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단검 위에 부딪치자 번쩍거리는 긴 칼날이 내 이마에 와서 꽂히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눈썹에 맺힌 땀방울이 단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 떨어지며,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을 가려버렸다. 내 눈은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마 위에서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와, 여전히 내 앞에 있는 칼에서 솟아오른 눈부신 칼날만이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내 속눈썹을 파고들어 고통스러운 내 두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흔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후텁지근하고 뜨거운 바람이 실려 왔다. 하늘은 활짝 열려 불길을 쏟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온몸이 긴장돼 권총을 꽉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자루의 매끄러운 배가 만져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둔탁하고 귀를 먹게 하는 소음 속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에서 해방되었다.---p.88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마치 한 클럽에서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끼리 반갑게 만나고 있는 모습 같았다. 나는 왠지 내가 침입자 같은, 필요 없는 존재 같은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그 기자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 일이 잘 돼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고맙다고 하자 그가 덧붙여 말했다. “우리가 당신 사건을 좀 띄웠어요. 여름엔 기사거리가 부족하거든요. 당신 사건과 존속살해사건밖에는 요즘 쓸 만한 게 없어서요.” 그러고 나서 그는, 방금 전에 같이 있었던 그 그룹 가운데, 커다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두더지처럼 생긴 땅딸막한 남자를 가리키며, 파리의 한 신문사 특파원이라고 말했다. “한데 저 사람은 당신 때문에 온 건 아니에요. 부친살해사건 공판에 대해 취재를 맡은 김에 당신 사건도 같이 알리라고 지시를 받은 거죠.” 그때 다시 한 번,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그런데 그게 우스운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p.122
그때 검사가 배심원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머니의 사망 다음날 가장 수치스러운 방탕행위에 빠진 바로 이 사람은 하찮은 이유로, 그리고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정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참다못한 내 변호사가 두 팔을 쳐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그의 소맷자락이 흘러내리며 풀 먹인 셔츠의 주름이 밖으로 드러났다. “결국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기소된 겁니까? 살인으로 기소된 겁니까?”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