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기(榮啓期)는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사슴 가죽 옷에 새끼줄을 두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했다. 공자가 태산(泰山)에서 노닐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무엇이 그렇게 즐겁습니까?” 영계기가 답했다. “나의 즐거움은 아주 많습니다. 하늘이 만들어낸 모든 것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귀한데, 내가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입니다. 남녀의 구별이 있어 남자가 높고 여자는 낮기 때문에 남자를 귀하게 여기는데, 내가 이미 남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해와 달을 보지도 못하거나 포대기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죽기도 하는데, 나는 이미 90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입니다. 가난은 선비에게 늘 있는 일이고 죽음이란 사람에게는 끝이니, 늘 있는 일에서 살다가 끝을 기다리는데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 p.29~30
호장유(胡長孺)는 꿋꿋하고 떳떳한 사람으로 모진 굶주림과 추위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 조맹부(趙孟?)가 일찍이 돈 100정(錠)을 가지고 와서 나사도(羅司徒)를 위한 묘지명을 부탁했는데, 장유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어찌 환관을 위해 묘지명을 짓겠는가?” 그날 장유의 집에는 양식이 떨어져서 그 아들이 사정을 이야기하니 좌중의 여러 빈객들이 모두 그 돈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장유는 더욱 완강히 물리쳤다. 일찍이 동양(東陽)으로 돌아가는 채 여우(蔡如愚)를 전송하면서 말했다.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옷도 따뜻하지 않지만, 시를 읊는 소리는 오히려 종구(鍾球: 종과 경쇠)의 울림과 같다.” 이어 말했다. “이것이 내가 양식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비결이다.” --- p.44~45
축석림(祝石林)이 말했다. “사람들의 공통된 병은 나이 들수록 꾀만 늘어나는 것이다. 부싯돌의 불은 꺼지기 쉬워도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기는 어렵다. 세속에서 살려고 하든지 세속을 떠나려고 하든지 반드시 기미를 알고, 기미를 호흡해 조화와 권세를 다투려 하지 말고 조화의 권한을 조화에게 돌려주고, 자손을 위해서는 복(福)을 심어주어 자손의 복은 자손에게 맡겨두고, 사물 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면 편안함은 오히려 눈앞의 맑은 일일 것이다. 꽃을 찾고 달빛을 묻는 데 둘이나 셋씩 짝을 짓고, 차 달이고 향 피우는 행동을 가지런히 하며, 모이더라도 굳이 약속하지 않으며, 예를 갖추더라도 굳이 꾸미지 않으며, 시(詩)를 짓더라도 굳이 기교를 부리지 않으며, 바둑을 두더라도 굳이 승부를 내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저 저절로 줄어들기를 추구하고, 이 마음은 단지 하늘과 함께 노닐게 해 나이도 따지지 못하고 연도도 잊어버리게 된다면, 이 또한 티끌 같은 세상 안의 선경(仙境)이요, 속세 안의 정토(淨土)일 것이다.”--- p.70~71
조물주가 사람에게 공명(功名)과 부귀는 아끼지 않으나, 유독 ‘한가한 것’은 아낀다. 천지 사이에는 기미가 발동해 돌고 돌아 한순간의 멈춤도 없다. 천지도 한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
떻겠는가? 높은 벼슬에 많은 녹봉을 받는 사람이나 청직(淸職)이나 현직(顯職)에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용히 물러남을 즐기는 자는 매우 드물다. 날마다 오직 재산을 모으고 좋은 집을 지으려고 하지만, 한 번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죽고 마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도 집에서 먹고살 수만 있다면 정말 바쁜 중에도 한가함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인데, 돈주머니만을 벌벌 떨면서 움켜쥐고, 돈 들어오는 장부만을 마음속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챙기고 있으니, 어찌 그저 낮에만 바쁘겠는가? 꿈에서조차 뒤숭숭할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풍경이라 할지라도 어찌 그 맛을 알겠는가? 헛되이 힘들게 살다가 죽게 되더라도 후회할 줄 모른다. 이는 진실로 ‘돈을 지키는 노예’로서 자손을 위해 소나 말이 되는 것이다. 아아, 이보다 더 심한 자가 있으니, 자손을 위해 거의 독사나 전갈이 되기도 한다. --- p.91~92
진지기(陳之奇)는 어진 덕이 있었기에 고을 사람들에게 군자라고 칭송받았다. 여러 차례 벼슬하다가 태자중윤(太子中允)에 이르러 벼슬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나이가 채 50세도 못 되었다. 나라에서 갑자기 평강군절도장서기(平江軍節度掌書記)에 제수(추천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림)하면서 다시 교수(敎授: 조선시대에 지방유생의 교육을 맡아보던 종6품 벼슬)를 삼았는데, 여비를 주면서 빨리 떠나라고 재촉하는 조서까지 내려왔다. 진지기는 있는 힘을 다해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진지기는 도덕으로 고을에 이름이 나서 거리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그를 존경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는 송사(訟事: 백성끼리 분쟁이 있을 때 관부에 호소해 판결을 구하던 일)를 하던 자들이 있었는데, 노새를 타고 그의 집으로 찾아왔기에 대의(大義)로써 그들을 감동시켰더니 모두 마음을 고쳤다. --- p.100~101
육수성(陸樹聲)이 말했다. “내가 병 때문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한가하기에 성 밖에 집을 지었다. 집 동북쪽 모퉁이에 작은 방을 만들었는데, 넓이가 8자 남짓했고 가운데에 앉는 자리를 설치했다. 이름난 고승이 오면 그 위에서 가부좌하고 쉬면서 한두 선객(禪客: 참선하는 승려)들과 함께 불교의 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수고로움도 잊고 답답한 마음도 사그라져 고요함 속에서 삼매경(三昧境: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을 느끼게 되니, 작게나마 쉴 수 있었다. 일찍이 본일 선원(本一禪院)의 법당에 가서 은남선사(隱南禪師)와 정좌할 때마다 가슴속에 저절로 쾌활함이 느껴졌지만 남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 사대부들은 화려하고 성대함을 즐거워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즐거움은 그렇게 상쾌하고 이로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물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것에 힘써야 합니까?” 육수성이 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떳떳한 덕을 행하고 떳떳한 말을 하도록 하라.” --- p.114~115
오입부(吳立夫)는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중원의 기이한 절경이나 옛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던 곳, 전쟁하던 곳을 만날 때마다 갑자기 소리 높여 노래 부르고 술을 마시며 스스로 즐겼으니, 사마천과 같은 풍모가 있었다. 강남으로 돌아온 오입부는 바닷가를 따라 교문협(蛟門峽)을 거쳐 소백화산(小白華山)을 지나갔다. 반타석(盤陀石)에 올라 밝은 해가 떠오르면서 바닷물을 물들이는 것을 보았는데, 오래도록 응시하다 보니 안기생(安期生)과 선문(羨門)을 불러 함께 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로 인해 오입부의 품은 마음은 더욱 트여서 밝아졌고, 문장은 더욱 웅장하고 기이한 기상이 있게 되었다. 오입부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슴속에 3만 권의 책을 읽어두지 않고, 눈 안에 천하의 기이한 산천을 봐두지 않았다면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니, 설사 글을 썼다고 해도 이 또한 아녀자들의 이야기에 그칠 것이다.” --- p.125~126
소식(蘇軾)은 적벽부(赤壁賦)에서 “저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들리니 소리가 되고 눈에 깃드니 빛이 되는구나. 가져도 금함이 없고 써도 다하지 않으니, 이것은 조물주의 무진장이다.”라고 했으니, 소식의 뜻은 아마도 이백의 시구에서 나온 듯하다. 바람과 달은 돈을 들여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가져도 금할 사람이 없으니, 이백과 소식의 말은 믿을 만하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있는 날도 1년에 며칠도 되지 않는다. 설사 어떤 사람이 이 즐거움을 안다고 해도 누군가는 세속 일에 골몰해 정신을 빼앗겨 보지 못하고, 또 어떤 이는 병과 고통으로 가로막혀서 그것을 향유하려 해도 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렇다면 한가하게 아무 일 없이 있으면서 돈을 들여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가져도 금할 사람이 없는데도, 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만났을 때 즐길 줄 모른다면 이는 스스로 장애를 일으키는 것과 다름없다. --- p.133~134
누추한 거리에 중문(重門)도 없이 살면서 담벼락이 무너졌는데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마루 앞의 난간이 허물어졌는데, 이항의 아내가 집 지키는 사람에게 고치지 말라고 하면서 이항을 시험해보려고 했다. 이항은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보고도 끝내 아무 말도 않다가 아우인 이유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이것으로 내 한결같은 신념을 움직일 수 있겠느냐?” 집을 새로 지으라고 권유할 때마다 이항은 말했다. “나는 후한 녹봉을 받고 있고 때때로는 하사품도 있으니 주머니 속을 계산하면 집을 지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불교 경전에서는 이 세계가 헛된 것이라고 했으니, 어찌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만족스럽기를 바라겠느냐? 지금 새집을 사도 반드시 해마다 수리해야 할 것이고, 인생이란 아침저녁으로 보장될 수 없으니, 어찌 영구히 살 수 있겠느냐? 새 둥지를 틀 나뭇가지 하나면 스스로 만족스러우니, 어찌 으리으리한 집을 생각할 것인가?” --- p.155~156
어떤 어록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치스러운 자는 3년 쓸 것을 1년 만에 써버리고, 검소한 자는 1년 쓸 것을 3년 동안 쓴다. 아주 사치스러운 자는 그것도 오히려 부족하고, 아주 검소한 자는 오히려 남는 것이 있다. 사치스러운 자는 부유해도 만족하지 않고, 검소한 자는 가난해도 여유가 있다. 사치스러운 자는 마음이 늘 가난하고, 검소한 자는 마음이 늘 풍요롭다. 사치스러운 자는 친한 척하는 사람만 좋아하므로 잘못이 많고, 검소한 자는 사람을 멀리할 수 있기 때문에 화를 입을 일이 적다. 사치스러운 자는 임금을 섬기면서 반드시 모욕을 입게 되고, 검소한 자는 임금을 섬기면서 반드시 그 녹봉이 보존된다. 사치스러운 자는 근심이 많고, 검소한 자는 복이 많다. 검소함을 따르는 자는 천하의 목민관이 될 수 있다.” --- p.162~163
“호구소(胡九韶)는 오여필(吳與弼)을 따라 『역』을 배워 조예가 깊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 아이에게 농사를 지어 근근이 의식(衣食)을 마련했다. 호구소는 매일 포시(?時: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며 하늘이 내려준 하루의 ‘청복(淸福: 욕심 없이 맑고 소박함에서 찾는 복)’에 감사했다. 그의 늙은 아내가 늘 그것을 비웃으며 ‘하루 세 끼 채소 죽만 먹는데 무엇을 청복이라 이름 붙이겠는가?’라고 하니, 호구소는 ‘내가 다행히 태평한 세상에 태어나 병란의 화가 없었고, 또 다행히 한 집안의 골육들이 배부르고 따뜻해 굶주리고 춥지 않게 지내며, 또 다행히 침상에 병든 사람이 없고 옥에 갇힌 사람도 없으니 청복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했다.” 내가 아이였을 때 어른들이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런데 정덕(正德) 신미년(1511년)에 화림(華林)의 도적을 만나고, 기묘년(1519년)에 신호(宸濠)의 난을 만나 산속으로 피난했는데, 굶주리고 목마름에 지쳐 쓰러져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호구소의 ‘청복’이라는 말이 절실히 다가왔다. --- p.178~179
“밤은 낮의 여분(餘分)이고, 비 오는 날은 보통날의 여분이며, 겨울은 한 해의 여분이다. 이 세 가지 여분에는 사람의 일이 조금 뜸하니, 나는 학문하는 데 뜻을 통일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맑은 날 밤에 고요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이면, 온 세상은 고요하고 종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이러한 청아한 정경에서는 책을 대해 피곤함을 잊고, 잠자리를 거두고 교합하지 않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길을 막으면 문을 잠그고 방을 치운다. 사람의 왕래는 끊어지고 서책이 앞에 가득하니, 흥에 따라 아무 책이나 뽑아든다. 시냇물 소리는 귓가에 들려오고 고드름으로 벼루를 씻는다. 이 그윽한 고요함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텅 빈 숲에 한 해가 저물고, 싸라기눈이 부석부석 내린다. 마른 나뭇가지를 바람이 흔들고, 겨울새는 들녘에서 운다. 방 안에서 화로를 끼고 앉아 있으면 차 향기 속에 술이 익는다. 시사(詩詞)를 모아 엮으면 좋은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정경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나는 일찍이 이러한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자세히 말해 여러 사람과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 p.208~209
안지추(顔之推)가 말했다. “나는 성현의 책을 읽을 때마다 엄숙하게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오래된 종이에 오경(五經)의 말과 의의나 선현(先賢)의 성명(姓名)이 있으면 그것을 감히 더럽게 쓰지 않았다.” 책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사마광이 그 아들에게 말했다. “장사꾼은 돈을 모으는데 유가도 다만 이렇게 해야 할 뿐이니, 마땅히 책을 보배로 알아야 한다. 지금은 불교나 노장도 책을 존중할 줄 아는데, 어찌 우리 유가가 도리어 그들만도 못한가?” 책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조맹부가 어떤 글의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을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책을 잘 보는 사람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단정하게 한 후,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향을 피운다. 책장을 접지 말고 책 끝도 꺾지 말며, 손톱으로 글자를 상하게 하지 말고 침을 책장에 바르지도 말라. 또 책을 베개로 삼거나 어디에 끼우지도 말라. 책이 손상되면 바로 고치고, 책이 펼쳐져 있으면 반드시 덮어두어라. 나중에 내 책을 가질 자들에게 모두 이 법도를 알린다.” 책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 p.219~220
화를 너무 내면 기운이 손상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정신이 손상된다. 정신이 피로하면 쉽게 부림을 당하고, 기운이 쇠약하면 병이 서로 침범한다. 너무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말고, 늘 술과 음식은 고르게 먹어야 한다. 거듭거듭 밤에 술 취하지 않도록 하고, 새벽에 화내는 것을 가장 경계하라. 저녁에 잘 때 운고(雲鼓: 귀 뒤의 혈 자리)를 눌러주고, 새벽에 일어나 옥진(玉津: 중국 차의 한 종류)으로 양치질하면 요사(妖邪: 요망하고 간사함)가 침범하지 못해 정기(精氣)가 저절로 온전하고 순진해질 것이다. 모든 질병이 없으려면 늘 오신(五辛: 매운 맛을 내는 파?마늘?생강?겨자?후추)을 절제해야 한다. 정신을 편안히 해 기쁨과 즐거움을 베풀고, 기운을 아껴 온화함과 순수함을 보전하라. 누가 장수와 요절을 운명이라 하는가? 수양하고 유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으니, 그대가 이 이치를 존중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라도 진군(眞君: 도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주재자, 즉 조물주)을 뵐 수 있을 것이다. --- p.246~247
우리 마을에 90세가 넘은 노인이 있는데, 먹는 기세가 젊은이 못지않았다. 내가 음식 먹는 법에 대해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잘게 씹어 삼켜서 침과 함께 넘겨야 양분이 비장으로 들어가 화색이 충만하게 된다. 거칠게 먹으면 모두 찌꺼기가 되어 창자를 메울 뿐이다.” 또 다른 한 노인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일생 동안 음식을 대할 때 그 절반은 남겨두어야 하고, 남기고 다 먹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대개 사람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별것이 없고 천록(天祿: 하늘이 주는 복되고 영화로운 삶)이 다 되면 죽는 것이니, 닥치는 대로 마구 먹는 사람치고 머리가 희도록 오래 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 생각에도 사람이 이 두 노인의 말처럼 한다면 창자 속이 늘 편안할 것 같으니, 이는 섭양(攝養)하는 중요한 방법일 것이다.
--- p.262~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