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인간이야말로 창조하는 인간이다
인상파의 대가 르누아르는 평생 그림을 하나의 놀이처럼 대했다. 그가 샤를 글레르의 문하에 있을 때였다. 엄숙하고 규범적인 태도를 중시한 스승이 “자네, 지금 그림을 재미삼아 그리는 건가?”하고 물은 적이 있다.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어 보이는 르누아르의 그림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그럼요, 저는 재미를 못 느끼는 그림은 아예 그릴 생각을 안 해요.”
순간, 스승의 얼굴은 노기로 벌겋게 물들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와 관련해 동료 화가 알베르 앙드레는 이렇게 덧붙였다.
“르누아르의 대답에 핵심이 있다. 그는 무한히 즐겁기 때문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것으로 어떤 종교적인 사명을 완수한다거나 공화정을 구제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은 이념적, 정치적 프레임에 반발하는 성질이 있다. 명분이나 도덕, 정의를 앞세우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억압으로 기능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저 자유를 사랑하고 열정을 사랑한다. 예술이 권위나 이상에 치이다 보면, 일종의 경직 현상이 일어난다. 권위와 이상에 압도될 때 예술은 경화된다.
--- pp.50~51
더하고 결합하고 합성하라
물리적으로 1+1은 2다. 그러나 예술과 상상력의 세계, 창의력의 세계에서는 1+1이 꼭 2인 것만은 아니다. 2 이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데페이즈망의 합성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사람과 물고기가 결합된 인어는 단순히 특이한 합성물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아온 위대한 창조물이었다. 우리의 꿈과 희망, 그리움과 사랑을 대변해온 사랑스러운 피조물이었다. 마그리트는 이런 인어를 물고기의 상체와 사람의 하체를 결합해 다른 종으로 진화시켰다.
이 인어는 전혀 다른 판타지와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부조리랄까, 우리 시대의 모순을 환기시키는 힘이 있다. 이처럼 무엇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1+1은 10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다.
--- pp.130~131
거부하고 흔들고 전복하라
지루한 상황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 상황을 뒤집어엎고 싶어 한다. 지루한 생각이 계속되면 뇌는 이를 뒤집어엎고 싶어 한다. 전복은 이렇게 이뤄진다. 지루함은 삶을 파괴한다. 살아 있어도 지루하게 산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창의성은 다른 무엇보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전복의 결과물은 그 혁명성으로 인해 전복의 대상이 된 관념이나 상황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전복이라는 게 위가 아래로, 아래가 위로 뒤집힌 게 아닌가. 줄기가 뿌리를 볼 수 없고 뿌리가 줄기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낮이 밤의 전복이고, 밤이 낮의 전복인 것처럼 말이다.
전복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미술가들의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거부, 도발의 몸짓이 담겨 있다. 그들에게 현실은 타파해야 할 그 무엇이다. 삶은 진부해져서는 안 되며 상투적인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들은 끝없는 전복으로 세계의 심장을 계속 펄펄 뛰게 만들려 한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런 그들은 미치광이나 구제 불능의 반항아처럼 보이곤 한다. 전복이 불가피한 세계의 운행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p.156~157
창조의 배는 늘 블루오션으로 향한다
오늘날 대단한 칭송을 받는 위대한 예술적 블루오션의 개척자들, 이를테면 반 고흐나 고갱, 세잔, 키르히너, 실레 같은 예술가들이 살아생전 얼마나 고생을 했나를 돌아보면 그 시장의 고유한 성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고객과 미래의 상황을 전제로 분석 프레임워크를 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석할 게 있어야 분석하지 않겠는가. 방법론으로서 블루오션 전략은 그러니까 철저히 현실 고객과 시장을 상대하는 기업과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블루오션 전략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하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정으로 차별적인 삶, 나아가 창의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레드오션에서 빠져나와 블루오션으로 가야 한다는 김위찬 교수와 마보안 교수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위대한 창조자들은 모두 블루오션의 개척자였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 pp.18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