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4년 11월 자끄 데리다가 세상을 떴을 때, 어떤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고급이론이나 인종-성-계급이란 삼총사의 뒤를 이어 앞으로 학계를 이끌 지적인 에너지의 중심이 과연 무엇일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그것은 종교라고.
2) 믿는 사람들은 의심을 인정하고 이와 맞붙어 싸워야 한다. 그저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그걸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반대의견과 힘겹게 오랫동안 싸우고 나서야 비로소 희의론자들에게 말도 안 되거나 무례하지 않고 그럴듯한 신앙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튼튼한 신앙을 갖게 된 후에라도, 의심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신앙의 근거를 찾아 노력해야 함과 동시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도 자신의 합리적 추론 안에 숨어있는 어떤 형태의 신념을 찾는 방법을 배워야 할 일이다. 모든 의심이란 ―아무리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보일지라도― 사실 어떤 신념을 보충하거나 교체하는 또 다른 신념이다. ‘신념 A'를 의심하려면 ’신념 B'를 믿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지, 그 외엔 방법이 없다.
3) 세상의 악과 고통을 멈추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화를 낼 만큼 위대하고 초월적인 신이 있다면, 당신이야 모르겠지만 그런 악과 고통이 계속되도록 허락하기에 합당한 이유를 가질 만큼 위대하고 초월적인 신도 (동시에) 있는 법.
4) 믿음과 마찬가지로 의심도 배워야 하는 것. 이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회의론에는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걸 추종하는 자들은 남들을 개종시키려 드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회의론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종종 묻고 싶었다. “회의론자인 당신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그들의 회의는 이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답은 갖고 있지 않다.
5)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 인간이 그저 진화를 했다면, 끔찍스러운 사악함 같은 것이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6) 사랑하는 사람이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나 관계로 인해서 피폐해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 이럴 때 우린 전혀 상관도 없는 남에게 하듯이 부드러운 인내심을 갖고 반응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분노는 결코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다. 증오란, 증오의 궁극적인 형태란, 무관심이다‥‥ 신의 분노는 고약한 성질의 폭발이 아니라, 암에 대한 그의 차분한 저항이다. 신이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인류의 내부를 좀먹는 바로 그 암 말이다.
7) 과학의 실행은 신이 죽은 자들로부터 누군가를 살려낸다는 따위의 생각을 거부하라고 요구한다니‥‥? 하지만 이런 주장은 마치 술에 취해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가로등 아래가 훨씬 밝으니까 가로등 아래서만 열쇠를 찾아봐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사실 그의 주장은, 이런 술 취한 사람보다 한술 더 떠서, 어둠 속에서 열쇠를 찾기는 어려울 터이니, 열쇠는 ‘틀림없이’불빛 아래에 있다고 우기는 셈이다.
8) 만일 진화가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세계관의 위치로 올라선다면, 성서적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가 과학적, 생물학적 가설의 수준에 머문다면, 창조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이 지닌 함의와, 하느님이 생물학의 단계에서 어떤 창조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과학의 탐구 사이에는 갈등이 빚어질 이유가 없다.
9) 내가 태양이 떴다고 믿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태양을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태양으로 인해 만물을 보기 때문이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꼭 같은 이치다.
10) 위대한 예술이란 하나의 단순한 메시지로써 “우리 머리를 내리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이 “시끄럽고 요란하기만 한 멍청이가 아무 뜻도 없이 지껄이는 이야기가 아님”을 언제나 깨닫게 해준다.
11) 나는 신이 존재할 것 같다는 걸로 논쟁을 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신이 존재한다는 걸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지성적으로 어떠한 것을 단언하든 상관없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증명할 길은 없지만 모를 수는 없는 불가피하며 “기본적”인 믿음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확신시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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