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 오가와 히토시 小川仁志 1970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교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나고야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인간문화연구과 박사 후기과정을 수료했다. 도쿠야마 공업고등전문학교 준교수이자 철학자로, 프린스턴 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일본 굴지의 무역회사인 이토추상사에 입사했으나 대만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받아 퇴사한 후 4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면서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합격 후에는 나고야 시청에서 근무하며, 나고야 시립대학 대학원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덕분에 종합상사 근무, 프리터 생활, 시청 근무를 거쳐 철학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전문 분야는 공공철학, 정치철학이고, 상가에서 ‘철학 카페’를 주최하는 등 시민을 위한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아사히방송 〈캐스트〉의 정규 코멘테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 용어 사전』 『인생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철학의 교실』『시청 직원 오가와 씨, 철학자로 변신하다』 『처음 배우는 정치철학』 『철학 카페 』『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 등이 있다.
역자 : 이정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한일 근대의 인쇄 매체를 통해 나타난 근대여성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에서 대학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곁에 두고 읽는 니체』,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하여』, 『라이프: 행복을 파는 기적의 가게 』 등이 있다.
사람은 누구라도 될 수 있으면 별 탈 없이 살고 싶지, 잘못을 저지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무탈한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잘못을 깨닫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고, 만약 자기의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더 큰 잘못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잘못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기분이 한결 편안해지는데, 이것은 자신이 짊어진 죄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은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를 끼친 상대로부터 용서를 받으면 더 기쁠 것이다.
“나는 잘난 척하는 형이 싫어!” 어려서부터 매사에 모범적이고 순탄하게 살아가는 형이 패배로 얼룩진 삶을 이어가는 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열등감을 촉발하는 대상이었다. 그런 복잡한 감정이 때로는 좌절감으로, 어느 때는 혐오감으로 소용돌이치다가 마침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그가 형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싫다!’였다. 형을 향한 반발과 ‘혐오감’이 똘똘 뭉쳐 터져 나온 말치고는 무척 단순하지만, 그 말보다 더 분명하게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도 달리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살면서 자주 혼잣말을 내뱉곤 한다. “싫다, 싫어!” 이런 식의 감정은 아무 때나 느닷없이 나타나는데, 왜 싫은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왜 뭔가를 싫어하게 되는 것일까? 싫어하는 것들을 좋아하게 될 수는 없을까? 싫어하는 감정은 정말로 좋지 않은 것일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혼자이면서도 타인과 어깨를 부딪치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운명을 껴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혼자만의 삶도, 타인의 삶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까?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산다면, 이 세상이 신이 제공하는 낙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보다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든 다른 이들이 믿음과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뢰받는 비즈니스맨, 항상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는 교사, 이웃들에게 존경 받는 노인……. 이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친근감’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마다의 향상심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뛰어난 마라톤 선수가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선수와 일부러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것과 같다. 말 그대로 하향평준화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이런 일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 향상심이란 성장하려는 본능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만약 그것을 차단해버리면 우리 모두 시들어버린 꽃처럼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만 열면 평등을 외치지만 생각만큼 구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열등감’을 발전과 상승의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 한때의 열등감을 더 높이 오르는 향상심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세상이 온통 불평등하다면 문제가 되지만, 반대로 전부 평등한 것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