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행복한 날의 기억 4 1917년 ~ 1942년 내 이름은 딜쿠샤 8 1945년 ~ 2000년 창문 너머로 바라본 서울 28 2006년 ~ 2016년 언제나 그 자리에 44 에필로그 언젠가는 돌아올 곳 54 |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3 1 독립 선언서와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가 1923년부터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거주한 곳이다. 일제 시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하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살았던 집이다. 딜쿠샤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세 편을 제작한 김세미 작가와 이미진 PD가 글을 쓰고, 젊은 화가 전현선이 딜쿠샤의 눈으로 바라본 테일러 가족과 서울의 모습을 그렸다.
딜쿠샤가 서 있는 곳은 서울 종로구 행촌동이다. 딜쿠샤 바로 옆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때문에 ‘은행나무 마을’이라는 뜻의 행촌동이 되었다. 아주 오래전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1917년 어느 날.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랑 영국인 메리 테일러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인도에서 결혼하고 한국에서 정착한 신혼 부부다. 언덕을 내려오던 메리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겼다. 나무 밑에 집을 짓고 싶었다. 앨버트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지었다. 집을 짓고 건물 밑에 성경의 시편 127장 1절을 새겼다.
건축가가 집을 지어도 하느님이 짓지 않으면 헛되고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하느님이 지키지 않으면 헛되도다.
앨버트와 메리에게는 한국과 특별한 운명으로 맺어진 아들 브루스가 있다.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3 1 운동 하루 전날 태어났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브루스를 낳은 메리는 앨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병원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간호사들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간호사들은 메리의 침대에 종이 뭉치를 숨기고 재빨리 사라졌다. 간호사들이 사라지자마자 병원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친다. 일본 경찰들은 병원을 샅샅이 뒤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메리의 침대에 숨겨진 종이 뭉치는 찾지 못하고 돌아간다. 거기에는 3 1 독립 운동 선언서가 들어 있었다. 3 1 독립 운동 선언서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앨버트 식구들 덕분이었다.
2016년 2월 28일, 미국에서 브루스의 딸 제니퍼가 딜쿠샤를 찾아온다. 살아 있다면 브루스가 꼭 97살이 되는 날이다. 식민지 시대, 해방, 3년 전쟁, 개발의 광풍을 견디며 여전히 남아 있는 딜쿠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딜쿠샤를 앨버트와 메리의 손녀가 찾아온 것이다. 제니퍼의 손에는 작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고, 주머니에는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브루스의 재가 들어 있었다. 앨버트는 양화진 묘지에 묻혔고, 브루스는 딜쿠샤의 옆 은행나무 밑동에 뿌려졌다. 서울시와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등이 딜쿠샤를 복원하기로 결정한 즈음이었다. 딜쿠샤는 2017년에 문화재로 공식 등록했다.
가을날, 은행나무 길에 꼭 가져가고 싶은 그림책을 소개해볼까 해요.
출판사 찰리북에서 나온
<딜쿠샤의 추억>이란 그림책입니다 :)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딜쿠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일본스러웠는데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한다고
해요.
그럼 딜쿠샤는 무엇인지,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봐요!
딜쿠샤가 사는 곳은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 행촌동이에요.
행촌동의 '행'글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커다란 은행나무 때문에 은행나무 마을이라는 뜻의
행촌동이지요- 딜쿠샤 앞에는 권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바로 이 오래된 은행나무 덕분에 딜쿠샤가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해요.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여 년 전인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1917년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서양인 남녀.
남자는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여자는 영국인 메리 테일러로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둘은 갓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한
신혼부부였어요.
메리는 딜쿠샤 앞의 큰 은행나무를 보고 마음을 빼앗겨
앨버트에게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지어달라고 해요. 바로 그 집의 이름이 딜쿠샤였어요.
앨버트는 딜쿠샤를 짓고 성경의 시편 127장 1절을 새겼어요.
'건축가가 집을
지어도 하느님이 짓지 않으면 헛되고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하느님이
지키지 않으면 헛되도다'
이 구절이 딜쿠샤의 파란만장한 삶을 지켜주었는데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죠.
1923년 마침내 딜쿠샤는 완성되었어요.
이 집에서 테일러 가족의 평화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앨버트와 메리에게는 아들 브루스가 있었어요.
메리는 한국인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메리가 그린 한국인들은 왠지 쓸쓸하고 슬퍼
보였죠.
그 당시에는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였어요.
앨버트는 이런 한국의 상황과 독립에 무척 관심이 많아
오래전부터 한국의 독립에 관한 기사를 써 왔다고 해요.
언젠가
역사를 공부하다 만났던 앨버트를 이 그림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
그 둘의 아들인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그러니까 3.1운동 하루 전날
태어났어요.
브루스가 태어난 세브란스 병원에 일본 경찰들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어요. 일본 경찰들이 찾고자 했던 건 바로 3.1 독립 선언서였고, 갓 태어난 아기 브루스는 한국의 독립
선언서 위에서 우렁차게 태어난 거죠.
앨버튼 재빨리 동생 빌을 불러 3.1 독립 선언서를 전달해 몰래 한국을 빠져나가게 했죠.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
3.1 독립 선언, 그리고 3.1
운동
앨버트 덕분에 한국인들의 독립 만세 운동이 세계만방에 알려질 수
있었어요.
작년 2017년에는 3.1운동 98주년을 맞이하여
타종행사에는
고(故)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참여가 참여했다고 해요.
시간이 흘러 브루스는 멋진 청년으로
자랐고
스물한 살이 되던 1940년 어느 날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그날의
작별이 6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질 줄은 그땐 결코 알지 못했었죠. ㅠ_ㅠ
그 이유는 바로
1941년 12월, 미국과 일본 사이에 태평양 전쟁
때문이었고
바로 그 전쟁으로 테일러 가족의 운명은 바뀌고 그와 함께
딜쿠샤의 운명도 바뀌었어요.
1945년 8월 15일
대한 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고
그림책 맨 뒷장에는 생전의 앨버트와 메리, 그리고 브루스의 모습과
딜쿠샤 집의 내부와 커다란 은행나무까지 흑백 사진으로나마
남아있네요.
이
그림책을 쓴 김세미, 이미진 씨는 다큐멘터리 작가와 프로듀서로 사람과 건축,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계세요. 2005년 딜쿠샤를 처음
만나 매료되어 그때부터 딜쿠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에는 희망의 궁전, 딜쿠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 딜쿠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요.
이 책은 이제
6학년이 되어 병자호란 이후의 역사를 배우게 될 아이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어요. 일제강점기부터 약 100년 동안의 흐름을 딜쿠샤와
함께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