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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상화

한국의 초상화

: 형과 영의 예술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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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Korean Portraits
[도서] Great Korean Portraits
조선미 저/이경희 역 돌베개
10% 45,000
Great Korean Portrait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581쪽 | 1366g | 183*233*35mm
ISBN13 9788971993620
ISBN10 897199362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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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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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상화는 왜곡이나 변형을 통한 실제 인물 이상의 회화적 효과도, 특징의 강조를 통한 의도적 과장도 추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실제 인물에 접근하기 위한 사실적 노력만이 극진했다. 이는 천연두 자국이나 기미, 주근깨, 반점 같은 피부상의 특징은 물론, 눈꺼풀의 묘사나 수염 처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시선은 안면과 동일한 각도로 처리되며, 눈의 형상도 실제 모습 그대로를 옮긴 듯 과장되지 않게 묘사된다. 그리하여 초상화를 바라보면 마치 실제 인물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초상화의 명제를 화가 자신이 마음 깊숙이 새기고 따랐음을 말해준다. 한국 초상화의 묘는 바로 이러한 재현의 극에서 오는 뛰어난 표현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젊은 시절의 연임군초상과 51세 때의 영조어진
왕의 초상 가운데 젊은 날의 연잉군과 왕위에 오른 영조의 초상을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궁중에서 제일 하급직인 무수리 신분의 숙빈최씨淑嬪崔氏 몸에서 태어난 연잉군은, 왕자 시절 궁중의 암투를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체감하면서 성장했다.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연잉군은 세자 신분이 아니었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세력과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세력의 극심한 대결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상화에 나타난 연잉군의 모습은 눈꼬리가 올라가고 길쭉한 얼굴인데, 젊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패기는 보이지 않고, 신중하고 온유한 표정이지만 무언가 울적한 기색이 감지된다. 이어 왕위에 오른 후 영조의 모습을 살펴보자. 조선왕조 역대 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길고 각 방면에 재흥의 기틀을 마련한 영주英主이기도 했던 영조의 모습은 홍기 가득한 정력적인 안색, 봉안鳳眼에다가 높은 산근山根 등 홀쭉한 몸체는 젊은 시절의 용모와 닮았지만, 노년에 접어든 영조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왕자 시절의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을 찾기 어렵다. 그의 외모는 이제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인상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 p.p. 76-89

고뇌로 충만한 천재의 내면세계, 김시습초상
천재적 문장가이자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은 나이 스물한 살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분개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출가와 광인 행색, 전국 각지를 떠도는 방랑 생활을 반복했던 그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때로 분노와 역겨움으로 세상을 야유했고, 표리부동한 세상 인심을 비웃으며 자신을 학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50세 이후 그의 모습은 속박의 허물을 벗고 자연으로 돌아간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이 더욱 강했으며, 특히 율곡 이이가 『김시습전』을 지은 이후 그의 유학자로서의 면모가 재평가되면서, 17세기 이후에는 그를 숭배하는 문인들도 많아졌다. ‘네 모습은 지극히 미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구렁 속에 빠져 마땅하다’(爾形至? 爾言至大? 宜爾置之丘壑之中). 매월당 김시습은 생전에 손수 그린 자화상에, 자신의 삶 자체를 가차 없이 질타하는 위와 같은 찬문을 남겨놓았다. 아쉽게도 손수 그린 자화상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 부여 무량사에 전하는 초상 속 그의 초연한 모습 뒤에서, 그가 자찬문에서 토로했던 바, 고뇌로 충만한 비장한 내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 p.p.160~167

기복 심한 삶을 살았던 유학계의 거두, 송시열초상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한 삶을 살았던 우암 송시열은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거유巨儒로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예론에도 밝았다. 성격이 과격하여 많은 정적이 있었지만, 뛰어난 학식과 꼿꼿한 인품으로 그의 문하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따라서 사후死後 그를 추모하여 받드는 수많은 사우祠宇가 건립되었는데, 그중 영정을 봉안했던 영당 및 사우만 해도 적지 않은 수에 이른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하나, 실제 벼슬에 있었던 기간은 다 합해 8년여에 불과할 정도였다. 당파간 정쟁의 한가운데서 조선 유학사의 한 획을 그었으나, 결국 사약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안광이 매우 강하고 풍채가 당당하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송시열의 초상은, 유학계의 거두답게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전해온다. 인물 자체가 워낙 뛰어난 학식과 인품, 영향력을 지녔던 모델이었던 데다, 그의 후손과 따르는 유림들의 세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릴 때도 탁월한 기량을 지닌 최고의 화원들을 통해 최선의 작업을 도모했던 결과이다.
--- p.p.190-201

조선후기 예단의 영수, 강세황초상과 자화상
강세황의 초상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남긴 자화상들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왕으로부터 사대부와 여인, 스님 초상까지 많은 수량이 남아 있지만 자화상은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스스로? 자신을 ‘그릴 가치가 있는 인물’로 인식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정밀한 사생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만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을 통한 자의식의 발로, 혹은 회화를 통한 감성의 전달은 조선시대 몇몇 화가의 소수 작품 예에서만 발견될 뿐, 근대 이후의 그림에서 보듯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자의식, 감성 표현의 결정체로 볼 수 있는 자화상의 제작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뛰어난 묘사력을 갖췄던 직업 화가들의 자화상이 기록에도 거의 전무한 이유는 이러한 데 있다. 앞서 보았던 윤두서나 강세황의 자화상은, 그만큼 귀하다.
뛰어난 그림 실력뿐 아니라 독보적인 서화 감식안을 갖고 있었던 표암 강세황은 당대의 문예계를 주도했던 예단의 영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모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던 듯 스스로 “키가 작고 외모가 보잘것없어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 속에 탁월한 지식과 깊은 견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경우도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말했듯 대범한 성격과 높은 식견의 소유자였으며, 김홍도의 스승으로, 당대의 명필로, 또한 다양하고 과감한 회화적 시도와 독보적인 감식안까지 갖춘 가히 당대 문예의 대스승으로 일컬을 수 있다. 그의 자화상에서는 노옹의 단아하면서도 추상같은 기상이 느껴져 자못 고개가 숙여진다.
---p.p.286-297

자결로 생을 마감한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초상
황현 선생은 조선조 말의 우국지사이자 학자로, 51세 때인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국노를 규탄하는 시와 애국지사를 애도하는 시를 지었으며, 1910년(융희4) 일제의 강압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자 통분하여 하룻밤에 절명시絶命詩 4편(『매천집』권5)을 짓고 음독, 자결하였다. 황현의 초상은 당시 최고의 초상화가였으며 우국지사의 초상을 많이 남기기도 했던 석지 채용신이 그렸는데, 화가가 참고로 한 황현의 사진도 남아 있어 그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사진에서는 얼굴이 몸체에 비해 상당히 크고 체구 또한 작은 편인데, 그림에서는 얼굴을 실제보다 작게 그리고 몸체를 상대적으로 크게 그림으로써 당당한 비례감각을 부여했다. 이는 우국지사였던 황현 선생의 삶과 정신을 표현하기에 가장 이상정인 형상으로 표현하고자 한 화가의 의도로 생각된다. 동그란 안경 너머 생각에 잠긴 듯 앞쪽을 정시하는 결연한 시선과 비통함을 참는 듯 살짝 다문 입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옷깃을 여미고 숙연한 분위기에 젖게 한다.
--- p.p. 42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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