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8년 02월 28일 |
---|---|
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152*210*20mm |
ISBN13 | 9788995912751 |
ISBN10 | 8995912758 |
발행일 | 2008년 0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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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152*210*20mm |
ISBN13 | 9788995912751 |
ISBN10 | 8995912758 |
1. 과거로 가는 지하철 |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음 파리를 꿈꾸는 것 같다.
보통 여행에세이를 보면 너무 빡빡한 일정에,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봐야하는
빡빡함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왜 여행을 보는 것에만 집중하는지 좀 휴식을 주고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그런 에세이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여행은 똑같은 것을 보고도, 똑같은 일정을 가지고도 각자 다른 생각과 상상과 휴식을 주는 것 같다.
똑같은 미술관을 가도, 똑같은 작품을 봐도 똑같은 사람을 만나도
각기 보고 느끼는 것들이 다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이 파리와 파리미술관과 적절히 스케치되어 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여러가지, 이 책이 그 즐거움을 준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내 멋대로 파리에 관한 이야기일거라고, 적어도 미술관 순례기이겠구나라고 생각해버렸다. 파리 블루- 우울한 파리- 라는 뜻이었을까. 이 책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글을 풀어놓았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에세이라고 해야할까. 이 글을 쓰는 동안, 아니면 그 이전, 이후까지도 작가는 우울하다. 항상 멋지고 낭만적인 도시였던 파리마저도 왠지 우중충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바리바리 싸들고가 방문하는 곳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퐁피두센터, 오르쉐 미술관, 루브르... 좀 더 밝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다소 의외였다. 역시나 여행을 가서 보는 것들은 자신이 아는 것에 한정되어진 것일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나 역시 힘들고 괴로웠기에,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책읽기가 조금 버거워졌다. 그녀의 어두운 기억 역시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같이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이 아무 데서나 부둥켜안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파리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다시《백년 동안의 고독》주인공들처럼, 그들의 사랑놀이는 그들 자신뿐 아니라 주변 모든 것에까지 영향을 미쳐, 심지어 주변 가축들의 번식력까지 엄청날 정도로 늘려놓듯 그들 사랑에 나도 덩달아 감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처럼 이 책 곳곳에서 부둥켜안고 있는 연인의 모습에 대한 글이나 사진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이가 둘이나 있고, 남편도 있는 그녀도 외로웠던 것일까. 그녀의 글 중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 이야기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사랑에 집착하고, 결국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와 명성을 얻지 못하는 까미유의 모습에 자신이 투영되어서일까- 그녀는 로댕을 오뎅이라고 부르면서 (이 부분은 참 크게 웃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피식 웃었다.) 까미유의 일을 안타까워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여행기가 있고, 어떤 여행기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당시 상황에 따라 달라지듯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과 끝에 서로 상반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다만, 이 책을 여행을 가기 위한 지침서로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파리를 처음 느껴본다면, 너무 안타까울 듯 싶다. 자신의 파리를 잘 구축해 놓은 다음, 작가의 파리를 나와 비교하는 재미를 느끼며 읽업길 권하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 파리에 갔었다. 에어프랑스기의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영원처럼 느껴지던 열두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말로만 듣던 루브르 미술관이며 베르사유 궁전, 로댕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등을 직접 볼 수 있다는 환희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 절망으로 바뀌어버렸다. 하필이면 그 때 파리의 모든 미술관들이 모조리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때 허탈하게 돌아오면서 반드시 다시 돌아와서 일주일동안 미술관만 질리도록 돌아다녀야지 다짐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껏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파리의 미술관에 대한 이런 진한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블루',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보는 순간 7년전의 아픔이 생각났고 그 아쉬움을 간접경험으로나마 달래볼까 싶은 생각에 얼른 집어들게 되었다. 책을 우선 주르륵 흝어보니 풍경보다는 사람들 사진이 많이 눈에 띈다. 키스하는 연인들, 포옹하는 연인들, 나란히 서서 그림을 감상하는 연인들...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갔을 때 무슨무슨 유명한 장소를 찍은 사진보다는 그곳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찬찬히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씩 의아해진다. 이 책의 정체성이 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흔히 말하는 여행기는 아니다. 파리에 가서 사진도 찍고 그곳에서의 감상도 적고 했으니 여행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회상이 너무나 많다. 작가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술관에서의 감상과 그것들을 섞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라 부제가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국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내용의 책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참으로 아쉽다. 파리의 미술관들과 나는 아직 인연이 아닌가보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볼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접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