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극장 주인
수업이 끝나고 여느 날처럼 우정이와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아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던 동네 극장 앞에 구급차와 경찰차가 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괴한의 침입으로 극장 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자 아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병문안을 가고, 그 자리에서 극장 할아버지로부터 극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할아버지는 고심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름이는 기쁘면서도 슬픈 마음이 든다.
극장 할아버지는 최근에 몇 번이나 극장에 좀도둑이 들었다고 했다. 사무실이 난장판이 되고, 기계실이 엉망진창이 되고, 객석 방석들이 널브러지는 일이 며칠에 한 번씩 일어났다고 했다. 없어진 물건이 없으니 도둑은 아니라고 할아버지가 말하자, 극장 할아버지는 남의 극장에 몰래 들어와서 어지럽힌 건 도둑이나 할 짓이라고 못 박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불을 손으로 꼭꼭 눌렀다. 극장 할아버지가 쓰러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 나아서 일어나면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참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할아버지, 얼른 나으세요.”
병원에서 내가 한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극장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빙그레 웃었다. 그게 극장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18쪽에서
꿈을 갉아먹는 극장
할아버지가 주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극장을 빌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못으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꽁지머리 아저씨는 구체적인 공연 내용은 설명도 않고, 자꾸만 스펙터클하고 판타스틱한 공연을 할 거라는 말과 함께 돈다발부터 들이밀다가 결국 할아버지에게 퇴짜를 맞는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극장이 사람들의 꿈을 갉아먹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꿈을 갉아먹다니, 그런 일 없다니까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 극장은 내가 코흘리개 때부터 드나들던 곳이라 누구보다 잘 안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기 꿈을 이루는 곳이라며 좋아했고,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또 다른 꿈을 꾸는 듯 행복해했다. 그런데 꿈을 갉아먹는다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전화는 한 통으로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세 통이 더 걸려 왔고, 모두 같은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공연을 하기로 했던 다른 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그런 황당한 소리를 어디서 들으셨어요? ……송 영감이 다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공연하고 상관이 없는……, 그렇다고 갑자기 이러시면 어쩝니까? 다시 한 번 생각……. 여보세요, 여보세요?”
뭔가 일이 단단히 꼬이는 것 같았다. ―31쪽에서
분장실 거울 밑 비밀 창고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가운데 밤이면 극장에서 으스스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자신과 할아버지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는 극장을 구하기 위해 아름이는 친구들과 함께 울음소리의 정체를 밝히지만, 할아버지는 위험한 일이니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쇳소리 악당이 극장에 몰래 침입하려는 현장을 목격한 아이들은 한 발 앞서 극장에 들어갔다가 비밀 창고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찾게 된다.
나는 손전등을 비추며 갈고리를 고리못에서 빼냈다. 긴 탁자 밑에 있는 고정 장치는 모두 다섯 개였고, 녹이 슬어 뻑뻑했다. 우리는 차근차근 하나씩 열었다. 다섯 번째 갈고리를 고리못에서 빼내자 경첩이 접히면서 탁자가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분장실 거울 아래 벽이 천천히 안으로 밀렸다.
나는 열린 벽 너머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 안은 컴컴했는데 손전등 불빛에 비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계단으로 발을 내딛었다. 내 뒤로 우정이가, 그다음으로 청록이가 따라왔다.
우리는 계단을 하나씩 세며 내려갔다. 계단은 일직선이 아니라 ‘ㄷ’자로 구부러져 있었다. 모두 150개인 계단을 내려가자 이윽고 편평한 곳에 닿았다. 눈앞에 넓은 바닥이 나타났고, 한쪽 벽에 있는 선반과 바닥에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저기 스, 스위치가 있어.”
청록이가 나를 앞질러 겅중겅중 뛰어가 스위치를 켰다. 전등이 몇 번 깜박이다 환하게 켜졌다. 선반에 놓인 물건들은 네모난 상자들이었다. 우리는 상자 하나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먼지가 풀썩거려서 콧속이 간지러웠다. -44~45쪽에서
낀통 기획
아이들은 쇳소리 악당의 침입과 극장의 비밀을 할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해 ‘낀통’이라는 가명으로 쪽지를 남기지만, 금세 정체를 들키고 만다. 이들의 용기와 기지에 감탄한 할아버지는 함께 범인을 퇴치하기 위한 작전을 짜는 한편, 극장을 살리기 위한 개관 공연을 준비하게 되는데…….
“그래, 이제 다시 이야기할까, 낀통 기획?”
우정이가 수첩을 떨어뜨렸다. 청록이는 허둥대며 한 발 뒤로 물러섰고,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낀통이라뇨? 그, 그리고 기획은 또 뭐예요?”
제대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목구멍 안에서 말들이 한데 뒤엉켜 서로 나오겠다고 싸우는 것 같았다. 목이 아팠다.
“기획은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맡아서 하는 거란다. 여기는 극장이니까 공연 기획이겠지. 내가 보기에 낀통은 기획을 잘할 것 같고, 극장에 좋은 기획팀을 두는 것도 마음에 들어.”
“아니에요, 저희가 아니라고요.”
할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할아버지가 앞장서 간 곳은 기계실이었다. 우리는 쭈뼛거리며 따라갔다. -92~93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