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 비근한 것, 일상적인 것의 역사가 오늘날처럼 각광을 누린 적도 없었다. 역사학에서는 이른바 미시사, 일상사, 혹은 신문화사가 사뭇 성황을 이루고 있다. 역사 연구의 주제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의 방법, 더 나아가 서술의 방식(스타일)에서 예전의 역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신문화사의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지식의 풍경)에서 저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실증적 자료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때문에 그 책은 소설과 역사의 경계에 서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주제를 다룬 책, <먼지: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이소)에서 본격적인 신문화사의 분위기를 읽어내려 한다면 무리일 수도 있지만, 지성사가, 문화사가인 저자의 다양한 관심 주제는 다분히 '신문화사적'이다. 미국 미네소타 지역 지방사, 골프, 고통, 솜엉겅퀴, 미국 농촌, 죽음, 양심, 프랑스 가톨릭의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이 책 역시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의학, 보건학, 미생물학, 물리학, 천문학, 철학사상, 문학, 미술 등 실로 다양한 분야를 고금으로 넘나들며 논의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전적으로 먼지의 과학 혹은 먼지의 문화사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저자의 의도는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하 p.60의 일부)
'먼지는 가장 평범한 것이면서 가장 귀한 것이기도 하다. 은유에 있어서 먼지가 이렇듯 모호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 역할을 하는데서 기인한다. 먼지는 암흑과도 유사하다. 암흑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영역과 상상 속의 영역을 가르는 장막을 형성했다. 먼지는 스스로 그림자로 싸인 영역을 이루어 비밀스런 교섭의 장을 제공하고 예상치 못했던 변화를 후원하기도 했다. 빛과 어둠 그 어느 것도 완전하게 지배하지 못하는 동굴이나 지하실처럼, 먼지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산 것과 죽은 것을 함께 담는 모호한 저장고였다.'
이쯤 되면 이 책은 먼지를 주제로 한 고급 에세이, 더 나아가 아포리즘까지 포함하는 셈이다. 요컨대 먼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것의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사실들을 거론하지만, 결국 저자는 풀리지 않는 신비로서의 먼지 혹은 미세한 사물에 대한 일종의 경이를 부각시킨다. 저자의 말대로, '인간은 그들의 자아와 의미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무한한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몸서리칠 것이다.'
한편 먼지를 꼬투리 삼아 사뭇 거대한 주제를 거론하는 저자의 솜씨도 단연 일급이다. 20세기를 위대한 것들의 진리가 작은 세계에서 발견된다고 보게 된 시대로 거론한다든가, 미세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를 속속들이 알아내고 통제하게 된 것이 다분히 서구 문화적인 연원을 갖는다든가, 미세한 것들을 독점하고 있던 예술가들에게 첫 도전장을 낸 사람들이 바로 15세기의 과학자들이었다든가. 실로 저자는 '작고 하찮은 것들과의 변화무쌍한 관계로부터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 보여주려 한다. '먼지'라는 말보다는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라는 말이 이 책의 제목으로 훨씬 더 적합한 셈이다.
번역서 편집 상태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아쉬움 하나. 본문 글자가 일반적인(이런 표현이 적합한 것인지 자신은 없지만) 책에 비해 가로 방향으로 길다. 물론 편집자의 편집 의도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집중하는 데에 글자로부터 방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이 책과 저자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느낀 사항 하나. 다름 아니라 '참고문헌에 관한 에세이' 부분이다. 일반적인 참고문헌과는 달리, 참고문헌에 대한 간략하지만 친절한 소개와 함께 제목 그대로 에세이까지 겸하고 있다. 저자 및 이 책에 대한 신뢰성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 부지런한 독자들이 스스로 비슷한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 실마리로 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