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이 책에는 소승불교,대승불교,선불교 등의 아주 많은 가르침들이 있으며, 기독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말과 단어는 단지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고통을 만들어낸다.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오직 모를 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동양도, 서양도,한국도,일본도,미국도 없다
“오직 모를 뿐”은 불교도 아니고,기독교도 아니고, 참선도,그 어느 것도 아니다.
미국인 제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불었다. “큰스님께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셨는데,왜 소승이니.대승이니,참선이니 하는 것을 구분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소승이니,대승이니,참선이니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불교조차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모를 뿐”을 가르칠 뿐이다. 알겠느냐?” 언제 어디서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 것에 얽매이지 말라. 뼈대는 오직 하나.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중생의 잠을 깨워 이 세상을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면 된다. 참선 수행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그것은 정적과 축복과 행복을 보장해 주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물론 때때로 이런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내면 속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태어날 때 나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 나는 어디로 가느냐이다. 삶에서 욕심,분노,무지를 좇는 데 사용한다.결국에는 변할 것,무산한 것들을 좇으며 산다.
감정과 고통에서 집착하고,어떨 때는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면서 그들의 전 삶은 고통의 바다를 떠다닌다. 우리의 업을 지배하지 못하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다.죽을 때(몸이 사라질 때) 무엇을 할 수있는가? 죽는 순간 당신의 업은 당신을 어딘가로 끌고 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아마 십중팔구 다시 고통의 바다에 태어 날 것이다. 모든 생각을 끊으면 “참 나”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 p.186-187
열심히 수행해서 오직'모를뿐 으로 돌아가면 이미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미 마음이 없는데 경전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아프지 않은데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즉,부처님의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예기이다.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으이 있다고 생각하고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한다.그 때는 약이 핑요하다. 경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경전들과 연구서들은 마음을 그저 설명하고 있다, 오로지 마음에 대한 어떤생각들을 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아주 맛있는 음식을 찍어 놓은 사진과 같다.아무리 잘찍어 놓아도 만족하지 못한다. 배고프면 직접 먹으면 된다. 그래야만 배고픔의 괴로움 에서 벗어 날 수있다. 그러나 선의 가르침은 '마음없는 마음'이다
--- p.33
어디든지 어느 순간에서도 진정한 방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태어날 때 나는 어디서 와서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이 세상에 나왔다. 또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떠난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사람들은 뭔가를 좇으며 산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에 집착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갈 수는 없는데 말이다. 태어날 때 모든 것은 이미 만들어졌다. 이생의 당신의 업은 전생에 이미 당신이 만들어놓은 업에 의해 결정된 상태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이 어떤 운명적인 것에 의해 이미 만들어졌다고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을 바꾸는 한 가지 길이 있다. 순간순간 마음을 지배할 수 있으면 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전생의 업이 만들어놓은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의 에너지를 바로 지금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움직일 때, 서 있을 때, 앉아 있을 떼, 누워 있을 때, 얘기할 때, 침묵할 때 어느 곳, 어느 때에나 어떤 마음가짐을 간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pp.113~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