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 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 전에 반 시간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주어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 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도록 또 인물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꽤 집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는 가운데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이것은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 p.60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이 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잠들고,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색깔 중에서 약간 밝거나 약간 어두운 잿빛 색조만이 남게 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 p.63
내가 그녀를 쫓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 p.173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도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다. 이미 벨이 두 번이나 울린 상태였다. 다른 여자들은 벌써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다시 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감촉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잘 가, 꼬마야.” “당신도 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