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순간, 우리 입에서 “하아!” 하는 감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저 황홀했다. 하얀 꽃잎 속에서 반딧불이가 반짝이면 꽃잎 자체가 환상적인 초록빛을 발하는 듯 보였다. “왠지, 요정들이 사용하는 등불 같아…….” 나쓰미는 유치원 교사답게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표현을 썼지만, 내가 생각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나쓰미, 꽃을 얼굴 앞에 들고 있어 봐.” “응.” 나는 카메라를 들고, 희미한 녹색으로 빛나는 초롱꽃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쓰미의 옆얼굴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액정 모니터로 그 사진을 확인하면서 “나 원 참…….” 하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나는 역시 나쓰미에게 푹 빠져 있었다. --- p.49 * 지장 할아버지는 술잔에 남은 술을 쭈욱 들이켠 후 사진 뒷면의 세 글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종종 이런 말을 해 준 기억이 있단다. 게조, 엄마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라고. 외동인 데다 아버지가 없어서 어린 마음에 외로웠지만, 그래도 매일 밤 이불 속에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면 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잠도 잘 왔던 것 같아.” 나쓰미가 야스 할머니 방 쪽을 돌아본다. 나도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보았다. 할머니다운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나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한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거든. 마음 한구석에 늘 죄책감이 있었지…….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매일 밤 그렇게 말해 줬기 때문인 것 같단다. 그래서 말이다, 내가 정말로 후회하는 건……, 아내랑 헤어진 일이 아니라…….” 할아버지는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 p.109-110
* “눈이 착각해서 달을 크게 보는 거라고 가르쳐 주셨을 때…….” “응…….”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 “어떤?” “인간은 무엇과 무엇을 비교할 때 늘 착각을 일으킨대. 그러니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선 안 된다고.” 나쓰미는 묵묵히 달을 응시했다. 나 혼자 계속 지껄인다. “타인과 비교하면 내게 부족한 것만 보여 만족을 모른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지장 할아버지가 해 준 이 말은 사진학과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해 초조해하던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조언이었다. --- p.127
* 운게쓰가 팔짱을 끼고 말을 잇는다. “재능이란 건, 각오랑 같은 뜻이기도 해.” “…….”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인간이라도 뭔가를 이루기 전에 포기하면 그 인간에겐 재능이 없었던 게 되지. 굳게 마음먹고 목숨이라도 걸 각오로 꿈을 이룰 때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녀석만 나중에 천재 소리 듣게 돼.” 운게쓰가 씨익 웃는다. “그럴 각오는 되어 있나?” 검은 고양이가 갑자기 눈을 뜨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운게쓰와 야차, 이 둘이 내 인생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스토브 안에서 장작이 따각,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 풍경이 딸랑, 하고 울었다.
만나고 헤어지지만, 다시 뿌리내리고 싹 틔우는 인연 사진작가 지망인 대학생 아이바 싱고는 졸업 작품을 앞두고 여자친구 나쓰미와 길을 나선다. 산골 마을의 오래된 만물상 ‘다케야’에서 조용히 사는 모자 야스 할머니와 지장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싱고와 나쓰미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된다. 여름방학을 ‘다케야’에서 지내기로 하고 열심히 고친 별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들. 청명한 하늘 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는 즐거움과 정든 ‘다케야’ 식구들 때문에 여름이 지나가는 게 아쉽기만 하다. 싱고와 나쓰미는 항상 웃는 얼굴인 지장 할아버지의 슬픔에 대해 알게 된다.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 운게쓰와 매일 지장 할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등교 버스를 타는 다쿠야, 히토미. 그들과의 인연으로 싱고는 꿈꾸는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