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그렇게 했다. 플로리다에서 온 별 볼 일 없는 아이, 제이콥 포트먼이 그렇게 했다. (……) 물러서. 내가 말했다. 일어나. 내가 말했다. 인간의 입으로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리의 언어로. 그리고 기적처럼 괴물은 그렇게 했다. 육체가 순종하는 동안에도 놈의 눈동자는 나에게 반항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악몽을 길들였고 놈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잠들어 있던 것들은 깨어나게 마련이고 주문은 풀리게 마련이었다. 우연히 걸린 주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침착한 겉모습 안에서 꿈틀거리는 할로우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 p.16
“악랄한 것,” 그가 말했다. “무시무시한 것, 비열한 것. 만약 너희들이 악랄하고 무시무시하고 비열한 것들을 좋아한다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게 전부 다 그곳에 있단다. 나는 늘 뱃사공 일을 접고 그곳으로 은퇴하는 꿈을 꾸곤 하지. 우징 스트리트에 아담한 도살장이나 하나 운영하면서…….” “거기 이름이 뭐라고 했죠?” 애디슨이 물었다. “악마의 영토.” 동경하는 듯한 목소리로 뱃사공이 말했다. (……) “만약 저렇게 법도 없고 통제가 불가능한 루프로 탈출하면 잡을 수가 없어.” “지옥이 따로 없네.” 내가 말했다. “그런데 누가 그런 곳에 자발적으로 가겠어요?” “어떤 사람에게 지옥인 곳이,” 뱃사공이 말했다. “어떤 사람에겐 천국이니까. 진정한 자유가 있는 최후의 보루이니까. 뭐든 살 수 있고 뭐든 팔 수 있고…….”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뭐든 숨길 수 있고.” --- pp.74~75
저기가 바로 와이트들의 요새였다. 그곳에는 마치 눈 코 입을 지워버린 얼굴처럼 어딘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공백 같은 것이 있었다. 위치도 어딘가 이상했다. 거대한 흰색 건물과 깔끔한 선은 스모킹 스트리트의 불에 탄 폐허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마치 아쟁쿠르 전장의 한복판에 교외 쇼핑센터가 들어선 것 같다고나 할까. 그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과 목적의식이 생겼다. 나의 한심하고 어수선한 삶의 흩어진 가닥들이 벽 너머의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뭉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저기, 그것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혹은 하다가 죽을 그 일. 내가 갚아야 하는 빚. 지금까지 내 삶에서 느껴왔던 모든 기쁨들, 두려움들을 단지 서곡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그것. 만약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나의 이유는 저 너머에 있었다. --- pp.169~170
엠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생각할수록 나는 흔들렸고 불안해졌다. 바로 우리의 미래가 너무도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엠마를 포함시켜서 나의 미래를 상상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단 하루조차 그려보는 게 불가능했다.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건 나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었다. 나는 천성이 조심스러운 데다 미리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음번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페러그린 원장의 집으로 들어가던 그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의 자유낙하였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보다 유연하고 단단하고 용감한 사람.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했을 사람. 그러나 나의 변신은 완벽하지 않았다. 새로운 제이콥은 과거의 제이콥과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도 나는 너무도 자주,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 pp.327~328
나는 말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실제로 내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렇게 한 사람이 내가 아닐 뿐. 그들이 그렇게 했다. 열한 마리의 할로개스트가 일제히 내 앞에서 일어섰다. 물론 놀라운 일이었지만 나의 몸속에 깊은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순수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우리의 의식을 일제히 껐다가 다시 접속하는 집단 재부팅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일종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고,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내 능력의 무의식적 영역은 물론이고 할로우들의 의식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나의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마리오네트였다. --- p.417
“울지 마. 내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게 있으니까.”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야. 평생에 걸친 나와 내 동생의 개혁과 투쟁이 막을 내리고, 마침내 우리가 이상한 세계의 두 왕으로 등극하는 날이지. 하지만 증인들이 없어서야 대관식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나. 그래서 너희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야.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너희들은 천 년 동안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될 거야. 영혼의 도서관을 장악하고 몰수하는 광경을!”
새의 몸에 갇힌 페러그린 원장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런던에 간 이상한 아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그들을 도와줄 렌 원장을 만나지만, 카울이 이끄는 와이트 군단에게 납치된다. 말하는 개, 애디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제이콥과 엠마는 이상한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인 임브린들을 구출하기 위해 와이트들의 요새가 있는 ‘악마의 영토’로 향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악마의 영토에 유배당한 거부(巨富)이자 괴팍한 수집가인 벤담을 만나 고대 도시 어베이턴의 도서관에 얽힌 신비롭고 놀라운 전설을 듣게 된다. 이 전설에 따르자면 적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유일하게 할로우를 볼 수 있는 소년 제이콥이다. 시궁창 해적들, 거대한 괴물 할로우, 약물에 중독된 이상한 동료 반역자 등 제이콥을 노리는 적들의 공격은 더욱 교묘하고 악랄해져가지만, 이상한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루프와 사랑하는 친구들을 되찾겠다는 제이콥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에 사로잡힌 카울과 이에 맞서는 가장 ‘이상한’ 능력을 가진 소년 제이콥! ‘이상한’ 세계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어둠의 세력과 벌이는 그 치열한 마지막 승부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