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나는 여태까지 세상에 대하여 충실하였다. 어디까지든지 충실하려고 하였다. 내 어머니, 내 아내까지도 뼈가 부서지고 고기가 찢기더라도 충실한 노력으로 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속였다. 우리의 충실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충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았다. 포악하고 허위스럽고 요사한 무리를 용납하고 옹호하는 세상인 것을 참으로 몰랐다.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의식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네들은 그러한 세상의 분위기에 취하였었다. 나도 이때까지 취하였었다.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서 살아왔었다.
박돌의 죽음 두 눈에 불이 휑한 박돌 어미는 툇마루 놓인 방 미닫이를 차고 뛰어들어가서 그 집 주인 김 초시의 멱살을 잡았다. 멱살을 잡힌 김 초시는 눈이 둥그레서, “이……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황겁하여 윗방으로 들이뛰려고 한다. “이놈아! 네가 시방 우리 박돌이를 끌어다가 불 속에 넣었지? 박돌이를 내놔라! 박돌아!” 날카롭고 처량한 그 소리에 주위의 공기는 싹싹 에어지는 듯하였다. “아…… 아…… 박돌이를 내 가졌느냐? 웬일이냐?” 박돌이란 소리에 김 초시 가슴은 뜨끔하였다. 김 초시는 벌벌 떨면서 박돌 어미 손에서 몸을 빼려고 애를 쓴다. 두 몸은 이리 밀리며 저리 쓰러져서 서투른 씨름꾼의 씨름 같다. (중략) 김 초시 집 마당에는 어린애 어른 할 것 없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모두 박돌 어미의 꼴을 보고는 얼른 대들지 못한다. “응 이놈아!” 박돌 어미는 김 초시의 상투를 휘어잡으며 그의 낯에 입을 대었다. “에구! 사람이 죽소!” 방바닥에 덜컥 자빠지면서 부르짖는 김 초시의 소리는 처량히 울렸다. 사내 몇 사람은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놈아! 내 박돌이를 불에 넣었으니 네 고기를 내가 씹겠다.” 박돌 어미는 김 초시의 가슴을 타고 앉아서 그의 낯을 물어뜯는다. 코, 입, 귀…… 검붉은 피는 두 사람의 온몸에 발리었다.
만두 내 두 손은 민첩하게 가마솥 뚜껑을 열고 만두 한 개를 집어냈다. 그때 내 손이 어찌도 민첩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적 같았다. 만두를 잡은 나는 기운이 났다. 커다란 널문을 박차다시피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문을 막 나설 때였다. “악!” 하는 소리와 같이 그 번쩍하는 도끼가 내 등골에 내려졌다. 나는 몸서리를 빠르르 치면서 머리를 홱 돌렸다. 그것은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악을 쓰고 한참 뛰다가 비로소 큰 숨을 쉬면서 그 청인의 쾌관을 돌아다보았다. 이때 내 손에 쥐었던 만두는 벌써 절반이나 내 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