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카즈오 이시구로의 세번째 소설이다. 출판된 소설이 꽤 되는 것으로 아는데 어쩌다보니 '남겨진 나날들'과 '네버 렛미고'에 이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작가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닐 것 같다.
'네버 렛미고'가 에스에프 소설의 외피를 썼다면, 이번에는 탐정소설이다. 그러면서도 다루는 시간대는 '남겨진 나날들'의 시대이며 화자들은 너무나도 고급스런 영국 영어를 쓴다. 그리고 '네버 렛미고'와 '남겨진 나날들'처럼 일인칭 화자의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룬다. 그것도 불확실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탐정소설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듯이, 부모님의 실종을 '수사'하는 과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네버 렛미고'에서 과학적 설정은 전혀 묘사되지 않듯이.
차이점을 언급하자면, 이 책에서의 반전이 제법 강하게 다가온다. 물론 주인공의 행적이 어딘가 이상해보이고, 뜬금없게 느껴지는 친구와의 재회(사실 과연 친구였는지도 정확히 묘사되지 않는다)도 뒤에 따라올 충격적인 내용을 예상하게 하지만, '남아있는'과 '네버'에 비하면 훨씬 드라마틱하다고 할까. 일본인 친구에관한 묘사에서 작가의 어릴적 상황이 어느정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일본계 영국인의 정체성(?)이 조금 엿보이게 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가슴을 저리게하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 있다. 너무 늦었거나(남아있는 나날들), 죽거나(네버 렛미고), 본인의 선택이거나. 그리고 담담하게 묘사하는 상실감. 일본인의 애잔한 감성에 영국인의 표현하지 않는 감정들이 합쳐지면 이런 소설들이 나오는 것일까.
이쯤 되면 카즈오 이시구로의 스타일이 읽혀진다. 다음번에는 단편 모음집처럼 '보이는' '녹턴'을 시도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