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983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80년대의 혼란스러운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하다 학문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야무진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의 눈에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문학보다는 사실의 세계를 다루는 역사, 그중에서도 일찍이 하나의근대 독립 학문의 터를 닦아 놓은 서양사가 믿음ㅁ직스러워 보여 결국 같은 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학부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접한 역사학, 특히 실제의 역사와 사상 사이에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사상사 혹은 지성사 분야는 그에게 학문하는 즐거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체험하도록 해주었다. 또한 역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서도 새로이 고민하면서 역사철학, 역사이론, 사학사 등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혀갔다. 결국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와 독일 역사주의>라는 논문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1년 뒤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 입학한 후,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역사이론과 사회경제사 등의 분야를 공부하다 우연한 계기에 접한 부르크하르트의『세계사적 고찰』은 그동안 닫혀 있던 그의 눈을 다시 뜨이게 해주었다. 기존의 연구서가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부르크하르트를 역사이론적 시각에서 새로이 분석한 논문 <경험과 인식,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역사이론에 대한 연구> 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앞으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거나 정리가 덜 된 부르크하르트의 여러 모습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동시에 서양에서조차 연구가 미진한 숨겨진 역사가, 역사이론가, 역사철학자들을 발굴해내 소개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작정이다.
스위스 바젤에서 개신교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비교적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열두 살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를 여읜다. 이후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무상함과 불확실함에 전율하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학과 문학에서 특출한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바젤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그러다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당시 역사학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던 랑케를 찾아 베를린 대학교로 적을 옮긴다. 이곳에서 당대의 유명한 역사학자 드로이젠, 쿠글러 등의 강의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역사학과 예술사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한 그는 바젤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이때 3월 혁명을 통해 혁명의 폭력성과 권력의 무자비함을 절감하고 혁명 시대의 정치사회적 병패를 여실히 깨닫는다.
이후 저술과 강의에만 몰두하던 그는 결국 서른일곱에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예술사 교수로 취임했고, 3년 뒤에는 모교인 바젤 대학교의 역사학 정교수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는 일흔다섯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단 한 학기의 휴가도 없이 강의를 했다. 특히 <역사 연구에 대하여>라는 강의는 같은 대학 문헌학 교수로 부임한 니체를 크게 감명시켰는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정신적, 지적 교류가 시작된다. 은퇴를 전후해서 신화, 전설, 예술 등 역사 외의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그는 결국 일흔 아홉을 일기로 비교적 순탄했던 생을 마감한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만 지냈으면서도 당시 유럽의 정세를 동시대의 그 어느 지식인 못지 않게 깨어 있는 의식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비판한 현재비판가로 평가받는다. 당대의 강력한 국가권력, 물량화된 산업사회, 균일화된 대중문화 등을 거시적 비판 대상으로 삼았던 그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정한 제자나 계승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주요 저작으로『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여행 안내서, 이탈리아 예술 작품의 감상을 위한 안내서』『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시론』『세계사적 고찰』『그리스 문화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