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성장

성장

: 러셀 베이커 자서전

[ 양장 ]
리뷰 총점9.0 리뷰 32건 | 판매지수 108
베스트
언론학/미디어론 80위 | 언론학/미디어론 top20 16주
정가
15,000
판매가
13,50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534g | 128*188*30mm
ISBN13 9788994054100
ISBN10 899405410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여든의 연세로 어머니의 적적함은 끝이 났다. 그해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정신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떤 날엔 반세기 전에 있었던 결혼식과 장례식에 다녀오셨고, 또 어떤 날은 이젠 백발이 다 되어 버린 그 옛날의 아이들을 위해 일요일 오후 내내 준비한 저녁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병석에 누워 계셨다. 어머니께서 맘대로 오가시던 시간은 물리학의 법칙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 p.11

어머니는 한 손에 도끼를 거머쥔 채 퍼드덕대며 도망가는 닭을 쫓아온 사방을 뛰어다니셨다. 어머니는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나 식탁을 차릴 때에도 뛰어다니셨다. 어느 해 추수감사절엔가 어머니는 지하실 오븐에서 구워 낸 칠면조 요리를 들고 급하게 뛰어 올라오다가 심한 화상을 입으신 일이 있었다.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그대로 아래로 굴러 떨어졌는데, 바닥에 고꾸라진 어머니 주위엔 칠면조의 내장 찌꺼기며 뜨거운 육즙과 뭉개져 버린 칠면조 고기가 흩어져 있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는 게으름뱅이나 겁쟁이, 늦잠꾸러기나 건달, 혹은 남들 눈치나 살피며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줄곧 뛰셨다. --- p.13

나는 어머니께 편지를 한 통 써서 뭐든 좀더 긍정적인 측면을 보라는 얘기며, 제발 신세 한탄으로 주위 사람들 좀 그만 괴롭히고 남들보다 더 나은 면을 생각해 보라는 그런 충고조의 글을 늘어놓았다. 사실 그건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보다 밝은 표정을 지으시지 않으면 앞으론 자주 찾아가지 않겠노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자식들이란 그런 편지를 써 갈겨댈 수 있다. 그 편지는,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들일 것이라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과, 나이의 한계는 의지력으로 극복될 수 있으며 그 나이의 노인들에겐 그저 말벗이나 필요할 뿐이라는 지극히 순진한 생각에서 씌어졌다. 정말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시름시름 약해질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 p.17

어머니의 곁에 앉아 있어도 영원히 그분과 맞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나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렇게 이어 내려갈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이들과 부모 사이를 가로막은 채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도록 만드는 단절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부모 되기 이전엔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궁금증이 생길 무렵이면 이번엔 이야기를 들려줄 부모가 없게 된다. 혹시라도 부모가 먼저 커튼을 열어젖히는 경우엔, 옛날엔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에 대한 설교조의 얘기로 아이들을 따분하게 만들 뿐이다. 나 역시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랬다. 1960년대 초의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난 공연히 심술이 났다. 나는 그토록 어렵게─내 생각에─자랐는데 왜 이 아이들은 이토록 편하게─내 생각에─지내야 하는 거지? 나는 아이들이 스테이크가 너무 바짝 익혀졌다거나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한다고 불평을 터뜨릴 때면 내가 어릴 적에는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버릇을 키워갔다. --- p.20

어머니의 병상 곁을 맴돌면서 당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들려오는 약한 신호음에 귀를 기울이며, 난 그와 똑같은 말싸움이 어머니와 나 사이에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께서 젊었던 시절, 인생이 아직 당신 앞에 놓여 있었을 때 나는 그분의 미래였고 난 그 점이 못마땅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나의 존재가 어머니의 시간에 한정되는 것을 깨부수고 거기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그분에게 미래였던 시간들을 모두 과거로 치워 없애고 내 스스로의 시간을 창조하고 싶었다. 글쎄, 난 결국 그렇게 하긴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약동하던 미래가 내 아이들에게 따분한 과거가 되고 마는 것을 줄곧 지켜보아왔다. 어머니를 따라 희망 없는 과거 여행을 계속하며 나는 내 과거를 그토록 쉽게 내버린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가를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서 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생겨나게 한 그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인생이 아주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시간으로부터 현재에까지 뻗어 있는, 사람들로 엮어진 동아줄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인생이란 결코 기저귀에서 수의壽衣를 입기까지의 한 뼘의 여정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 p.22

신문 꾸러미를 둘러메고 나는 벨빌가街로 나섰다. 거기가 사람들이 좀 모이는 곳이었다. 그 주위에는 주유소 두 군데와 유니언가와 연결된 교차로, 물론 A&P 식료품점도 있었고 과일가게, 빵집, 이발소, 주카렐리 약국, 그리고 열차처럼 생긴 간이식당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나는 사람들 눈에 잘 띄기 위해 거리의 이쪽 저쪽, 이 상점 저 상점 앞으로 자리를 옮겨가며「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라고 큼지막하게 씌어져 있는 가방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어느새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그건 저녁 먹을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 p.30

별 볼일 없는 남자의 표본을 완벽한 작품으로 개조해 보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당신이 어머니 되기 훨씬 이전부터 있어 왔다. 아홉 중의 맏딸로 자란 어머니는 그것을 당신의 남동생들에게 처음 시도해 보았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버지한테 시도해 보았는데 역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남자들에 대해 어머니는 20세기 페미니즘과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가 뒤섞여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페미니즘은 어머니로 하여금 단지 바지를 입고 못 입고에 따르는 불평등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 p.38

“네 아빠 죽었어.” 케네스 형이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아버지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흉을 보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변호하고 나섰다.
“우리 아빠 안 죽었어.”
케네스 형과 루스가 상황을 잘 몰라서 저러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다 나아서 엄마가 오늘 집에 데려오신다고 했고…….
“죽었다니까.” 케네스 형이 말했다.
자신 있게 얘기하는 형의 태도에 나는 가슴이 예리한 것에 찔리는 것 같았다.
“아니야. 안 죽었어!” 나는 소리쳤다.
“죽었어.” 루스가 말했다. “너보고 빨리 집에 오래.”
“아니야!”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내가 이길 수 없는 말싸움이었다. 사촌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도 있었다. 나는 소리를 내지르며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죽었어…… 안 죽었어…… 안 죽었어…….”
나는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셨다는 사실을 집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받아들였다. --- p.98

가슴 위로 포개진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도 저처럼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만을 기다렸다. 너무 오래 숨을 참았다가 가쁘게 내쉬느라 가슴팍이 들썩거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침묵이 무서워졌다. 나는 그 방에서 나와 다시는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 p.102

어머니는 나를 가리켜 ‘집안의 기둥’이라고 선언하기 전에는 한 번도 매를 드신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여덟 살이 된 나를 번쩍 안아서 엉덩이를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내 나이에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무조건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으셨다. 언덕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며 놀다가 저녁식사 시간에 늦는 일이 내 생각에는 아주 사소한 잘못이었지만 어머니는 내 허리띠를 치켜드셨다. 남자는 사회생활을 할 때 엄격한 시간관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몸집이 작긴 하셨지만 그래도 내 종아리에 매자국 정도는 남길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모욕적인 매질을 너무나 혐오했기 때문에 억지로 짜내는 눈물 몇 방울로 어머니를 만족시키고 말자는 유혹을 단연코 거부했다. --- p.155

잡담과 커피가 어른들의 낙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공황을 거치는 동안에는 참으로 훌륭한 소일거리였다. 영화와는 달리, 한가로이 얘기를 나누는 것은 돈이 들지 않았다. 이야기의 강물은 집안 전체를 흘러 저녁식사 시간을 가득 채운 다음 내가 잠자리에 들 즈음이면 최고 수위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면 졸졸 흐르는 속삭임들이 자정을 넘어 이어졌고 모두들 침대로 들어간 뒤엔 찰리 외삼촌이 혼자 남아 커피 주전자를 다시 데우고 담배 잎을 종이에 말아서 한 권의 책과 함께 의자에 몸을 묻었다. --- p.185

간혹 공황이 화제로 오르면 대화의 분위기엔 분노가 느껴졌다. 하지만 전체적인 어조는 여전히 유머와 절제를 잃지 않았다. 분노가 비통함이나 자기 연민으로 바뀌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기껏해야 기업과 정부, 그리고 약장수처럼 자신들의 주장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을 향한 가벼운 조소가 있을 뿐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미친놈들’인데다 ‘위험한 놈들’이었다. 쿨린 신부와 휴이 롱은 ‘선동꾼’이었다. 나치의 깃발을 앞세운 독일계 미국인 분트는 ‘쪼다 독일놈’이었고,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깡패’였다. 뉴딜 정책도 조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벨빌에서는 정부 산하 공공사업 추진위원회가 벌여 놓은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삽자루에 기대고 서서 시간만 때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공공사업 추진위원회’의 약자 ‘공추위’는 앨런 외삼촌의 말을 빌리면 ‘공공예산낭비 추진위원회’를 가꺸키는 것이었다. --- p.188

나는 어머니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연주 실력은 썩 훌륭하지는 못했다. 연주는 이따금 끊겼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건반을 다시 짚어 연주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음악에 깊이 몰입해 있었고, 거실에 모인 사람들 모두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시선은 내 뒤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마냥 들떠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우리 모두로부터 따로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한 인간으로서 철저하게 외로운 어머니를 발견했다. --- p.218

애초에 내가 고모부에게서 느꼈던 경외심은, 고모부가 하는 얘기들이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임을 깨달아 가면서 조금씩 사그라졌다. 하지만 해럴드 고모부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나는 아울러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사로잡은 이야기들을 구성지게 지어내던 고모부는 그야말로 이야기꾼이었다. 여전히 고모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꾸며냈고, 나는 감히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나는 고모부 역시 내가 더 이상 그 얘기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눈치 채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고모부도 내가 당신의 상상력에서 샘솟는 이야기들 속에서 큰 즐거움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시치미를 뚝 떼는 우리 둘의 관계에서 고모부 역시 즐거움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228

내가 열두 번째 생일을 맞은 날, 어머니는 내게「볼티모어 뉴스 포스트」와「선데이 아메리칸」을 배달하는 일을 새로 시작하게 하셨다. 「볼티모어 뉴스 포스트」는 석간이었지만 「선데이 아메리칸」은 토요일 자정이 넘어 나왔기 때문에 일요일 새벽에 배달을 해야 했다. 나는 일요일이면 새벽 2시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를 듣고 일어나 어머니와 도리스를 깨우지 않기 위해 까치발로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새벽길은 언제나 등골이 오싹했다. 깜깜한 빈 거리에 어쩌다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적막을 찢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그러던 어느 새벽 나는 평소보다도 훨씬 음산한 분위기 속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전날 아래층에 시신이 하나 들어와 있었고, 장례 때마다 맡게 되는 온갖 냄새와 삶은 새우 냄새가 집안 전체에 낮게 깔려 있었다. --- p.241

어머니가 뻔한 수입을 쪼개 알뜰하게 모으는 솜씨는 흡사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해 겨울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어머니께서 일을 나가시고 도리스는 부엌에 있는 동안 나는 어머니의 침실 열쇠를 찾아내서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어가 보았다. 어머니의 침실은 1층에서 올라오는 계단과 바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밖에 나가실 때는 항상 침실 문을 잠그고 열쇠는 따로 숨겨놓는 곳에 두셨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한쪽 벽에 커다란 검정색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자전거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것은 볼티모어가에 있는 어느 상점 앞에 진열되어 있던 중고 자전거였다. 나는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 자전거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15달러나 하는 가격 때문에 내겐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어떻게든 계약금만 지불할 돈을 긁어모아서 성탄절 아침에 나를 놀라게 해줄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 p.256

과거의 나는 대학에서 셰익스피어와 라틴어를 접해 본 어머니의 지식을 늘 우러러보았다. 시티 칼리지에서의 첫해에 학생들은 카이사르를 배웠는데, 내가 해석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어머니는 옆에서 늦도록 불을 밝히고 라틴어의 격변화와 동사변화를 상대로 씨름을 벌이는 나를 도와주셨다. 어머니는 카이사르의 글을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로 가면서 나는 내 라틴어 실력이 이미 어머니를 능가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뒤로 하고 파도의 도움을 받아 뭍을 향해 헤엄쳐가는 수영 선수와도 같았다. 그러는 중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내 옆에 늦은 시각까지 머물며 당신이 내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믿으셨다. --- p.269

나에 대한 허브 아저씨의 인내는 초인적이었다. 아저씨의 그러한 인내심은 어쩌면 옥수수 농장과 친척들로부터 착취를 당하면서도 남몰래 기관사의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저씨는 소년기의 깊은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내가 나이를 더 먹고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저씨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당신을 그토록 무시하고 괴롭히던 시절에 대해 얘기를 꺼내시는 법이 없었다. 나 역시 그 얘기를 꺼내거나 그 시절의 일들에 대해 용서를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그런 얘기를 나누는 데에는 익숙지 않았다. 내가 그 시절의 얘기를 꺼낼 낌새만 보여도 아저씨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씀하셨다. “에이 그만하고.” 그러면서 아저씨는 화제를 바꾸셨다. “윌리 메이스 말인데 정말 대단한 선수야.” --- p.282

1942년 여름, 내가 존스 홉킨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미국은 참전 7개월째를 맞고 있었다. 내 유년 시절 전쟁은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에서, 스페인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비록 어렸지만 나는 전쟁으로 불타고 있는 세계를 어렴풋이나마 감지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멀게 느껴졌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니었고, 또 그런 일은 내 세계에선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두 대양의 보호를 받는 미국은 난공불락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나는 여름밤 지평선 저 멀리 마른번개가 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저쪽 어딘가에 폭풍이 몰아치겠군” 하고 중얼거리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폭풍이었다. --- p.308

어머니는 내게 인종적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물론 흑인들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에는 오래 전 버지니아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의 도도함이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인종 차별주의자들을 ‘불쌍한 백인 쓰레기들’이라고 가르치셨다. 흑인들은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품성과 장단점에 의해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볼티모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주의가 아무 거리낌 없이 일상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1년이 갓 지났을 때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해럴드 고모부에게, “나는 검둥이들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만 알고 있어도 아무런 불만이 없을 거예요”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인종 차별주의는 전염성이 있는 것 같았다. --- p.319

어머니는 치밀한 전략에 기초한 우회적인 전술이 다가오는 싸움을 대비한 최상의 무기임을 간파하셨다. “그 아가씨의 인상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을 거다”라는 말이 먼저 아주 날카로운 메스를 찔러 넣은 것이었다면 “화장이 그토록 요란하지만 않았어도”는 그 메스를 힘껏 비튼 것이었다. 그때는 1946년이었고, 나는 아직 ‘좋은 여자’에 대한 어머니의 신념을 공유하고 있던 나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미에 대한 나의 감정은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좋은 여자 혹은 나쁜 여자로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초월해 있었다. 사랑에 빠진 나에게 미미는 특별한 여자일 뿐이었다. --- p.366

4학년이 되면서 나는 매주 발행되는 학교 신문의 편집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경력이 나로 하여금 볼티모어의 유력 일간지에서 일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보증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것에 그다지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 꿈은 제2의 헤밍웨이가 되는 것이지 신문사의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 p.399

어머니와 세상을 잇고 있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진 그 가을 이후 벌써 4년이 흘러 있었다. 어머니의 정신은 이제 현기증 나는 시간 여행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잠만 주무셨다. 백발이 된 머리는 침대 시트처럼 하얗기만 했다 어머니의 체중은 고작 34킬로그램이었다. 어머니는 침대 매트리스에 옴폭 들어간 자리 하나 남기지 못할 만큼 야위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만히 맥박을 짚어 보았다. 맥박은 정상이었다. 어머니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몇 분 동안 어머니의 손을 쥔 채 그대로 있었다. 사람의 온기에 어머니께서 눈을 뜨셨다.
--- p.432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31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1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6.0점 6.0 / 10.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3,5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