN13 9788989722694
ISBN10 898972269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에스키모가 된 밥 율
짐과 그의 아들 형제
흑기러기의 도박
카리부의 여행을 찾아서
고래의 사람들
카메라를 훔친 이리
어떤 사건
이른 봄
셀리아 헌터
알래스카의 사자
맥코믹 집안 사람들
오카 마사오 씨
버블넷 피딩
알의 결혼식
포틀래치
라운드 미드나이트
열매가 익는 계절
케니스 누콘 생각
새틀라이트 무스
어느 무스의 죽음
112살의 월터
한겨울의 알래스카 철도
오로라가 춤추는 밤
쉬스마레프 마을
에필로그
책을 내며
해설_ 하늘과 바다와 들판을 건너는 바람 사이로
특별수록_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원고
약력_호시노 미치오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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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과 자원개발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자연이 대등하게 존재하는 ‘위대한 땅’ 알래스카

에스키모 어로 ‘위대한 땅’ 이라는 뜻의 알래스카. 그러나 이 땅은 미국의 개발계획과 핵기지 건설프로젝트, 에스키모 부족들의 미국사회 통합 문제,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갈등, 토지소송 등, 굴곡 많은 역사를 지녔으며, 최근 알래스카의 생태계보존구역에서 석유탐사를 허용하는 개발법안의 통과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지역의 붕괴는 여전히 험난한 알래스카의 앞날을 예고한다.

변화와 혼란의 중대한 과도기에 서 있는 알래스카의 사람들과 자연, 그것을 기록할 운명이었을까.
호시노 미치오는 그 땅에서 인간과 자연의 숙명을 발견했다. 19세의 호시노 미치오는 헌책방들이 늘어선 도쿄의 간다거리 한 원서서점에서 발견한 알래스카 사진집. 석양이 베링 해로 떨어지려고 하는, 역광이 아름다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편지를 썼고, 알래스카 끝자락의 쉬스마레프 마을을 찾아갔다.

20여 년간 그가 뿌리내리고 발견한 알래스카는 다른 곳이었다. 자원개발의 대상이나 정복할 땅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극한의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곳,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 단순하면서도 무심한 순리를 몸으로 느끼게 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야생의 자연’ 혹은 미개척지라는 서구적 통념의 알래스카가 아니라, 생명과 생명의 대등함과 조화라는 의미를 날것 그대로 던져주는 땅이었다.

어느 날 툰드라 저쪽에서 나타나 툰드라 너머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카리부. 그 발굽소리는 알래스카 들판이 품은 생명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드는 소리와도 같다. …강풍이 잠깐 힘을 늦추는 순간 블리자드의 눈보라 베일이 걷히자, 강을 건너려고 하는 카리부의 행렬이 역광 속에서 실루엣으로 떠오른다. 카리부들은 저마다 눈보라 속에 낮게 몸을 도사리고 강풍을 정면으로 받고 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이렇게 카리부들은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북극의 설원을 여행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카리부 떼를 찾아서>

끝이 보이지 않는 카리부 떼, 물보라를 내뿜는 고래, 연어를 덥석 무는 곰, 그리고 형체 없는 바람의 뒷모습, 백야의 태양… 이 모든 것들 속에 인간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어떤 생명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도, 카리부도, 별조차도 무궁한 저쪽으로 시시각각 여행을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한 땅. 사람들은 생존과 존엄을 위해 매일매일 정직하게 일하고, 자연 속에서 살고, 바람처럼 나이를 먹고, 어느 날에는 죽음을 향해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는, 사람들은 이제 위협받고 있다. 이를테면 호시노는 여전히 전통적인 에스키모의 방식을 고수하는 한 늙은 인디언을 떠올리며, 이들의 삶에 일어날 변화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것은 우월적인 시선과 평가가 아니라, 진지하고 따뜻한 마음, 대등한 존재에 대한 아름다운 시선이다.

때로 그는 언제 이동할 땅이 인간에 의해 파괴될지도 모른 채 여전히 극북의 들판을 여행하는 카리부 떼를 만나기도 하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위협받고 자부심을 빼앗겨버린 에스키모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결혼식에서는, 모든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이 알카트라즈 섬에 모여 이 섬이 조상이 물려준 신성한 대지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알카트라즈 섬을 점령한 사건의 주동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사회복지연금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알코올중독자 에스키모들은 ‘게으르고 무지한 자들’이지만, 실은 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생활의 중심이 된 카리부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에스키모가 된 한 백인의 말을 통해 전달한다.

“예전에는 에스키모 생활의 중심에는 카리부 떼가 있었고, 카리부가 전부였어. 에스키모는 철따라 카리부를 뒤쫓았지. 사람들은 카리부와 함께하면서 정신적인 충만을 얻었어. 거기에는 완성된 생활이 있었던 거야. 그러나 언젠가부터 서양문명과 함께 화폐경제가 들어와 사람과 카리부의 관계가 약해지고, 사람들은 정신적인 충족을 점차 새로운 가치관에서 찾게 되었지. 하지만 그 새로운 가치관이란 것이 카리부하고는 달라서 아무리 쫓아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완성된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가 버렸지.” -에스키모 밥 율, 29쪽

북극의 들판을 여행하는 카리부,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때면 나는 늘 한 늙은 인디언을 생각한다. 케니스 누콘. 마을을 떠나 유콘 지류에서 혼자 사는 아사바스칸 인디언. 아마 케니스는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최후의 인디언일 것이다. 카리부 떼는 가을철 계절이동 때면 케니스가 사는 들판을 지나간다. 유전 개발은 그 카리부 무리의 앞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케니스는 그런 사정일랑 전혀 알지 못한다. 시대의 소용돌이는 카리부에 의존하는 이 인디언의 삶을 돌아볼 틈도 없이 휘몰아갈 것이다. (중략)

알래스카가 아직 개척지였던 시절, 자유를 찾아 이 땅에 들어와 들판에 정착한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불쑥 불법침입 통고장이 날아든다. 위대한 알래스카. 이제 그곳에서 한 시대가 확실하게 막을 내리려고 한다. ―<케니스 누콘 생각>

그리고 자신의 집이 필요하면 가지라고, 담백하게 말하는 한 에스키모 노인의 일화는 단순히 무소유의 중요함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가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것, 보다 쉬운 살림으로 옮겨가는 것을, 거기서 살지 않는 사람이 어찌 비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들의 살림을 오래된 박물관 속에 가두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간다. 마을에는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케니스의 집도 있다. 난방, 주방, 수도,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들어와 살 사람만 기다리는 집이었다. 십 년쯤 전에 지어진 그 집에 케니스는 지금까지 거의 묵은 적이 없다. “쉬차(친구), 집이 필요해? 내 집 가져.”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케니스 앞에서는 나라의 복지사업도 우스꽝스러워지고 만다. 케니스는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못쓰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케니스 누콘 생각>



극한의 땅에서 조우하는 자연의 장대한 아름다움, 호시노 미치오의 아름다움

무엇보다도 호시노 미치오는 이 광활한 자연을 한껏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통해 그 마음을 우리에게도 전해준다. 모든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의 카메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찬란한 아름다움과 당당함을 한껏 보여준다. 그것을 위해 데날리 산 위에서는 춤추는 오로라를 찍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빙하지대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몇 달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경이로운 자연 앞에 숨죽이며 이들을 마음에만 담을 줄도 알았던 드문 사진가였다. 그는 이 광경 앞에서 오히려 카메라를 내던지고, 자연과 생명의 존재에 그저 귀를 기울였다. 수많은 사진가들이 알래스카의 장관을 필름에 담았지만, 진정 자연과 인간을 이처럼 이해하고 연민하며 작업한 결과물은 드물다. 그러기에 그의 글과 사진은 더욱 빛을 발한다.

툰드라를 가득 메운 전설 같은 카리부 떼. 그것이 바로 지금 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준비하고, 벌떡거리는 가슴을 꼭 누르면서 가만히 기다렸다. 수만 마리에 이르는 무리가 시야를 금세 채워나간다. 어미와 새끼가 서로 부르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그 화음들이 점차 사위를 가득 채웠다. …결국 나는 촬영을 포기하고 툰드라 위에 드러누우며 카메라를 내던졌다. 언젠가는 거짓말 같은 전설이 될지도 모르는 이 광경을 내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었다. 시야는 온통 카리부의 바다였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혹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바닷속에서 수만 마리의 카리부가 울려내는 발굽소리에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카리부의 여행을 찾아서>

이 이야기들은 그가 책에서 읊조리듯이, “언젠가 내가 늙었을 때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알래스카에서 말이야, 어느 날 밤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단다…, 이리 한 마리가…”라는 부분에 결국 이르게 된다.
그는 이제 없다. 죽어서 알래스카의 바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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