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놀라운 사건들을 쉴 새 없이 모두 처리한다. 크고 작은 몸의 모든 움직임을 지배하며, 무의식에서 명료한 각성에 이르기까지 정서와 사고를 전부 책임진다. 또한 망원경을 통해 별을 관측하거나, 현미경으로 분자를 관찰하는 등 뇌가 만든 발명품을 사용하는 주체도 역시 바로 우리의 뇌다.
이 책은 뇌 속의 생체시계를 따라가며 우리의 뇌가 보내는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서, 매시간 뇌 속에서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지적탐험이다. 뇌과학과 신경과학을 시간생물학과 결합시켜, 무언가를 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은 언제인지, 아침과 저녁, 밤과 낮에 뇌활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 (......)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은 시간과 생명현상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저마다 생활패턴이 다르고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듯이(그리고 살아온 경험과 타고난 뇌가 다르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생체시계를 가지고 산다. 다들 자신의 의지로 잠들고 깨어나며 배고픔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활동의 배후에는 우리 몸을 조종하는 생체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생체시계는 인간의 생체리듬 전반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질병과 노화, 건강과 장수의 비밀까지 간직하고 있다.
어디선가 시끄럽게 전화벨이 울리는데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다. 당신은 서류를 손에 든 채 통화중이고, 두 사람이 책상 앞에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신경질적으로 깜박거리는데,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 이미 5분이나 늦은 상태다. 프로젝트가 늦어지고 예산이 모자라는 이유를 임원들에게 보고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집이라고 상황이 녹록한 건 아니다. 냉장고는 고장 났고, 컴퓨터도 먹통이다. 다섯 살배기 아들 녀석은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며, 그 와중에 서로 짜증을 내느라 배우자와 큰소리로 말다툼을 했다. 누가 말 한 마디라도 잘못하면 거의 폭발할 지경이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날, 누구에게나 가끔 이런 날이 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는가? 이 모든 총체적 난국의 핵심은 사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반응하는 우리 시상하부(hypothalamus)의 방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사랑과 협조, 신뢰를 느끼는 뇌 부위와 욕정과 중독, 공포의 뇌 부위가 같다는 사실을 아는가? 섹스와 마약, 록큰롤의 흥분을 느끼는 뇌 부위도 일치한다. 또한 뇌 안에 정해진 규칙이 존재할 거라는 기존의 주장은 깨어진 지 오래다. 뇌가 매우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적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교과서적이지 않다. (......)
재미있는 연구결과는, 뇌 속 뉴런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고, 새 뉴런이 생기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부분의 뇌기능이 떨어지면 다른 부분의 뇌가 그 기능을 배워 대신하기도 한다. 뇌를 절반이나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도 별 탈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오전 10시 30분까지는 산처럼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다. 모두 키보드를 치면서, 운전을 하면서, 빨래를 하면서, 요리를 하면서, 전자우편을 읽으면서, 기사를 스캔하면서(혹시 지금도?) 동시에 전화를 받는다. 껌을 씹으며 걷은 행위는, 잠깐은 좋을지 몰라도 뇌에는 별로 좋지 않다는 연구가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가 직장이나 집에서 혹은 출퇴근할 때 시도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은 주의력과 기억력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멀티태스킹은 효율성만 떨어뜨리는 게 아니다. 기억이 만들어지는 해마와 의사결정의 사령탑인 이마엽앞겉질을 손상시킨다. 이런 부위들이 손상되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어렵고, 갑자기 ‘거짓주의력결핍장애(pseudo attention deficit disorder)’가 발생하기도 한다. 거짓주의력결핍장애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찾지만, 정작 그 내용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 없이는 한시도 못 사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런 증상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이 깨기도 전에 우리는 ‘결정’을 내리기 시작한다. 자명종 버튼을 누를까, 말까? 침대에서 일어날까, 말까? 샤워를 할까, 말까? 검은색 구두를 신을까, 갈색 구두를 신을까?
정오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 직장에서도 결정할 일이 태산이다. 이미 뇌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입수해 처리했고, 수천 가지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렸을 터. 아마도 잠이 들기 전?지 뇌는 이처럼 끊임없이 결정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그중 대부분은 비교적 하찮은 일들이지만, 건강 문제라든지 돈 문제, 도덕적인 문제에 관한 결정은 꽤나 중대하다.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뇌가 어떻게 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특히 특정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선택을 할 때 직관과 무의식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연구주제와 연구과정이 모두 복잡하지만, 현재 연구자들은 뇌가 다양한 변수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꽤 많은 사실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또한 심사숙고와 선택의 과정이 뇌의 피로를 가중시켜 사고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더 불리한 결정을 내리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장기간 명상수행을 실천하면 겉질이 두꺼워지고, 뇌파의 종류와 리듬이 바뀌며, 집중력이 향상되어 뇌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불안과 혈압, 스트레스 수치가 내려가기도 한다.
위스콘신-메디슨 대학의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은 본인 또한 명상가로서, 티베트 스님들과 다른 장기 명상가들이 명상 상태에 있을 때 뇌를 촬영했다. 명상 중인 스님 8명의 뇌를 촬영했더니, 스님들의 뇌에서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감마파가 발견되었다. 감마파는 주파수가 25~42Hz 사이이며 의식이 높을 때 나타나는데, 새겉질의 뉴런에 의해 생성되며 의식과 지각을 주관한다. 명상 중인 스님들의 감마파 수치는 휴식상태일 때의 수치보다 2~3배 높았는데, 병리현상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보고된 자료 중 최고 수치였다. 이러한 현상은 유독 이마엽 내 감정을 조절하는 두 부위에서 발견되었다.
호주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건강을 지키는 데는 가족보다 친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친구를 사귀고, 끈끈한 우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병장수에 큰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1992년에 시작해 10년 간 지속된 호주의 한 노화연구에서, 70세 이상의 남녀 1,477명의 사회생활과 건강상태, 생활방식, 사망연령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대상자들에게 친구, 자식, 친척, 지인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빈도수를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회경제적 지위라든가 건강상태, 생활방식은 장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자식과 친척과의 잦은 교류보다 친구와의 우정이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물며 친한 친구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을 경우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버드 대학의 공중위생학부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서는, 노인의 경우 우정이 심장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교의 범위가 넓은 노인의 경우 홀로 지내는 노인보다 ‘인터류킨-6(interleukin-6)라는 분자의 혈중 양이 상당히 적었다. 인터류킨-6는 면역 담당세포가 분비하는 면역 매개물질인데, 혈중 수치가 높으면 심장병의 위험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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