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2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26g | 139*204*20mm |
ISBN13 | 9791186900222 |
ISBN10 | 1186900229 |
발행일 | 2017년 0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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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26g | 139*204*20mm |
ISBN13 | 9791186900222 |
ISBN10 | 1186900229 |
서문 _내가 묻고 삶이 답하다 퀘렌시아 _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아서 찻잔 속 파리 _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 _두 가슴의 거리 누군가의 마지막을 미소 짓게 _한 가슴의 상처를 치유한다면 짐 코벳 이야기 _과정이 즐거웠는가 나는 누구인가 _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마음이 담긴 길 _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푸른 꽃 _당신의 푸른 꽃은 무엇인가 지금이 바로 그때 _두 점성가 이야기 예찬 _현실에 색을 입히는 법 당신은 이름 없이 나에게 오면 좋겠다 _여뀌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_프루스트의 장미 혼자 걷는 길은 없다 _영혼의 동반자들과 함께 그대에게 가는 먼 길 _신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비전 퀘스트 _삶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_인생을 놀이처럼 나의 노래는 _잘못 산 인생은 없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_동굴 속 여인의 일화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_사랑하면 다가오는 것들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_춤 명상 마음은 이야기꾼 _마음 챙김 우리는 다 같다 _공감과 연민 얼굴 속 얼굴 _어머니 명상 운디드 힐러 _상처 받은 자에서 치유자로 두 번째 화살 피하기 _고통을 다루는 기술 어머니 고래 _삶이 알아서 하리라 잘못 베낀 삶 _즐겁게 살라는 것 죽음 앞에서 _절실함을 무력화시키는 일상 어느 추장 이야기 _인디언들의 버리고 떠나기 별이 보이는가 _모든 진리를 가지고 오지 말라 상처 주고 상처 받기 _테러리스트가 되지 말고 테라피스트가 되라 수도승과 전갈 _어느 본성을 따를 것인가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 _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_빛은 상처를 통해 들어온다 치료의 원 _바벰바 부족의 지혜 오늘 감동한 일이 있었는가 _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당신의 잎새 _신의 선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_내려놓은 후의 자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_알아차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_마음 챙김 식사 무명의 이름으로 _순종의 열매 내일은 없다 _라마야나 이야기 문어가 말을 걸다 _회복의 시작 닭이 몇 마리인가 _생명들에 값하는 삶 어둠 속에서 눈은 보기 시작한다 _코기 족 원주민 이야기 금 간 보석 _부서져서 열리기 내 안의 비평가 _비평을 넘어 존재로 우연한 선물 _넓어져 가는 원 숫자에 포함시킬 수 없는 사람 _나와 너 히말라야를 그리는 사람 _불확실성과 친해지기 이타카 _네가 걸어온 길이 너의 삶이 될지니 |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처음
책 제목을 보고서 떠오른 건 시인의 시였다. 내가 류시화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이지 싶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희망이 사그라들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를 내려놓아야 할 때, 시린 가슴을 달래주던 것이
그의 시였다. 어디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의 시를 생각하고 아직도 가슴속에서 떠나 보내지 못한 것들을 많이도 생각했었다. 그때만
해도 조금은 센티 해지고 싶은 때도 있었으니까.. 아직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고 발버둥칠 때 이니까..
류시화
시인의 시집은 몇 권 가지고 있다. 시를 지지리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시집을 가지고 있고, 또 아는 시가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그의 산문집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음은 아마 책장에 꽃여 있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 때문일 게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두께에 눌려 바라만 보고 있는지가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그 책을 읽기 전에는 시인의 다른 산문집을 읽는다는 것이 괜시리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삶은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들로 이루어졌다. 목적지는 그 여정에서 선물하는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지점에 불과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또 다른 목적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지라는 말은 트레킹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진리이다. (35)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안겨준다. (83)
삶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에 대해 읽는 책이다. 그 책의 다음 장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알 수
없다.
(184)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201)
시인의
글들을 읽어나가다 다시금 책의 서문을 읽는다. '내가 묻고 삶이 답한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일이다. 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물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삶이 답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서 정신 없이 달려오기만 한 것은 아닐까? 그 목적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신기루마냥
사라지는 오아시스를 보면서 또 다시 달려간 것은 아닐까? 그렇게 달려오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그 과정을 도외시하지는 않았는지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목적지마저 잃은 채 과거에 내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만을 곱씹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라 말했다고 시인은 전한다. 내가 놓친 것들은 과거에
있었던 나의 선택들이 아니라 그렇게 과거에 매몰되어 바라보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 것도 같다. 시인의
시가 다시금 생각난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글쎄 뭐, 누가 인도를 가든 말든 명상을 하든 말든 영을 쫓든 말든 그러니까 자기 인생 자기가 어떻게 살지는 자기 맘이니 내가 거기에 이러쿵 저러쿵 참견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의문이 지속적으로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좀 해보겠다.
첫째, 영적 충만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그들은 인도나, 스페인의 산티아고, 그 밖의 종교적 순례지를 찾는다. 영이라는, 비물질적인 정신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물질적인 장소에 의존하는 아이러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깨달음이 가능한 장소, 깨달음을 도와주는 장소가 따로 있다는 생각은 나와 평생을 함께 해야할 나의 세계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건 마치 내 부모에겐 불효막심한 놈이 남의 부모에겐 세상 그런 효자가 없는 주객전도와 같다.
또 하나. 나의 일상이 완전히 제거된 세계에서 정말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영적 탐구를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생각일 것이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계에 불현듯 나를 던져 놓고 관찰해 보기. 그 세계에서 나는 툭 튀어나온 존재일테니 그 대조로 인해 나 자신을 더 잘 탐구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 대비가 오히려 왜곡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나라는 존재는, 나와 내 세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러니 그 관계가 사라진 장소에서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 왜 내가 인간이기를 거부해야 하는가? 여기 한 마리 사자가 있다. 사자는 어느날 크나큰 영적 깨달음을 얻어 다시는 동물을 잡아먹지 않기로 한다. 대신 사자는 평생 풀을 뜯어먹으며 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자를 사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고귀한 깨달음을 얻은 이 사자를 칭송해야 할까?
화를 내는 것도 나고, 질투하는 것도 나고, 욕망에 눈이 멀어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나다. 인간은 명과 암을 모두 갖고 있다. 비록 명이 좋아보이고 암이 나빠보이지만 그렇다고 암을 뜯어 밖으로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명과 암 모두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번민과 후회, 기쁨과 환희, 질투와 욕망 사이를 취객처럼 비틀비틀 지그재그로 걷는 게 인생이고, 그게 바로 인간이다. 정확히 균형을 잡아 그 사이에 흔들림 없이 가부좌를 트는 것. 그걸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걸 굳이 해야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득도의 경지에 이른 스승들, 신이 된 구루들, 따지고 보면 그들은 끊임없이 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으로 죽고 싶다. 솔직히, 내가 왜 인간을 초월한 다른 무엇이 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셋째, 좀 이기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류시화는 데모가 심하던 80년대 어느날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교정에 앉아 명상을 하는 인도인을 만난다. 그리고 류시화는 그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요동을 친다해도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네, 뭐 찾을 수는 있겠지요.
우리가 군부 독재에 맞서 모두 내면의 평화를 찾으러 떠났다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이었을 것이다. 속세의 일은, 속세의 일일 뿐이니라 하며 자기 내면의 평화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계라면 그 이기적 태도에 숨이 막힐 것 같다. 내 친구가, 내 형이, 내 동생이 군화발에 짓밟혀 머리가 깨지는 와중에도 조용히 명상에 빠진다?
영적 탐구가 추구하는 것은 나의 평화이지 우리의 평화가 아니다. 물론 그들이 우리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이 사는 세상, 같이 살아갈 세상이니 같이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와 세상 사이를 묶어주는 끈을 잘라내려 한다. 마치 태아가 탯줄을 잘라 엄마에게서 분리되려 하듯이. 하지만 마음의 평화란 것도 결국 단단히 두 다리를 딛을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그 터전을 지키고 가꾸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이고, 나는 그 터전 위에서 고귀한 영을 쫓겠다. 나는 이런게 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류시화가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실체적인 진실을 시인 스스로가 증명해 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남들에게는 '구도자'나 '기인'쯤으로 보이는 그이지만 나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충실한 삶을 살고 있고, 그 모든 게 타인에 의한 수동적 선택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결정에 따른 자기주도적 삶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체의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채 시인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을 따라 충만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그의 작품을 한두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겠지만 말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이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난다." (p.46)
자신은 비록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다음 세대를 향해 '너희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라고 말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진심이 담긴 조언이나 충고를 수없이 들어 왔고, 그게 옳다는 믿음 한 가닥은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인생의 말년에 넋두리 삼아 말하는 것과 자신의 방식 대로 살아 온 사람이 '나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은 말의 무게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탐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마음 속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실로 삶 자체를 두려워하는 세살배기 어린애에 불과하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의 80퍼센트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인생의 비전을 차단시킨다. 안전한 길은 큰 기쁨을 주지 못한다." (p.88)
류시화의 신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51편의 산문이 담겨 있다. '마음이 담긴 길',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 '운디드 힐러'. '두 번째 화살 피하기'. '수도승과 전갈', '우연한 선물' 등 작가가 써내려 간 글에는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진실의 힘이 묻어난다. 내가 특히 놀라워 했던 건 작가도 어린 시절에 급성 신장염으로 병원으로부터 치료 불가의 사형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병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나로서는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시름시름 앓는 사이 겨울이 지나갔다. 남향집이라서 창호지 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었다. 기어 나가 방문을 열었더니 정말로 마당 가득 봄이 와 있었다. 마지막 봄이라고 생각해선지 괜히 기분이 설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마당 한쪽의 화단으로 가서 흙을 헤쳐 보니 화초 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와 있었다. 내 몸과 마음에도 봄기운이 스몄다." (p.151)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인상 깊은 글이었다. 그 글에는 메허 바바의 우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스승이 제자들에게 "화가 나면 왜 소리를 지르는가?" 하고 묻는다. 제자들의 여러 대답을 들은 뒤 스승이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고 했다. 화가 난다는 건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게 된다는 명쾌한 논리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여태 그런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사는 게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실체도 없이 흩어지는 듯 느껴질 때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목련의 자태가 유난히 곱다. 우리는 더러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목련을 보며 되묻게 된다. 계절을 알리는 저 꽃들의 개화가 가슴 저린 환희로 다가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이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