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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 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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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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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58쪽 | 428g | 134*223*30mm
ISBN13 9788932471501
ISBN10 893247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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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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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송숙경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경성관립사범대학 여자연습과를 졸업하고, 휘문출판사 「한일(韓日) 사전」 편찬위원, 「태양신문(太陽新聞)」(일어판)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한한일영(韓漢日英) 현암소사전》을 엮었으며, 옮긴 책으로는 《젊은이를 위한 인생론》, 《부하를 움직이는 화술》, 《문제아·이상아》, 《대멍청이[織田信長]》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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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어머니 얼굴에 닿아서 어머니의 눈이 파랗게 보일 정도로 빛나 보여서, 그 은근하게 노여움을 띤 듯한 얼굴은 달려들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어머니의 얼굴이 아까 그 슬퍼 보이는 듯한 뱀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 살고 있는 살무사 같은 울퉁불퉁하고 흉악한 뱀이, 이 슬픔이 깊고 처절하게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는 물어죽여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왜 그런지, 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드럽고 화사한 어깨에 손을 얹고 이유모를 몸부림을 쳤다. --- p.29

내가 조숙한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댔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못 쓰는 사람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체해 보였더니 남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부자인 체했더니 남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댔다. 내가 냉담을 가장했더니 남들은 나를 냉담한 놈이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내가 정말 괴롭고, 나도 모르게 신음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체 가장하고 있다고 수군댔다. 아무래도 이가 맞지 않는다. --- p.85

아아, 이 사람들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나의 연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가 싶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무렇게라도 끝을 볼 때까지 살아야 한다면, 이 사람들이 끝을 볼 때까지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모습도 노상 미워만 할 수 없지 않을까. 살아가는 일, 살아가는 일, 그건 어쩌면 이토록 숨이 막히는 사업일까. --- p.165

인간에 대해 언제나 공포에 떨며 또 인간으로서의 나의 언동에 눈곱만한 자신도 가질 수 없었고, 그 괴로움은 가슴속의 작은 상자에 감추어 놓고 그 우울, 그 신경질을 꼭꼭 감추어 두고 오직 순진하고 낙천적인 양 꾸몄으며, 나는 이렇게 어릿광대 같은 괴상한 성격으로 차츰 완성되어 갔습니다. --- p.211

처세의 재능…… 나로서는 진정 쓴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처세술의 재능이 있다니! 그런데 나처럼 인간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속여넘기고 있는 것은, 아마도 속담에 ‘귀신도 건드리지 않으면 재앙을 주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영리하고 교활한 처세훈을 받들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서로가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틀린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인 양 평생 동안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상대자가 죽으면 울먹이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게 아닐까요. --- p.300

애처로운 어린 계집아이의 노래 소리가 환청같이 희미하게 멀리서 들려옵니다. 불행. 이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에 대해서 당당히 항의를 할 수가 있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그러나 나의 불행은 모두가 자신의 죄악 때문이기에 누구에게도 항의를 할 형편이 아니고, 또 더듬더듬거리면서 한 마디 항의 비슷한 말을 꺼내기만 한다면, 히라메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 온통 전부, 어쩌면 저렇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하며 기가 막혀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도대체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횡포한 사람’인지, 또는 그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지만, 하여튼 죄악의 덩어리인 모양이어서 어디까지나 자꾸만 자꾸만 스스로 불행해질 뿐, 방지할 구체적인 대책 같은 게 없는 것입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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