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몸은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타 사라지지만 업은 계속된다.그리고 다시 태어날 떄 이업이 어떤 조건과 맞아 떨어져 미국 사람, 독일 사람,폴란드 사람으로 환생하는것이다.결국 우리의 인생이란 전생의업과 현생에서 만나는 조건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신동이었던 모차르트를 생각해 보라.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압보 보는법, 악기 다루는 법을 스스로 깨우쳤다. 그는 분명히 전생에 악기를 아주 잘 연주 하느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정신적 습관,즉 업을 만들었을 것이다.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실제로 음악을 아주 좋아했고, 그의어머니 역시 음악을 좋아했다. 모차르트의 전생의 의식은..
--- p.107
존재하지조차 않는 것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는가. 이미 고통이 없는데 어떻게 고통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을 사라지게 하는가. 바로 그 때문에 반야심경에서는 '고통도, 고통의 원인도, 고통의 소멸도, 길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집멸도라는 4성제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이처럼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의 가르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 p.178
승보 (The Treasure of Sangha)
승보는 불도를 실천해 나가는 윤리적 측면이다. 부처님과 법을 통해 순간순간 바른 삶을 갈고 닦는 것이다. 삶이 바르다는 것은 나쁜 습관을 없애고 모든 생명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려면 중심이 잡혀서 마으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이 맑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면 중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저절로 보이게 되며, 삶의 바른 방향을 얻게 된다. 그것이 불교의 기본 가르침이다.
수행을 열심히 하면 순간순간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왜 내가 이것을 하지?"
"왜 내가 저것을 원하지?"
"내가 추구하는 이런 삶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모든 중생을 위한 것이냐?"
이렇게 된다면 순간순간 중새을 돕는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기본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p. 47
소승불교 수행도 좋고 대승불교 수행도 좋다. 선수행 역시 좋다. 나무묘법연화경 수행도 나쁜 것이 아니다. 옴마니반메훔이나 신묘장구대다라니 역시 좋다. 심지어 '코카콜라 코카콜라' 하는 것도 각자에 둘러싸인 조건, 상황, 견해를 버리고 굳은 결심을 가지고 왼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뭔가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100% 그냥 하는 것이다. 말은 중요하지 않다. 깨달음을 얻고 싶으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노력하는 마음이다. 오직 노력하고 실천하라.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p.208
바른 수행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 참선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질문을 깊이 하게 되면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 생각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하여 '오직 모를 뿐'을 깨달아 우리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모습이란 바로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라야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고 다른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해 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눈뜸'이다.
--- p.17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이 공함은 절대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공함은 전 우주의 기본적인 진리이다.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 ”이다. 그것은 완벽한 길이다.여기에는 옳다,그르다 하는 분별이 없다. 분별심이란 오로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대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이원성이 사라지면 절대가 우리 앞에 명확히 나타난다. 그것은 완벽한 실재의 세계다.
거듭 얘기하지만 모든 것은 공하다. 그리하여,모든 것은 절대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완벽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가 볼 때, 들을 때,냄새 맡을 때,만질 때,생각할 때,모든 것이 진리, 실상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진리 아닌 것이 없다. 해,달,산,강,나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이름과 모양 또한 진리이다. 과연 진리 아닌 것이 무엇인가? 소승불교는 모든 불교에서는 만약 우리가 완벽하게 이 전 우주의 공함을 깨닫는다면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현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옆에 벽을 가리키며) 여기 이 벽 색깔은 하얗다.
그것이 진리다. 저 창 밖에 나무는 푸르다. 그것이 진리이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이 역시 진리이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이것도 진리이다. (시계를 가리키며) 지금은 저녁 7시 15분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진리이다. 이 일상의 모든 것들이 진리인데도 이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들은 좋고 싫음을 스스로 만들고 좋고 나쁨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부처님은 대승불교의 궁극적 가르침인 대자대비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실상에 대해 바로 알기를 원했던 것이다. 핵심만을 다시 짚어보자. 소승불교의 핵심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맞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고통이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대승불교로 한 단계 넘어오면 사실 모든 것의 본질은 공하다.
고통조차도 본래 없으며,모든 것은 절대이고,완벽하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누군가 바로 당신 앞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다. 그것이 역시 진리이다.그렇다면 진리 아닌 것이 있는가? 이건 박사급 수준이다. 실체와 이름과 모양은 완벽하게 공하다.
--- p154-155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다.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진다. 붉은 공이 오면 붉은 공을 비추고 흰 공이 오면 흰 공을 비춘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초록색이다. 소금은 짜다. 설탕은 달다. 진리는 그 자체로 진리인 것이다.
--- p. 머리말 중에서
결론은 좋은 행동과 업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결론은 좋은 행동은 우리 업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착한 행동은 복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이 복 역시 업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것을 좋은 업이라 부른다. 하지만 좋은 업도 업은 업이다. 업은 여전히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다.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언제나 변한다. 그래서 좋은 업은 결국 기한이 다 돼서 나쁜 업이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업을 바꾸기를 원한다면 좋거나 나쁜 것을 만들지 말라. 그것이 올바른 수행이다. 우리 업을 어떻게 하면 다른 중생을 위하는 것으로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
--- p.24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