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마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폼에 머문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 pp.52-53 김정환
창비시선 200권을 돌아보면서 바로 지금이야말로 시가 달라져야 할 시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치열한 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변화한 시대의 참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지 대중에게 영합함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 p.144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 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듯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에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
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 가끔...... 전기가...... 나가도...... 좋았다......
우리는......
--- p.87
나가자 하고 단호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렇게 나갈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작은 사회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는 마야꼬프스끼적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시인은 열정가 그 자체가 아니라 열정을 동경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니체적 발상도 있었다.
--- p.139
그러나 이 핀잔은 일견 비슷하면서도 더 큰 데서는 서로 다른 정서와 리듬을 갖고 있는 점을 간과한 잘못된 읽기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 생각던대 그 때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시와 실천, 또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싶다. 창비시선에 참여한 여러 시인들은 시는 곧 실천 또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또 여러 시인들은 바로 그럴 수 없는 데 괴로워했던 것 같다.
나가자 하고 단호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렇게 나갈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작은 사회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는 마야꼬프스끼적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시인은 열정가 그 자체가 아니라 열정을 동경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니체적 발상도 있었다.
--- p.139
<서울역 그 식당>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 p. 120
<서울역 그 식당>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