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나야 쉰다
나는 전에 당나라 사람의 시를 보다가 “몸에 병이 들자 그제야 한가롭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달프게 일하느라 잠깐의 휴식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한가로운 시간을 차지할 수 있는 경우란, 단지 몸에 병이 생기는 그때뿐임을 이 구절은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늘 읊조리면서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데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의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가엾게 여겼다.(박장원) --- 본문 중에서
돗자리를 짜다
이제 나는 과거 문장도 풍월도 일삼지 않는다. 산속에 몸을 붙여 살아가므로 궁색하기가 한결 심하다. 따라서 농사짓고 나무하는 일이 내 분수에 맞는다. 더욱이 돗자리를 짜는 일이야 그다지 근력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잖은가?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고 신경 쓸 일이 없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 형제의 집에서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억지로 내게 자리라도 짜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웃 사는 노인을 불러서 자리 짜는 방법을 가르치게 했다. 나는 속을 죽이고 그 일을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김낙행) --- 본문 중에서
구경하려는 욕망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즐기려는 욕망이란 것은 다른 온갖 욕망의 우두머리이다. 구경거리라 함은 좋은 물건, 좋은 풍경 등으로, 무릇 모든 일상적인 것과 다르기에 구경할 만하고 즐길 만한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듯 많은 볼거리에 대한 욕망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임금님이 거둥할 때이다. 이때는 서울이며 지방의 양반과 서민들이 남에게 뒤질세라 다투어 모여들어 산과 들판을 뒤덮는다. 길옆에 있는 집은 모두 사대부 집안 부녀자들이 차지한다. 염치와 위신은 모두 내팽개친다. 심지어는 길에서 해산하는 사람도 생기고, 다락에서 헛디뎌 떨어지는 사람까지 생기는 등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도 구경하는 것이라곤 펄럭이는 깃발과 무리 지어 달리는 군사와 말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윤기) --- 본문 중에서
아버지와 아들
집요한 성격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비슷하여 그들 사이에도 서로 양보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리 심할까?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과 그 아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는 사사건건 의견이 갈려서 서로가 제 의견을 내세우느라 서로 져본 적이 없다. 이웃 사람이 죽어 상제(祥祭)날이 가까워오자 제수로 쓸 초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때 서계는 아무 날이라고 주장하고 정재는 다른 날이라고 주장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망자의 아들을 불러 물었더니 대답이 정재의 주장과 맞아떨어졌다. 그러자 서계가 “무릇 사람이 불초한 자식을 두면 죽은 날 제삿밥 얻어먹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심노숭) --- 본문 중에서
동해의 풍파 속에서
“아아! 풍파가 거세게 몰아쳤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사물이 이처럼 잃은 것이 없다니 세상 풍파와는 정말 다르구나! 세상 풍파는 환해(宦海, 벼슬의 바다)에서 일어난다. 저 환해는 실제 바다는 아니므로 풍파도 진짜가 아니다. 풍파가 일지 않기 망정이지 일어난다면 곳곳의 벼슬자리는 난리 나고 요동친다. 그럴 때 부서지고 꺾이고 거꾸러지고 휩쓸리고 물에서 벗어나 육지로 떨어지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너무도 심하지 않은가? 이런 일은 실제 풍파는 일으키지 못하는 반면, 가짜 풍파는 잘 일으킨다. 대체 어떻게 가짜가 진짜보다 더하단 말인가?”(임숙영) --- 본문 중에서
이제 일기를 그만 쓴다
“아들이 죽었으니 책을 전해줄 대상이 사라졌다. 책을 읽고 평하며, 덜고 보태서 정리해줄 사람이 없어졌다. 책은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다. 나는 참으로 지혜롭지 못하다.” 여름철이 시작된 지 마흔두 번째 날이 아들이 죽은 날이다. 일기의 정미(丁未) 부가 끝을 맺었다. 이윽고 또 장사를 치르고 애도하는 과정에서 쓴 기록들을 모으되 내가 상복을 벗는 초하루 아침까지 쓴 기록을 싣고서 이름을 정미지부(丁未支部)라고 붙였다. 여기서 지부(支部)라고 한 것은 나머지라는 뜻이다. 차마 잊지 못하는 뜻을 담았다. 후세 사람들이 내 정미년 지부(支部)의 일기를 보게 된다면 일기를 통해서 확인하고 찾아보려 한 나의 생각이 이해에 중단되었음을 알아차리리라. 오호라! 슬프구나! (유만주) --- 본문 중에서
자고 깨는 것에도 도가 있다
나는 잠자는 사람이다. 왜 잠을 자는가? 잠자지 않으면 깨지 않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는 사람 역시 나다. 깼다가 잠이 들고 잠이 들었다가 깨어 밤낮이 서로 시작하고 끝이 되며 순환한다. 아! 깨어 있는 시간은 살아 있는 것이요, 잠자는 시간은 죽은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고 죽어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건만 나는 탐욕스럽게 오로지 잠을 즐길 뿐 싫증을 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사실은 자고 깨는 것에도 도가 있는 것이다.(권상신) --- 본문 중에서
생색내지 마세요
서너 달 홀로 잠을 잔 것을 가지고 고결한 행동이라고 하면서 덕을 베풀었다고 생색을 내는 것을 보면, 당신은 욕망이 없는 담박한 사람은 분명코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결백하여, 밖으로는 화려한 치장을 끊고 안으로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분이라면, 굳이 서찰을 보내 자신이 행한 일을 자랑한 뒤에야 남들이 그런 사실을 알아주겠습니까? .
여러 달 홀로 잤다고 당신은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 끝에 구구절절 자랑하지마는, 예순 살이 곧 닥칠 분에게는 이렇듯이 홀로 지내는 것이 양기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이 제게 갚기 어려운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송덕봉) --- 본문 중에서
당신이나 잘하시오
아! 족하께서 저를 책망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틀리지 않고, 족하께서 저를 아끼시는 정은 참으로 넉넉합니다. 그렇지만 남에게 잘하라고 하기는 쉽고 자기에게 잘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족하께서 제게 잘하라고 한 것을 가지고 자신에게 잘하라고 할 수 있다면 또 다행일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권필은 말씀 올립니다.(권필) --- 본문 중에서
서울을 등지는 벗에게
떠나시오, 그대여! 떠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마시오! 풍년이 들어 곡식이 넉넉하면 세금을 바치고, 산에서는 나무하고 물에서는 낚시하면 맛좋은 음식이 갖추어지겠지요. 좋은 혼처는 아닐지라도 며느리를 얻어 혼사를 맺겠지요. 편안히 서책을 즐기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기댈 곳을 마련하여 학(鶴)처럼 사는 노인이 되시오.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 터이니 우리의 도(道)가 동쪽으로 옮겨 갔군요. 그대의 아름다운 덕을 힘써 가꾸어 그대의 끝맺음까지 생각하시오. 그리고 그대의 소식을 금인 양 옥인 양 아끼지 말고 때때로 좋은 바람결에 들려주시오. 내 비록 그대를 따르지는 못하나 역사책 속에서 옛사람의 이름을 보듯이 하겠소.(장지완) --- 본문 중에서
속태 악태 추태
속태(俗態)
○사람을 만나자마자 바로 이름과 자(字)를 묻는다. ○사람을 만나서는 불쑥 “오래도록 큰 명성을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빈궁한 처지를 돌보아주지도 않던 사람이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시는지요?” 하고 묻는다. ○병자의 집에 이르러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요?” 하고 묻는다. ○상갓집에 가서 “제수를 어떻게 장만하시는지요?” 하고 묻는다. ○청탁 편지에 “오직 당신만을 믿으니 범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쓴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말을 예사로 쓴다. ○조금 이롭지 않게 되면 자신의 궁한 운명을 한탄한다. ○부채를 흔들며 거드름 피운다. --- 본문 중에서
악태(惡態)
○남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일을 억지로 캐묻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장황하게 말하며 남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남이 주는 물건을 받고는 도리어 “좋은 물건이 아니군요!” 하고 말한다. ○말끝마다 아무개 벼슬아치가 자신과 친하다고 말한다.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때 잘사는 고을이 아님을 탄식한다. ○역임한 관직에서 잘 대처한 일을 자랑한다. ○술이나 음식을 강권한다. ○술이나 음식을 요구한다. ○갈 듯 말 듯하면서 지루하게 말을 끈다. ○말도 꺼내기 전에 웃기부터 한다. 같은 말을 거듭한다. ○청탁하는 말을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큰 소리를 내며 음식을 씹어 먹는다. ○큰 소리로 후루룩 국을 들이마신다. ○귀에 대고 비밀을 속닥인다. ○남의 이야기를 불쑥 끊는다. ○담배를 피우면서 대청 구멍에 남은 재를 턴다. --- 본문 중에서
추태(醜態)
○콧구멍을 후벼 판다. ○이 사이에 낀 때를 긁어낸다. ○손으로 발가락을 문지르고 냄새를 맡는다.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측간에 간다. ○남의 빈 벽에 제멋대로 침을 뱉는다. ○아무 데고 오줌을 눈다.○ 종일 음담패설만 한다. ○이를 잡아서 문지방을 더럽힌다. ○침을 뱉어 붓에 묻힌다. (김창흡, 권섭)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