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차의 유리문으로 성경과 상화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성경은 부풀어 오른 배를 부여잡고 뛰었다. 그 뒤로 은색 양복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두려움에 질린 사람이 2호차 쪽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로 빨리 가려고 밀치는 바람에 3호차 객실도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용석은 무슨 일인가 싶어 4호차 쪽을 돌아보았다. 성경과 상화 그리고 은색 양복이 3호차 쪽으로 더 가까워졌다. 은색 양복은 입을 벌리고 괴성을 내질렀다. 용석은 처음 보는 감염자의 모습에 처음에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막아.” 중얼거리듯 말하던 용석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막아!” --- p.68
“아니, 어떻게 뚫고 가려고? 그래, 뚫고 가서 구했다 쳐……. 다시 어떻게 올 건데?” 석우는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그래, 운 좋게 9호차에서 10, 11, 12호차 세 칸을 헤치고 13호차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곳에서 수안을 구해서……. 그다음엔?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저들을 헤치고? 조금도 다치지 않고? 감염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왕복으로 여섯 칸이었다. 아귀 같은 것들이 미쳐 날뛰는 지옥 같은 곳을 무려 여섯 번이나 건너야 했다. 상화한테 붙잡힌 팔을 내려다보는 석우의 눈에 생기가 점점 옅어졌다. “……15호차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영국이 울음이 덜 가신 목소리로 말했다. 상화와 석우의 시선이 동시에 영국에게 꽂혔다. “방금 친구랑 통화했거든요. 15호차래요.” --- p.125
퍽! 석우는 용석에게 달려들었다. 석우의 주먹이 용석의 턱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용석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분이 풀리지 않은 석우는 용석을 덮쳐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왜 그랬어! 왜! 전부 올 수 있었는데! 왜!” 용석이 숨이 막힌 듯 발버둥 쳤다. “켁켁……. 놔, 이거 놔!” 용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잘못하면 모든 원망이 자신에게 쏟아질 수 있었다. 다른 승객들까지도 용석이 너무했다며 몰아붙일 수 있었다. 남 탓은 원래 하기 쉬운 법이었다. 용석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새끼 좀 빨리 떼 봐! 이 새끼 이거 감염됐어!” --- p.176~177
“……아빠는 안 무서워요?” 그 말에 석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석우는 곧 애써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 아빠도 무서워.” “아깐 너무 무서웠어요……. 아빨, 다시 못 보게 될 거 같아서…….” 수안의 말에 석우는 마음이 떨렸다. 수안이 무서운 것은 저 괴물 같은 감염자들이 아니었다. 감염자들한테 물리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볼 수 없는 것……. 수안은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빠, 계속 같이 있어 줄 거죠?” --- p.196~197
석우를 바짝 쫓아온 감염자 하나가 계단을 잡고 매달렸다. 감염자는 금방이라도 계단에 오를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성경과 수안이 비명을 질렀다. 석우는 계단을 내려가 손잡이를 잡고 있는 감염자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감염자가 이때가 기회라는 듯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석우는 손으로 감염자의 손을 떼어내는 것은 포기했다. 어느새 감염자 뒤에 또 다른 감염자가 매달리고, 그 뒤로 또 다른 감염자가 매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달린 감염자들의 수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삼십, 오십……. 감염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리자 열차의 한쪽 바퀴가 선로에서 살짝 떨어졌다 다시 붙었다. 열차의 속도도 점점 느려지는 듯했다. 자칫하면 열차가 멈춰 서거나 선로를 이탈할 수도 있었다. 석우는 이를 악물고 감염자의 손을 발로 짓밟았다. “제발! 제발, 놔! 놓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