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찾다
김태희(blog.yes24.com/taengee)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무엇인가 계속 찾으려 하고, 무엇인가 계속 추구하려 하는 것 같다. 무엇인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상적인 것을 찾기 위해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기 위해, 그 이상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어릴 적 내가 추구했던 나의 모습은 사랑 받는 아이였던 것 같다.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의식을 하고 그랬든 그러지 않았든 (그렇다고 계산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려고 했고 또한 사랑을 받으면서 내가 살아 있는 그 순간을 만족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내가 추구했던 나의 모습은 인정 받는 아이였다.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받는 인정이 내 존재의 가치인 것처럼 느끼고 그러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세상의 이치도 당연히 그랬다. 나를 가꾸어야 하고, 좀 더 나은 나로 만들어야 하고, 그 것에 맞추어야 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길이 나를 찾고자 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을 쓴 C.S 루이스는 이 소설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를 빌려서 우리의 얼굴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C.S 루이스는 우리에게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기독교 변증학자이지만 그가 쓴 몇 편의 소설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게 읽혀지는 매력이 있다. 어디서 그런 상상력이 쏟아져 나오는지 알 수 없게 그의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하나하나 풀려가는 실마리가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지 못하다가도 결국엔 하나로 모아지고 마음 깊이 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떄까지> 도 신화의 모티브를 빌려 글롬 왕국의 왕 트롬의 왕녀 오루알의 성장과정과 그녀가 사랑했던 동생 프시케, 그리스인 노예이자 그의 스승이던 여우 선생, 그리고 그의 충직한 신하 바르디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C.S 루이스는 오루알을 아버지조차 그 외모 때문에 딸을 미워할 정도로 추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오루알은 동생 프시케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끼고, 노예인 여우 선생을 존중하고, 바르디아를 신뢰한다. 오루알은 그들 앞에서 각기 다른 자아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동생 프시케의 "마야" 언니이며, 여우 선생의 "지혜로운 딸" 이며, 바르디아의 "여왕"으로서 존재한다. 오루알은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 후 자신의 모습을 베일에 감추고 점점 여왕의 모습을 닮아갔고, 지혜로워졌으며 강해졌고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되었으며 주변의 모든 나라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프시케가 신의 아내로 바쳐지고 신의 사랑을 알게 됐을 때 그 동생을 신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려는 "마야"언니가 되었고, 여우 선생이 그리스로 돌아갈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졌을 때 할아버지가 필요한 딸이 되었고, 바르디아가 아내 안싯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려 할 때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되고야 만다.
살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어떤 사건에 의해서 일수도 있고, 내 주위 어떤 사람에 의해서 일수도 있고, 이 책에서처럼 신과 대면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오루알이 베일을 벗었던 그 순간처럼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순간. 그 연약함이 한없이 드러나는 순간. 그래서 더더욱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C.S 루이스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아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루알이 신의 궁전에 가까이 다다랐을 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싱그럽고 촉촉한 주변 세상을 돌아보면서(앓기 오래 전부터 내가 본 것이라고는 메마르고 시든 것들뿐이었다) 그동안 세상을 잘못 판단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그 마음까지 춤추고 있는 듯했고 다정히 웃고 있는 듯했다. 내가 추하게 생겼다는 사실일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음에 즐거움이 밀려드는데 누가 자기의 추함을 느끼겠는가? 그럴 때에는 마치 흉측한 얼굴과 뼈만 앙상한 팔 다리 속 어딘가에 부드럽고 신선하며 나긋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법이다 "
C.S 루이스 자신은 이 책을 자신이 쓴 소설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의 기준에 맞추어 져서 그런지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신화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기독교인에게는 낯선 이야기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루알을 통해 자신을 얼굴을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는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볼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우리 삶에는 그걸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다. 자신이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던 무언가를 놓았을 때, (오루알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랑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얼굴을 찾게 될 것임을 C.S 루이스는 말해준다. 오루알이 아름다운 여왕이 되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