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12월 22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360g | 124*210*20mm |
ISBN13 | 9788937408625 |
ISBN10 | 8937408627 |
발행일 | 2017년 1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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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92쪽 | 360g | 124*210*20mm |
ISBN13 | 9788937408625 |
ISBN10 | 8937408627 |
MD 한마디
매년 나오는 시집들 중에서 어떤 시집을 골라야할까 고민이 된다면, 좋은 선택이 될 김수영 문학상. 제36회 수상작인 『책기둥』은 문보영 시인의 첫 시집이자 대부분의 미발표작이다. 낯설게 삶을 바라보는 시선, 전위적인 언어가 우리의 감각을 좀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줄 것이다. - 문학 MD 김유리
1부 오리털파카신 입장모독 “_________*” 벽 불면 모자 그림책의 두 가지 색 지나가는 개가 먹은 두 귀가 본 것 공동창작의 시 호신 2부 얼굴 큰 사람 뇌와 나 입술 쓰러진 아이 역사와 신의 손 도로 파리의 가능한 여름 무단횡단은 왜 필요한가 과학의 법칙 빨간시냇물원숭이 남는 부분 하얀 공장 3부 N의 백일장의 풀숲 복도가 준비한 것 진짜 눈물을 흘리는 진짜 당근 수학의 법칙 끝 공원의 싸움 못 슬플 땐 돼지 엉덩이를 가져와요 도끼를 든 엉덩이가 미친 사람 위주의 삶 그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 4부 모기와 함께 쓰는 시 멀리서 온 책 프로타주 출구가 아닌 곳에 모인 어린이들 역사와 전쟁 빵 뾰루지를 짠다 아파트 식탁 위 침묵 시인과 돼지 정체성 포크는 방울토마토를 찍기에 알맞은 도구인가 그녀들 택하는 방식 책기둥 작품 해설-박상수 기기묘묘 나라의 명랑 스토리텔러 |
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요지의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을 나는 새 시집을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사건의 개연성이나 구성, 스토리, 인물, 주제 등을 두고 따지는 소설보다 시가 더 요령부득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시를 읽는 이들은 다른 문학 장르보다 더 문학을 대하는 자신을 점검해보게 될 것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자주 본다. 점잖게 ‘요즘 시는 어렵네요’ 라거나 ‘이런 시는 별로예요’ 말하면서도 시를 꾸준히 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히키코모리나 외계어 같은 문장과 생각에 넌더리를 내며 시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들도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시가 뚜렷했던 것처럼 한국시는 한국인의 시대적 감수성과 아주 밀접했다. 소설보다 정서에 더 가깝게 와닿기 때문에 소설보다 기대하는 게 컸다. 신춘문예와 각종 문예지, 많은 시 모임들만 봐도 한국인의 시 사랑은 대단하잖은가. 그만큼 많은 시들이 쏟아져 나왔고 분량이 짧은 시의 구조상 기존 시 스타일로 더 이상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시는 더욱 새로운 모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시는 소비에서도 뚜렷한 두 양상이 있다. 시 쓰는 자들이 읽는 시와 일반 독자들이 읽는 시. 전자는 더욱 신선한 걸 원하고 후자는 자기 감성에 와닿는 시를 써주길 바란다는 게 내가 보는 현 상태다. 그래서 무수한 실험이 펼쳐지고 있는 이 시집이 전자에겐 환호 받겠지만 후자에겐 환영받기 어렵겠다는 게 내 소견이다.
나는 나대로 이 시집에 몇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1. 작위와 無用 사이
시의 無用은 시인이 말하는 게 아니라 시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가닿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쓸데없어 봤자 시만큼 쓸모없겠냐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라는 시인의 <김수영 문학상> 수상 소감이나 이 수상 소감에 깔깔대며 좋아하는 박상수 시인·평론가는 자조를 넘어 문학 판의 치기로 보였다. 그 말은 약간의 허세였고 詩作에서는 다르다고 해도 그 수상 소감은 내가 이 시집에서 내내 느꼈던 개운하지 못한 의심을 확인해줬다. 문 시인이 시를 ‘쓰는 도구’로 생각하는 게 시집 전반에 뚜렷이 보였다. 그러지 말란 법도 없고 막을 생각도 없지만 몇몇 이들의 공감과 인정으로 만족하거나(과연?) 개의치도 않는다면(더 과연?) 스스로 자신의 시 가치를 깎는 것 아닐까.
“문장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주변을 신경 쓸 재간도 없이, 미래를 도모하지도 않고도 않고 오직 한자리에서 홈을 파며, 어쨌든, 바닥에 흔적을 내고, 그것을 위해 몸을 꼴 대로 꼬며 깊어지는 동작만을 반복하고 있다//…(중략)…//이 문장은 다른 문장에 비해 더 오랜 기간 외롭게 매듭을 만들고 있으며 고유한 방식으로 몸을 꼬고 있는 것 같다”(「멀리서 온 책」)고 말하는 이 문장처럼 이 시집에서는 낯선 것들을 ‘이중 매듭’으로 엮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아래에는 두드러졌던 예 하나만 가져왔다.
ex) “피는 끝에 오니까. 나무뿌리처럼 뽑히기 직전까지 땅을 움켜쥐니까. 배다. 작은 어선. 당신은 졸고 있다. 지루하게 돌아가던, 구석의 앉은뱅이 도르래의 속도가 빨라진다. 당신은 넓은 모자의 끝을 턱에 걸었다. 턱으로 흐르는 검은 액체를 해풍이 말리고 있다.”(「뾰루지를 짠다」)
뾰루지 짜는 정황을 갑자기 항해를 하는 정황으로 점프 컷 연결했다. 재밌거나 신선하게 느낄 윤활유가 전혀 없어서 과장만 되고 말았다. 사소한 것들에 과장을 붙이는 게 문 시인 시작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만.
2. 시시함과 단언 사이
이 시집은 이질감과 딱딱한 느낌을 주는 현재 시제로 대부분 진행되고 있는 데다 단언이 많아서 읽는 이에게 거부감을 주는 구석이 많다. 신은 왜 그렇게 시시해야 하며, 시인의 단언을 우리가 신뢰하며 귀 담아들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빛나는 문장이 곳곳에 있어도 결국 시 자체를 부질없고 시시하게 만든다.
● 동의되지 않는 神
ex 1) 신의 손을 편 채 뒤집어 가방 위에 올려놓았으므로/신이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모양의 책은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 있다(「역사와 신의 손」)
ex 2) “그녀는 일찍 태어나 버렸다./ 신이 무단횡단을 하는 바람에 //…(중략)…//인간에게 약간의 삭제가 허락된다면 ㅡ 그것이 신의 직업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일지라도 ㅡ 전봇대 아래의 똥, 아니 똥이 보여 주는 침착함 그 자체가 되고 싶었으며, 깜깜한 밤보다 비 오는 대낮을 무서워하는 똥의 속사정을 몰랐지만 그것까지 알았다면 정말 똥이 되었을 것이다.”(「무단횡단은 왜 필요한가」)
ex 3) "중력의 법칙은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신이 원자보다 작은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신은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신을 보려면 특수한 기구가 필요하다 신은 인간과 연락을 끊기 위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 인간세계의 중력 법칙이 미치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인간들이 섭섭해한다”(「과학의 법칙」)
ex 4) "손이 부족한 천국에서는/천사가 악마도 겸임한다는 사실 같은 게/사람들의 따뜻한 여름날을 망쳐선 안 된다고.”(「공원의 싸움」)
ex 5) “새/가창문에부딪혀자꾸자꾸죽었다신은실력이좋지않았던/거지,도끼를내려놓고도그런생각이가능했다”(「도끼를 든 엉덩이가 미친 사람」)
신을 인간 위치로 끌어내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상품성이 있다는 듯 신을 가져와 쓰는 방식이 굉장히 소비적이며 문제적이다. 그 위치시킨 신, 추상에 대한 비유와 정의도 너무 가볍다. 지금 시대 이것이 과연 신선한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시대도 아니고. 전복적이라기보다 자신이 부딪힌 벽을 그렇게 처리하고 마는 한계로 느껴졌다.
● 있어 보이는 문장이지만 동의하기엔 미숙해 보이는 화자의 단언들
ex 1) 죽음은 두둑하게 쌓여 있는 무엇일 뿐이다(「N의 백일장의 풀숲」)
ex 2) 인간을 불행으로 나눈 뒤 다시 불행을 곱해 인간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수학의 법칙」)
과학과 수학 등을 동원하며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지만 소화가 덜 되어 보였고 시인의 사색과 상상력이 좌중을 휘어잡을 설득력도 부족해 보였다. 시인이 정서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이성의 시 쓰기를 하고 있어서 더 그렇다.
문 시인의 가능성에는 꽤 긍정하고 있다. 다음 시집에 기대를 걸어본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을
어느 순간, 이해되는 순간이 있고
우연한 계기로,
그것을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 계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 있으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저 너머의 세계로 왔음을 인식하곤
깜짝 놀라곤 한다.
문보영의 시를 보면서 그런 나의 마음을 느낀다.
"비둘기는 서 있다
한 발로
사실 비둘기의 다리는 두 개다
다리 하나를 배때기에 숨긴 채
오늘도 다친 척하고 있을 분이다 앙뚜안은
비둘기를 향해 돌진해 그것을
자빠뜨린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두 발로 선다 비둘기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발을 접어 배 아래 숨긴다
앙뚜안은 물론 서운하다
왜 나에게는 힘든 척하지 않는 걸까" - <공원의 싸움> 중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사실이 있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 알려주고 싶은 진실이 있다.
그 너머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며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치열하게
진실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너머의 세계는 끊임없이 사실대로 말해달라 유혹한다.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강연자는 새끼 거북 사지을 내보였다 해변의
새끼 거북들이 함부로 태어나고 있었다
모기가
앙뚜안의 왼쪽 정강이에 달라붙었다
찌르고 빠는 주둥이의 불쌍함
모기다!" - <모기와 함께 쓰는 시> 중
모기는 모기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기가 모기로서 끝나지 않을 때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며
저 너머의 세계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
책의 기둥 너머에는 진실이 존재하며
그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나의 몫, 그러니까 독자의 몫이다.
지금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모든 시를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며
그 날을 위해, 시들을 조금만 재어둔다.
느낌으로 "좋다"고 느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시를 머리로 먼저 이해하려 하지 말자.
일단 느끼고, 이해는 천천히 해도 된다.
이런 말을 나에게 되뇌이며,
나는 오늘도 느낌으로 시를 보고
느낌으로 시를 써 나간다.
언젠가 이 느낌의 시가,
훌륭한 걸작으로 퇴고되는 그날이 오겠지.
책기둥 뒤에, 혹은 책기둥 위에 있을지도 모를
시의 진실을 찾아 오늘도 나는 시의 한 문장을 기웃거린다.
*
어지러운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속도가 빠르고 듬성듬성 말의 간격이 넓어 차이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살아가는 날이 늘고 글에 대해 숙고하는 날이 잦아질 때마다
좀 더 매끄러운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시들도 몇 편 있었다.
*
1부에서는 불면이 그랬고
2부에서는 끝이라는 시가 좋았다.
3부는 읽는 내내 조금 과하고 버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4부에서는 멀리서 온 책에 마음이 끌렸다.
당연한 소리겠다만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는 글 보다 실화를 딛고 쓰는 글이 와닿았다.
*
확실한 건
보통사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