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으로 시집을 간 공주의 운명은 인질―소유물―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녀는 그러한 두가지 역할의 운명을 가진 공주의 훌륭한 본보기임에 틀림없었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역할을 한 공주는 아주 많이 있었다. 파르마의 이사벨라는 그 불행한 가능성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위대한 왕자의 딸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 다른 사람들의 편견의 노예로 태어난 그녀는 영예의 무게와, 위대함에 수반하는 수많은 에티켓과 …… 공공의 선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희생에 종속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p.136
성대한 준비를 한 베르사유 전체가 이제 여주인공에게 관심이 쏠렸다. 한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양쪽에 커다란 후프를 넣어 부풀린 하얀 문직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너무 작고 호리호리해 “열두 살로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황녀의 몸가짐”을 갖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위엄―그것은 어린 시절 엄격한 양육의 결과로, 그녀의 교육 중 가장 효과가 있었던 부분이었다―은 대체로 칭찬받을 만했다. 궁정은 자신을 우아하게 표현하는 것과 스타일이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한편 왕태자는 긴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신부와는 대조적으로 대체로 냉담하고 부루퉁하며, 생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혼 반지를 신부의 손가락에 끼우며 두려움에 떨었다.
--- p.171-172
“걸음을 떼며 자신이 실제로 여신임을 드러냈다(걸음걸이 자체가 여신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세낙 드 메이앙은 한껏 가벼우면서도 위엄 있는 왕비의 걸음걸이에서 버질을 떠올렸다. 호레이스 월폴은 그녀가 루이 15세를 따라 왕가의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잊지 못한 채 그녀가 “광채와 우아함을 발산하며, 땅을 밟지 않는 듯하며, 천상의 존재처럼 실내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녀가 시녀들과 함께 퐁텐블뢰에서 야외에 있는 것을 본 르 브룅 부인은 햇빛에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듯, 눈부신 모습의 왕비가 님프들에게 둘러싸인 여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p.255
만약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 악명 높은 말인 “케이크를 먹게 하라”는 말을 정말 했다면 그것은 밀가루 전쟁 동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왕족의 임무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만족시켰을 뿐이다. 그 말의 취지는 그 말 자체와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오해 덕분에 그녀는 자주 무감각하고 무지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매우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해집니다. 왕은 이 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대관식 날을 평생 (제가 백 년을 산다 하더라도)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썼다. 이것이 프랑스 왕가의 가족 중 유일하게 소작인의 옥수수밭 위로 마차를 타고 가 그것을 망치기를 거부한 다정한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주 자세한 것까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274-275
열두시 반에 특이한 행렬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출발했다. 수도에 도착하는 데 거의 일곱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목이 쉰 군중은 빵을 곧 공짜로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의미를 담아서 자기들이 “빵장수와 빵장수의 아내, 그리고 빵장수의 아들”을 파리로 데려가고 있다는 유행가의 가사를 즐겁게 외쳤다. 하지만 이 행렬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게 무슨 행렬이란 말인가! 맙소사!”라고 왕이 한 이 행렬에는 아직 프랑스에 남아 있던 왕의 육친들뿐 아니라 그들의 친숙한 동무였던 호위대의 잘린 머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열여섯 살의 샤르트르 공작은 이렇게까지 영락한 사촌들이 지나가는 것을 발코니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군중이 나르고 있는 기묘한 물체를 자세히 보려고 안경을 들어 올렸고,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피투성이의 머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 p.536
겉으로 루이 16세는 평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한번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국민에게 자유를 허용해준 사람이 자신이었는데, 자신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폭도들이 수호대를 장악하고 있는 그 광경이 그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 p.583
그날 아침 그 도시 주위에는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주요 성문들이 닫혀 있었기에 평소의 요란스런 소음이 잠잠해졌던 것이었다. 열 시 반 직전에 북소리가 울렸고 광란의 관중들에게서 커다란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탑 안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왕의 죽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뇌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찌르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는 갑자기 이런 말을 내뱉었다. “괴물들! 이제 만족했겠군.”
--- p.705
“그 여자 카페”의 처형을 주장한 지도자는 에베르였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그가 제시한 이유는 지위를 박탈당한 왕비의 피를 흘림으로써 상퀼로트와 자신들을 공동의 폭력적 행위로 결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루이 카페의 죽음은 특히 국민공회의 작품이었지만, 앙투아네트의 죽음은 파리 시와 혁명재판소, 혁명군의 공동작품이어야 한다. 툴롱의 프랑스 함대가 8월 28일에 연합군에게 넘어갔으므로, 혁명군은 자신감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앙투아네트의 머리를 약속했습니다.”라고 에베르는 고함을 질렀다. “만약 그것을 받는 데 약간이라도 지체되는 일이 있다면 내가 직접 가서 그 머리를 자르겠습니다. 나는 그 머리를 요구하고 있는 상퀼로트에게 당신들을 위해서 그것을 약속했고, 그들이 없다면 당신들은 살아 있지 못할 겁니다.” 그는 강조해서 말했다.
--- p.745
루이 샤를에게는 “내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 우리의 죽음을 보복하려는 노력은 절대로 기울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의 거짓 고발이라는 그 고통스러운 문제를 제기했다. “루이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을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누이여, 그 아이를 용서해주세요. 그 아이의 나이를 생각하고, 어린아이에게 누군가 원하는 말을, 심지어 그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라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생각해주세요.”
--- p.765
이처럼 격정을 느끼지 않고는 돌아볼 수 없는 과거의 삶을 “격정을 느끼지 않고” 되돌아보기를 제안하면서 안토니아 프레이저는 조용히 역사의 반성문을 제시한다.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죽음, 인간에 대한 인간의 부당한 횡포를 드러내는 그러한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당함에 직면하여 자신의 인격을 손상시키지 않고 온전히 지켜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그 희귀한 경우를 보여주기 때문이며 순수한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인간성의 힘과 깊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