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험을 하던 중, 뭔가에 끌리듯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초요갱』을 한창 집필하던 때 이야기가 풀리지 않아 긴 시간 동안 길 위로 떠났다. 다시 돌아온 후에야 『초요갱』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초요갱』으로 ‘제3회 혼불문학상’ 최종심 13편에 올랐으며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으로 ‘제1회 오산문학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왕은 한문이 아니라 조선만의 독창적인 글을 창제하고 싶다는 뜻을 그들에게 은근히 내비쳤다. 그 후 많은 대화가 오간 후에야 그들은 강녕전을 나올 수 있었다. ‘조선의 글이라.’ 학문을 좋아하는 평원대군의 입장에서도 부왕의 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글을 창제한다는 것은 어쩌면 대외적으로 명나라와 전쟁까지 불사해야 할 만큼 엄청 위험한 일이었기에 더더욱 걱정되었다. --- p.29
“아, 아니. 네가 다치지 않았다니 그것만으로도 되었다.” 다래의 얼굴은 인품과 덕을 겸비해서 청아하고 수려했다. 평소에 미색을 가까이하지 않던 평원대군은 뭔가에 홀린 듯 다래를 향한 눈길을 좀처럼 거둘 수가 없었다. 다래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대군의 눈길이 너무나 뜨겁게 느껴졌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는지요?” --- p.52
“평원대군의 무엇이, 그 무엇이 너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이냐? 도대체 무엇이?” 다래의 코앞까지 다가간 계양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여인이 사내에게 연정을 품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사옵니까? 그저 그분 곁에 제가 있음이 좋을 뿐이옵니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다래의 목소리가 계양군의 심장을 콕콕 찔렀다. --- p.141
유어당은 다래의 굳은 결심을 이기지 못해 결국 ‘초요갱’이라는 기명으로 다래를 기적에 올렸다. 이제 다래라는 이름 대신 초요갱이라는 기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유어당은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유어당은 말을 건넸다. “나도 이제부터 너를 초요갱이라 부르겠다.” --- p.267
궐에서 연회가 열렸다. 초요갱은 여악 행수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준비로 마음이 분주했다. 그 옛날 사랑하는 평원대군 앞에서 춤을 출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런 행복한 마음을 그녀는 모든 이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곧 박 소리가 한 차례 들리자 악공들의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기나긴 장삼을 하늘 높이 날렸다. 그러자 잔뜩 낀 먹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초요갱은 조선 초기 기녀로 재예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실록에 황진이가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 데 반해, 초요갱은 역사적이고 극적인 사건에 수차례 등장한다. 소설에서 초요갱은 예인의 운명을 타고난 어린 여자아이였지만, 평원대군과의 만남을 통해 왕실과 연을 맺게 되면서 정치사에 휘말린다. 다사다난한 운명을 지나, 그녀는 모든 은원을 정리하고 재예에 힘을 쏟으며 박연의 수제자로서 궁중악을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