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9년 09월 04일 |
---|---|
쪽수, 무게, 크기 | 520쪽 | 605g | 130*224*35mm |
ISBN13 | 9788937462191 |
ISBN10 | 8937462192 |
발행일 | 2009년 09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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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20쪽 | 605g | 130*224*35mm |
ISBN13 | 9788937462191 |
ISBN10 | 8937462192 |
1부 2부 |
'안나 카레니나'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인 동시에 제목이기도하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 가면서 알았다.그저 주인공의 이름만이 아니였을지도 모른 다는것에 대해서.
"당신이 묻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쟎아요? 아기의 성에 대해 묻고 싶었죠? 그렇죠? 알렉세이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어요.아기에게는 성이 없어요.즉 카레니나라는 거죠"
이름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는 누군인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동시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의식 혹은 가치관을 두지 못한다면 레빈의 말처럼 우리는 자살이란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를테니까.
<안나카레니나>는 그저 불륜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끊임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 진다.그렇기때문에 만만치 않은 3권으로 구성된 분량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끊임없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레빈의 삶과 사랑이 아니면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는 안나의 삶이 있었다. 분명한건 어느 누구도 레빈의 삶이 더 가치있으며 안나의 삶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수 없게 만든다.
외로웠기때문에 사랑이 필요했을 안나였을지도 모르겠다.그럼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외로우면,사랑이 없으면 누구나 다 죽는가? 라고..다 죽지는 않겠지만 어느 부분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지 않을까? '불륜'이란 코드로 읽어 낸다면 안나는 한없이 이해받을 수 없는 여성일지도 모르겠다.
안락한 가정과 어느정도의 지위를 가진 남편이 있었지만,자신이 껍데기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사랑'이란 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던 안나였으니..
그에게 사랑이란 그저 그런 사랑이 아니였을게다.사랑은 곧 안나의 분신이였을 테니까.
결말을 알고 읽었던 소설이였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었던 결말의 그 내용이란 것은 얼마나 조악했던 것인지..
불륜..그리고 자살.!
그러나 소설은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묻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래서 더욱더 안나의 삶이 더 측은하게 다가왔다.
안나 카레니나를 올 해 펼쳐들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섬세하게 집필한 이 작품을 볼 때면 제목으로 암시된 안나 카레니나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민음사의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이 책의 표지는 이반 크롬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다. 미지의 여인의 표정은 매우 강렬하다. 도도하면서도 약간 음울해 보이기도 하고 도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1권은 안나 카레니나가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고 키티가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이 책의 처음은 너무도 유명해서 언급하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일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13
그런데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저 유명한 첫 문장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글 속의 톨스토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모든 남자 주인공들 속에 톨스토이가 숨어있는 듯 여기 저기서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내 독자와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등장인물 중 레빈이 가장 톨스토이를 잘 대변하는 듯 보여지지만 나는 이 책 내내 모든 등장인물들로 분해서 말을 거는 톨스토이를 느꼈다. 때로는 사회에 비판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를 분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물들을 평하면서도 그러하였으며 과거를 그리운 눈으로 보는 듯 싶으면서도 혁신을 개혁을 생각하는 듯 보여지는 면들이 내 시야에 잡혔다.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어떤 유파도, 어떤 견해도 선택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유파와 견해가 그에게 찾아왔다. (중략) 그의 주변에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보수주의보다 자유주의에 더 애착을 가진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주의가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유주의가 그의 생활 방식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26~27
위에 소개한 글처럼 튀어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소개는 가끔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고 그 시대의 러시아와 그 시대를 살아간 러시아의 지식인층과 귀족층, 새롭게 부상하는 계층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의 러시아는 얼마나 격동적이었으며 유럽의 다른 지역과 또 얼마나 독특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는 지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속에서 안나 카레니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만남을 보면 그것은 은밀함과 노골적인 면이 서로 뒤엉켜 있다. 본능과 욕망의 질주에 가깝다. 그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찰나에 지나가는 것을 포착하는 사냥꾼처럼 브론스키는 안나의 숨겨진 내면을 잡아낸다.
그 짧은 시선을 통해, 브론스키는 그녀의 얼굴에서 뛰노는 절제된 활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붉은 입술을 곡선모양으로 만든 희미한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 사이에서 차분한 생기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녔다. 마치 그녀의 존재에서 어떤 것이 넘쳐흘러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짝이는 눈빛과 미소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일부러 눈 속의 빛을 꺼버리긴 했지만, 그 빛은 그녀의 의지에 반해 희미한 미소로 반짝였다.
본능이 느껴진다. 절제됨 속에 감추어진 모든 것들이 꿈틀대는 일종의 욕망과 생기, 책 속의 안나는 얼마나 이런 빛을 감추고 살아왔던 것일까? 어린 시절의 독서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을 남겼으나 나이가 좀 드니 이제 등장인물들이 어리고 젊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직 삶이 아름다울 시절이고 모든 것에 억눌려 있다고 해도 그들은 불꽃과 같은 정열을 가슴 한 구석에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가끔 '아! 이 젊음이여'라고 속으로 외치곤 했다.
오라버니인 스테판의 가정 불화를 해소할 목적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안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부수적으로 달성한 것은 브론스키를 자신의 숭배자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의도함은 전혀 없었을까? 그 일련의 사태를 통해 키티는 그야 말로 절망 속에 빠지고, 키티가 절망 속에 빠트린 레빈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의도함이란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고 찰나를 포착한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후 행보는 서로를 향해 다가가면서 모든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소용돌이에 몰아 넣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작은 통로에 멈춰 선 채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곰곰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비록 자신의 말도, 그의 말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짧은 순간의 대화로 그들이 무섭도록 가까워졌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에 놀라면서도 행복을 느꼈다. -228
안나가 느낀 행복이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억눌려진 감정의 솔직한 표출이기도 하고 안나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형식적인 것을 벗어던진 솔직함. 도덕이나 다른 것에서 벗어난 젊음의 본능.
안나와 브론스키는 이제 서로를 주시하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듯 보여진다. 내게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첫만남에서부터 이미 그에게 시선을 빼앗겼고 마음의 일부를 놓은 것처럼 보여졌다. 그래서 마침내 안나가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순간을 읽어가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환하게 드러나기 마련이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도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자명했다.
이렇게 페테르부르크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서로 엮이는 동안 키티는 어찌 보면 행운아였음에도 실연의 아픔 속에 병을 앓게 되고 레빈은 레빈대로 키티에 대한 실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기대감없이 무엇이 진행될 지 잘 아는 사람처럼 능숙하고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레빈의 언급을 통해 귀족적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것은 누구의 생각인 것일까? 레빈의 말 속에 숨은 톨스토이가 아닐까?
아니, 미안하지만 난 나 자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귀족이라고 생각해. 과거의 가족사에서 심사 대에 걸친 정직한 세대를 가리킬 수 있는 사람, 높은 수준의 교양(재능이나 지성은 별개의 문제야.)을 갖춘 사람, 나의 아버지와 나의 할아버지처럼 결코 남들에게 아첨을 하거나 남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야. -373~374
이제 1권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브론스키의 경마 경주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면 항상 브론스키의 경주마와 안나 카레니나가 겹쳐지곤 했다. 경마이야기가 마치 책의 앞으로의 전개를 일러주는 듯 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도도한 말과 안나가 겹쳐지고 브론스키의 부주의로 인해 생명을 잃는 말이 안나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경마에서 브론스키는 얼마나 말과 일치감을 느꼈던가? 그가 말과 느낀 교감과 황홀경은 그의 현재 상태를 말해주는 듯 보여져서 나는 항상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잠시 책장을 덮는다. 눈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귓속에서 속삭인다. 그래서 이번에도 며칠의 공백이 있었다. 이미 불륜으로 깊이 엮인 두 사람은 무엇으로 돌파할 것인가? 장애물 경기처럼 삶 속에 모든 것이 장애물인데. 그리고 본질적으로 같지 않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안나의 모성과 안나의 본능과 안나의 욕망과 안나의 의지가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순진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이 아이는 그 두 사람이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던 것, 바로 그것으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나침판이었다. -403
1권의 마지막장을 덮으니, 안나가 걱정이 됩니다.
고위 관리직인 남편 카레닌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지, 그리고 그의 아들 세르게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말이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게 만드는 브론스키와의 열정적인 사랑이 두 사람의 눈을 멀게 했나 봅니다. 남편 카레닌은 아내의 불륜에 대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동원할 것인데...
1권의 클라이막스는 단연 장애물경마장 장면인 것 같습니다.
브론스키의 경마경기를 지켜보는 안나와 안나를 지켜보는 카레닌의 삼각구도가 극에 달하고 그 삼각구도가 깨어지는 장면이니까요.
마치 벤허의 전차경기처럼 스릴있는 경기앞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간절하게 느낀것 같네요.
사랑에 빠지면 오로지 상대만을 보는 열정적인 안나의 모습이 내내 불안하게 느껴지고,
키티에게 청혼의 거절을 받은 레빈이 다시 키티에게 다가갈지 기대가 됩니다.
사교계의 뒷담화,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인지혁명을 일으키게 도와준 것이 뒷담화이론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인류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남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인가 보내요.
또 자신이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사교계에 빠짐없이 나갈수 밖에 없는 귀족들의
모습이 때론 처량하게 느껴지면서, 사교계의 최대 화두가 되어버린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가 2권에서는 어떻게 전개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