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이야기의 P판이 끝나면, 다른 판이 시작된다.
--- 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창세기 2:4)
이 절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주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처음 제34절까지는 신을 줄곧 '하나님God'으로만 부르다가 이 절에 이르러 갑자기 '주 하나님'으로 부른 것이다.
여기서 '주Lord'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 개의 히브리어 낱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그대로 영어 낱자로 옮기면 YHVH로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낱말은 나중에 설명할 몇 가지 이유로(184쪽 참조), 오랫동안 '여호와 Jehovah'로 잘못 표기되어 왔다. 현대의 학자들은 '야훼Yahveh'가 더 정확한 표기라고 믿고 있다.
모든 신들은 보통 명사 'god'로 나타내고 성서의 유일신은 그 머릿글자를 대문자로 바꾸어 'God'라고 칭할 때, 야훼는 바로 그 유일신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고대인에게 이름은 대단히 중요했다. 이름을 인격의 연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민간 전승에 따르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불린 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이름은 마법의 도구였는데, 유수 후의 유다인들은 마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마법을 인정하지 않은 까닭은 마법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그것이 대개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의 이름으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금기시되었다. 이 때문에, 경건한 유다인들은 성서 첫머리의 책들에 실을 전승들과 유수 전 예언자들의 글에서 그 이름을 만나면 대개 '아도나이Adonai(주)'로 대체했다. 이 완곡어가 영어 역본들에 채택되어 '야훼 하나님'이라 할 곳에 '주 하나님'이 쓰이게 된 것이다.
하나님(엘로힘) 대신에 '주 하나님(야훼 엘로힘)'을 쓰는 것은 6경에 편입된 특정한 계통의 초기 전승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계통의 전승을 'J 자료'라고 한다. 하나님을 '여호와Jehovah(야훼)'로 부르는 것이 이 전승의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이다.
P자료처럼 하나님을 단순히 엘로힘Elohim'으로만 칭한 또 다른 계통의 전승들이 있다. 그것이 이른바 'E자료'다. J자료와 E자료는 양자 모두 P자료에 비해 훨씬 인격적이며, 상황 묘사가 자세하고 사건의 형식적 측면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J자료는 B.C. 9세기에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양분하고 있던 두 왕국 중 남쪽 왕국에서 성문화되었을 것이다. 이 남쪽 왕국이 유다 왕국이었다. E자료는 한 세기 뒤 북부의 이스라엘 왕국에서 성문화되었다.
북왕국의 지배 부족은 에브라임이었으므로 에브라임은 때때로 이스라엘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가 빚어졌다. J자료의 J가 여호와Jehavah 뿐만 아니라 유다Judah도 나타나고, E자료의 E는 엘로힘Elohim뿐만 아니라 에브라임Ephraim도 나타내는 셈이 된 것이다.
B.C. 8세기 말에 북왕국이 멸망하자 유다의 사제들은 자기네 J전승에 E전승을 통합시켯다. 덕분에 자기네 조상들의 초기 역사가 좀더 완전해졌지만, 동시에 몇 대목이 중복되는 폐단이 빚어졌다. 똑같은 이야기가 두번 등장하는데, 한번은 북부적 성향을 띠고 한번은 남부적 성향을 띠는 것이다. 절들을 대단히 조심스럽게 이어 맞추었음에도, 그처럼 중복된 절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뒷날 바빌로니아 유수기 동안과 그 이후에 사제들은 J.E 통합판을 채택하고, 자신들은 P자료를 추가하여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것과 같은 <창세기>를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앵커 성서>처럼 <창세기>의 얽혀 있는 부분들을 풀어내고 각 절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지만, 그와 같이 서로 다른 출처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도 무익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 pp 31~33
아직 한 가지 언어를 쓰는 비교적 작은 집단이었을 때, 노아의 후손들은 시날(수메르)에 와서 그곳에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거대한 탑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부여하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목적을 무산시켰다. 그들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복잡한 건축 사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는데, 성서는 이 이야기에서 그 탑이 건설되던 도시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 그러므로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창세가 11:9)
다시 말해 <창세기> 저자들은 '바벨Babel'이라는 낱말의 어원을 '뒤섞다', '혼동시키다' '혼잡케 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발랄balal'에서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통속 어원에 의한 착오다. 이 도시의 바빌보니아어 이름은 '신(神)의 문'을 뜻하는 밥일루Bab-ilu'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말이 히브리어에서는 '바벨Babel', 그리스어에서는 '바빌론Babylon'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바벨에는 탑이 하나 있었다. 사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대다수 도시들에는 탑이 있었다. 이들 도시의 신전은 외부 경사면을 통해 올라가게 되어 있는 층계형 피라미드였다. 이 신전 탑들을 지구라트라고 했다.
아마 아가데의 사르곤의 남진으로 인한 혼란 때문이겠지만, 한 수메르 왕이 건걸하기 시작한 거대한 지구라트 하나가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 지구라트는 수세기 동안 그렇게 남아 있었는데, 미완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피사의 사탑이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생각해보라. 이 탑이 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의 모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B.C 6세기에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개.공/느부갓네살)가 그때까지 지어진 가장 큰 지구라트를 완성했다.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일곱 개의 단(단 하나하나에는 각각의 행성에 해당한다)으로 구성된 탑이었다. 맨 아랫단은 가로 세로가 각각 300피트였고, 전체 구조물은 325피트 높이로 우뚝 솟아 있었다.
오늘 날이라면 대단한 마천루는 못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인들이 세운 거대한 피라미드보다도 훨씬 작았다. 그러나 이 탑은 서남 아시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으며, 더욱 주목할 점은 오늘날 우리가 '바벨탑'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탑이라는 사실이다. 이 탑이 마침내 완성되었던 것이다.
--- pp 77~78
아시모프가 성서에 관한 책을 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역자(박웅희)로부터 소개받은 1999년도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아시모프가 천재이며 {파운데이션} {로봇} 등과 같은 발군의 SF를 완성한 작가라는 정도만 알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시모프는 이성주의자이며 그 스스로가 무신론자임을 밝힌 사실도 있습니다. 그런 그가 성서에 관해 썼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모든 분야에 관하여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아시모프(그를 '지식의 스펀지맨' '현대의 르네상스맨'이라 부르는 독자들도 있습니다)가 성서에 관하여 썼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검토를 거쳐 이것을 출판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해외 출판사(Random House) 및 유족들과 계약을 하고, 마침내 근 3년만에 이렇게 책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원서의 페이지가 1296쪽에 이르는 이 책은 한국어본으로는 구약(928쪽)과 신약(792쪽)의 2권에 총페이지 1720쪽이라는 엄청난 분량으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보다 완전한 번역을 위해 역자인 박웅희 씨가 들인 노고는 실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는 아시모프가 참조했다는 제임스왕 성서를 기축으로 하고, 우리말 성서를 읽을 독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한구절 한구절마다 '공동번역성서'와 '성경전서 개역한글판'과 일일이 대조하여 그 부분을 밝혔습니다. 또한 성서의 고유명사들이 일반 역사서의 그것들과 다르기에 이것들을 '브리태니카 백과' 및 참고서적들과 대조하고 그 결과들을 밝혀놓았습니다. 번역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저자인 "아시모프가 만일 한국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면?" 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일에 임하였습니다. 아시모프는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주 대상을 성서에 대해 최소한 일반적 수준의 지식은 가지고 있으나 성서 외의 고대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독자로 설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빈 곳을 채우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 성서의 장소와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조금이나마 걷히면 성서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을 장소와 인물들이 수세기가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불확실해진 탓에 이토록 중요한 책의 내용 자체가 쓸데없이 어려워진 것은 애석한 일이다). 온전히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이것을 바로잡고자 한다."
옮긴이도 바로 그런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숱한 날들을 보고 다시 또 보는 일로 보냈는바, 이는 대단한 정열과 끈기가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성서의 순서 그대로, 성서의 내용들을 되짚어보고 궁금하거나 애매한 점들을 살펴보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진 동기는 저자의 말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고, 한국 독자들에게 갖는 그 가치와 의미는 추천의 글을 써준 배철현 목사(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의 역주자)와 옮긴이의 말로 충분하다고 보여지므로, 다른 사족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 편집자의 말
아들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세 아들이 참전하고 있었으므로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시켜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게 했다. 전장에서 골리앗의 결투 요구를 들은 다윗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 다윗은 갑옷도 입지 않은 채 물매만 하나 들고 골리앗과 마주섰다. 그가 매끈한 돌멩이로 물매를 만든 다음 세차게 돌리다가 정확히 던져 거인을 쓰러뜨리자, 블레셋군은 줄행랑을 놓앗다.
이는 가장 유명한 성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다. 이 이야기에서 실력 차가 뚜렷한 상대끼리의 시합을 가리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바로 그 극적인 성격 때문에 진실성이 의심스럽다.
실제 전투에서, 어느 군대가 두 사람의 대결에 전투 자체의 승패를 걸려 하겠는가? 이 대결을 둘러싼 환경만 해도 솜씨 좋은 작가가 깊은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구성한 흔적이 뚜렷하다. 골리앗의 키와 갑옷은 강조되고 과장되어 있으며, 다윗의 어린 나이와 갑옷을 입지 않은 용기도 마찬가지다.
--- pp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