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평은 한 권의 책이 아닌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혹은 둘, 셋, 어쩌면 다섯.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뭐라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이거나, 리처드 웬트워스의 말처럼 마음에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문장이거나, 이 책은 그렇게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p.10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들의 사태를 바라보며 나는 습관적으로 한 권의 책을 떠올린다. 책 때문에 미칠 지경인데 또 책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p.23
숟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문장을 큰 소리로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본다. 그 문장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신통할 게 없다. 하지만 그 문장의 단순함 그 자체가 진정한 천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34
말하자면 일종의 욕지기인 셈이다. 삶이 치사하게 굴 때면 신트림이 올라오듯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그런 제목들이 올라오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게 정말 필요하다면 아마 이럴 때가 아닐까? 여러분도 책을 가까이 하면 ‘교양 없이’ 육두문자를 내뱉는 대신 책 제목을 가지고 한탄을 할 수 있다.--- p.58
누군가 5년 전의 나에게 당신은 앞으로 잡문을 써서 생계를 꾸리게 될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웃음을 터뜨렸을 거다. 나도 그 정도의 아량은 있다. 하지만 그가--- p.글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드니) 부업으로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의 사회를 보게 될 거라고, 가끔은 좌담이나 인터뷰를, 심지어 강연을 하기도 할 거라고 말한다면 나는 당장 그의 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 p.100
이기는 건 근사하지만 그만큼 힘이 드는 일이다. 지나치게 노력하거나 상심하는 대신 패배에 익숙한 찰리 브라운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던 셈이다. 찰리 브라운은 매일 한숨을 쉬며 말한다. “못 참겠어.” 그리고 그는 참는다. 찰리 브라운, 참 좋은 녀석이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건 그런 태도만으로는 삶을 꾸려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p.105
물론 그들에게도 삶은 있다. 너무 당연해서 종종 잊곤 하는 사실. 가진 것 없는 그들은 삶을 채우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빛났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킹이 말하듯 “인생에는 의지할 것이라곤 꾸며낸 거짓말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p.114
서평가를 옴짝달싹 못하게 괴롭히는 두 번째 불안. 그것은 자신이 다루는 책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서평가의 의무(라고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초조해진다. 하지만 이래서야 글을 쓸 수가 없다. 별 수 없지. 나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평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편을 택하기로 한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편을.--- p.128
세상의 모든 요청을 거절하는 것?그것이 바로 바틀비가 하는 일이다. 누구든 청탁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그것은 프리랜서가, 그러니까 바로 내가 하는 일이다.--- p.…) 물론 내 안에도 나만의 바틀비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긋지긋한 줄거리 요약 따위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하고야 만다?그것이 바로 바틀비와 우리의 차이다.--- p.154
연: 그 밖에도 여러 다양한 서평이 가능하다. 달리면서 쓰는 서평부터 수영하면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면서, 택시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또 흔하게는 침대에서 쓰는 서평까지. 형식의 변화는 균질화에 저항하는 한 방법이다. 금: 그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말을 단어 몇 개만 바꾼 것처럼 들린다. 연: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나는 손버릇이 꽤 나쁜 것 같다. 뭔가 마음에 들면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금: 그 또한 리처드 웬트위스의 말이다.--- p.223
“비평 없는 문학은 존재하지만 문학 없는 비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비평가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인용으로 가득한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삶과 직업과 책에 대한 온갖 저주를 멈추지 않았던 직업적인 서평가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