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감정 날 세우고 싸울 일 없어져서 좋아. 진짜, 전보다는 훨씬 나아. 왜 그동안 참고 살았는지 억 울할 정도야. 이혼이 나쁜 게 아니라니까. 그것밖에 답이 없을 때가 있어.”
--- p.104
“백이면 백 다 다른 기막힌 이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제삼자 입장에서 볼 때 요즘 이혼을 이렇게 많이 하는 진짜 이유는, 결혼을 너무 많이 해서라고 생각해.”
--- p.105
옛날 사람들이야 웬만해선 결혼은 꼭 해야 되고, 또 한 번 결혼했다 헤어지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살았지만, 요즘은 안 그렇잖아. 평생 불행을 감수하면서
까지 결혼생활을 하겠단 사람은 잘 없잖아? 근데 내가 보면 결혼제도란 게 본성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 사실 많단 말야. 솔직히 한 사람하고만 평 생 믿고 사랑하면서 같이 산다는 게 얼마나 빡센 일이야? 그러니 옛날처럼 배우자 없으면 완전 큰일 나는 세상도 아닌데, 결혼이 잘 안 맞거나 별 로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알아서 애당초 하질 말아야지. 아직도 다들 나 이 차서 결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무작정 하고 보는 사람이 많으니, 실패율도 높을 수밖에 없지.
--- p.105~106
이혼은 비행기 사고 같은 거라고. 사고 한 번 나면 큰일 나는 거 다들 아니 까 아주 많은 안전장치가 있는데, 그 모든 게 하필 동시에 다 에러가 나게 되면, 그때 비행기가 떨어지는 거잖아. 그 순간 딱 한 가지만 제대로 작동 했어도, 위기일발 하긴 해도 떨어지지는 않을 건데, 정말 하필이면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러니 이혼을 하고 말고 그 종이 한 장 차이는 누구의 잘잘못 이라 할 수도 없고, 재수가 없는 거라고 밖엔. 비행기 사고처럼… 운명인 거지.”
--- p.108
“아, 난 이제 좀 벗어나고 싶어. 생각해 보면 같지도 않은 놈들하고 뭐나 해보겠다고 동동거리는 짓, 이제 지긋지긋해. 이번에 이 웬수하고 헤어지 고 나면, 나도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한 사랑, 퍼주기만 하는 순애보 사랑 꼭 해볼 테야.”
--- p.144
“그럼 이건 어때? 행복하지 않으면 이혼해도 되는 거야? 그 사람이 죽 고 싶을 정도로 날 괴롭힌다거나 살림을 아주 작살낸다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솔직히 그 정도는 아냐.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근 데 난 그 사람만 보면 기분이 나쁘고 서로 얼굴도 보기 싫고, 둘이 같이 사는 게 지긋지긋하고 불행해. 그럼 이혼하는 게 맞아? 결혼이 그 정도로 깨도 괜찮은 일인가? 어떻게 생각해?”
--- p.262
“백만 번 고민한다고 이혼이란 걸 시원하게 결정할 수 있을까? 백만 번 이혼을 한다고 익숙해지게 될까? 난 한 번밖에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아. 해줄 말이 없어서 미안하네요.”
--- p.310
그러니까 내 경험상으론 그래요. 내가 이혼을 하고 보니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만 보이는데, 요즘은 생각보다 진짜 많은 거 알지? 아무튼 다들 마찬가지더라. 이혼을 하든 말든, 그게 누굴 위해서라고 하든, 결국은 다 내 입장에서 날 위한 선택인 거야. 아니, 그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게 선택인가? 안 그래”
--- p.312
나보고 지금 이혼한 거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냐. 그때 나 는 정말로 다른 수가 없었거든. 딱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생겼는데, 눈앞에 보이는 동아줄은 그거 하나뿐이었으니까, 안 매달릴 수가 없었지.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때 조금만 더 내 마음에 여유가 있었더라면 다른 줄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싶어서 아쉽긴 해. 난 내가 늘 지온이 아빠보단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사람 사이에 결과를 만드는 건 누가 잘하고 잘못한 거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더라고. 그냥 급한 사람, 아쉬운 사람이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거지.
--- p.313
그러니까 아직 고민이 되고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단 생각이 들면, 난 때 가 아니라고 생각해. 결혼은 그나마 미심쩍어도 해도 괜찮지만, 이혼은 안 돼. 결혼이 망하면 이혼하면 되지만, 이혼이 망하면 더 답이 없거든. 다시 사람 만난다는 거, 절대 쉽지 않아. 더 괜찮은 사람, 웬만해선 없어. 그 남편 막 찍어 고른 거야? 그랬다면 얘기가 좀 다른데, 아니고 나름 심사숙고해서 골랐다면, 내 생각이랑 다른 놈이더라도 그게 바로 내 실력인 거야. 남 탓할 게 없어. 더 문제는 그 실력은 경험 쌓인다고 딱히 나아지는 것도 아니더란 거지. 외려 괜한 피해의식 같은 거 생겨서 더 상태가 나빠 지면 나빠지기 쉽지. 그렇다고 혼자 사는 건 살만한가? 나도 그전엔 그런 거 잘 몰랐는데, 지금도 인정하긴 싫지만… 솔직히 외로워. 정말 죽도록 외로워. 처음부터 혼자였던 거랑 둘이었다가 혼자 된 거랑은 또 달라. 이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 p.314
아마 그분은 대표님 성격을 대강 파악은 하셨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웬만큼 맞추든 길들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다른 장점이 있으니까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보셨겠죠. 근데 막상 뛰어들어 보니 계산이 틀렸던 거지. 대표님을 너무 만만하게 본 건지, 아님 본인을 과대평가한 게 더 문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수고를 감당해야 할 만한 가치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한 거지. 이건 사실 모든 커플이 깨지는 기본 원리니까, 대표님한테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녜요. 중요한 건 헤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자기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가, 그리고 상대방한테 인격적인 모욕을 주지 않는가, 라고 생각해요.”
--- p.327~328
“하아, 나만 계산적인 인간 취급하시겠다 그거예요? 저도 남친 면전에 대고 이렇게 얘기하진 않아요. 아무튼 그런 계산을 의식적으로 하든 안 하든 실은 똑같은 거라니까요? 희주 씨도 지금은 그냥 좋은 마음뿐이겠지만, 만약 앞으로 대표님이 희주 씨를 너무 힘들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처음엔 대표님이 좋으니까 참아 보겠지만, 언젠가 좋은 마음보다 괴로움이 더 커지는 순간 헤어져야겠다고 마음먹겠죠. 당연한 거예요. 그런 선택을 못한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거고요.”
--- p.328
“그러니 사랑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런 거랑 결혼생활은 아무 상관없어.”
“그런 것 같긴 같은데… 그럼 뭐가 상관있나? 어떻게 해야 이혼 안 할 수 있지”
“이혼 안 하려면 그냥 이혼을 안 해야지. 별 수는 없는 것 같아.”
“하긴, 맞다. 원래 이혼 같은 건 없다고 그랬어. 결혼이란 건 하면 무조 건 목숨 걸고 지켜야 되는 건데,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자기 좋을 것만 바라고 결혼하니까 힘든 거랬어.”
--- p.379
“맞아. 그러고 보니까 그동안 내가 들은 얘기들은 다 뭔가 싶더라. 이혼 이란 게 아무리 잘 된대도 얼마나 데미지가 큰 일이야? 근데 남한테 이혼 하란 말을 그렇게 시원하게 해줄 수가 있다니, 다들 남 얘기라고 참 쉽게 했구나, 싶어 씁쓸하더라. 어쩌면 어느 정도는 속으로 고소한 맘에 부추기려고 했을지도 몰라. 그만큼 내가 그동안 재수 없게 잘난 척하고 돌아 다닌 게 사실이니, 이해는 가지만….”
--- p.383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적어도 후회는 안 할 자 신이 생겼단 거야. 이혼 결심하기 전부터 계속 생각했었어. 내가 이렇게 힘들어진 게 내 탓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나. 그런데 이제야 결론이 난 게, 어느 쪽이든 후회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내가 잘못한 거라 면 내 책임이니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고. 아니고 운명이라면 그야말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어쩌겠어. 그러니 안 그래도 피곤한 인생, 그런 쓸데없는 고민은 이제 관두기로 했어.”
--- p.425
“그럼요. 결혼식은 평생 밑질 장사판에 들어서는 여자를 위한 위로와 격려의 자리라는 의미가 제일 크다고 봐요. 제가 웨딩드레스에 뜻을 건 데 그런 이유도 있고요. 그 순간만이라도 여자들한테 인생 최고의 아름다움을 꼭 만들어 주고 싶거든요. 물론 운이 좋아서 이후로도 계속, 더 아름다워지는 여자들도 있긴 하겠지만, 극소수일 거예요. 더구나 우리나라 에선 더 어렵겠죠.”
--- p.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