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책의 두께와 초반 추천의 말을 읽다보면 이거 뭐야?하며 지레 겁을 먹어 완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을거라 예상해본다. 내가 그랬으니까. 번역서인데다가 문장 하나하나가 꽤 장문이다보니 가독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겠지. 아무리 대중교양서라고 하지만 내용 자체가 쉬운 편은 아니라 같은 문장을 여러번 읽어야할 때도 있으며,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수며 읽어야하는 책이기에 기존의 사고판단회로를 재정립해가면서 읽어야함을 조언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우리가 살면서 꼭 한번 이상은 읽어야한다고 강조하고 싶고 나는 재독 삼독.. 이따금씩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눈을 사고 싶지 않다ㅋㅋㅋ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의 큰 골자는 대니얼 카너먼이 차용한 용어인 뇌에서 직관을 담당하는 '시스템 1'과 의식을 담당하는 '시스템 2'가 어떻게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적절히 상황과 문맥에 맞춰 이 두 시스템을 활용하여 결정을 내릴 것인가 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카너먼은 시스템 1,2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굉장히 다양한 예를 들어준다. 그 덕에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기 쉬우며 읽으면서 내가 어찌나 편향에 잘 사로잡히는지 웃기기도 해서 읽는 내내 재밌었다.
이 책은 평소에 확률과 통계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또한 심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또 수월할 수도 있다. 카너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되었으며 심리학자로서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라는 상징적 요소만으로도 재밌지 않은가. 이런 사전적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친절한 카너먼이 다양한 예시와 반복을 통해 우리의 뇌로 이 개념을 콕콕 박아주니 걱정 또한 필요없다. 특히나 각 챕터의 내용을 함축하는 상황을 독백처럼 요약해놓은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심리학자의 거장이라 그런지 역시 헷갈려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꿰뚫어 무한 반복학습을 통한 개념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음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용이 조금 어려울지라도 대중교양서 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고 본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상 깊었던 개념이 몇 개 있어서 적어보고 싶다.
1. 평균회귀
말 그대로 모든 것은 평균으로 회귀하게 된다 라는 건데 이 개념이 처음엔 너무 충격적이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이해하고나니 모든 상황에 크게 인과관계를 만들어내거나 의미부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고마운 개념이다. 이 개념의 예는 이런 식이다. 운동 선수가 오늘 평소에 비해 굉장히 나은 실력을 발휘했다면 그 다음날은 평균으로 회귀하여 오늘보다는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뒤에 일어난 사건으로 앞서 일어난 사건을 추측할 때 회귀가 나타난다면 회귀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카너먼은 좋아하는 방정식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평균회귀의 개념을 활용하여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성공 = 실력 + 운
대성공 = 약간의 추가적 실력 + 상당한 운"
나는 평균회귀 개념이 제일 좋았고 그래서 1번에 소개하는 이유도 있는데, 나의 평균을 안다는 가정하에 오늘 내가 아무리 잘했더라도 언젠간 평균으로 회귀할 수 있으니 절대 '자만하지 말라', 오늘 내가 못했더라도 언젠간 평균으로 회귀할 수 있으니 절대 '낙담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 로 귀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그 날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왔든 상관없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다.
2. 선호 성향을 나타내는 네 갈래 유형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때 사람은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경향이 있고 손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동연구자 아모스와 함께 카너먼은 사람들이 부보다 이익과 손실에 가치를 부여하고 결과에 부여하는 결정 가중치가 확률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원래 베르누이가 주장했던 개념인 "사람들은 큰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전망 앞에서는 위험 회피 성향을 보"이므로 "도박의 기댓값보다 적은 금액을 무조건 받는 쪽을 흔쾌히 택한다"는 것에서 세 가지를 더욱 추가한 것이다. 다음 표가 이를 가장 잘 요약해주고 있으며 각각이 어느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 내가 잘 기억하기 위해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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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
손실 |
높은 확률/
확실성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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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달러를 딸 확률 95%
- 실망할 두려움
- 위험 회피
- 불리한 타협안 수용
=> 베르누이의 기존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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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달러를 잃을 확률 95%
- 손실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
- 위험 추구
- 이로운 타협안 거절
=> 돈을 잃음에도 계속 도박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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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확률/
가능성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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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달러를 딸 확률 5%
-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
- 위험 추구
- 이로운 타협안 거절
=> 우리가 복권을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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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달러를 잃을 확률 5%
- 큰 손실을 입을 두려움
- 위험 회피
- 불리한 타용
=>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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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호유형으로 인해 마구잡이소송에서 귀찮은 피고는 보험에서처럼 잃을 확률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패소할 가능성에 더 크게 무게를 두어 내가 제시했던 금액보다 더 큰 금액으로 타협을 하려 하고, 원고는 도박하듯 대담하게 협상하려 해 기존에 제시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고 한다. 너무나 재밌는 선호 유형이지 않은가. 이걸 유형으로 정리하며 두 심리학자가 느꼈을 쾌감을 내가 공유할 수 있어서 희열을 느꼈다.
3. 회상 용이성
테러, 살인사건 등과 같은 확률적으로는 일어나기가 힘든 사건을 내가 직접 목격했거나 언론 등을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실을 왜곡하여 과대평가하게 됨을 말한다. 시스템 1이 연상 작용을 촉발하기 때문인데, 어떤 사실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보거나 들었을 때 우리의 뇌는 "그것을 확증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그 말을 진실로 만들어주는 증거, 사례, 이미지를 선별적으로 끄집어"내게 된다. 그러다보니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지, 또는 얼마나 막힘없이 떠오르는지로 결정"되는 확률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우리는 드문 사건을 마치 자주 일어나는 것 마냥 주목해버리게 되는 편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등으로부터 어떤 나쁜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인종을 그 성별을 일반화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글로벌 시대에 우리 그러진 말자. 그거 다 회상 용이성이야. 세상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4. 두 자아: 기억자아 vs 경험자아
아무리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거나 불쾌했더라도 마지막의 느낌이 좋았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기억의 정점과 종점을 평균내어 평가한다. 그것이 기억자아이며 결국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최종 평가나 결정을 내리는 자아인 셈이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최근에 Yes 24 북클럽에서 선공개된 김범의 신작 "나를 찾지 마"에서 준표가 불법 장기매매 업자들에게서 하루 종일 노예처럼 착취당했지만 하루의 일과 끝에 받는 미음처럼 아주 묽은 반그릇밖에 안되는 옥수수죽을 먹으며 느낀 행복감으로인해 7년이 지나 다시 회상하는데도 그 시간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하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분명 그 순간 순간을 경험하는 자아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건데 말이다. 알았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평소에 뭔가를 먹을 때도 나름 기억자아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싶은게, 앞에 많은 음식이 놓여있을 때 마지막에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내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이다. 그러고나면 그 먹었던 행위 자체가 굉장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되니까. 대신 여럿이서 같이 먹을 때 불리하다는게 흠이긴 하지만 말이다. 경험자아는 결국 일기와 같은 그 순간 순간을 기록해두는 형태로 기억자아의 인지편향을 조절할 수 있는데 평소 책이나 영화의 내용 및 이야기의 줄거리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그것의 긍정적, 부정적 느낌으로만 기억하는 내가 이렇게 리뷰를 남기면서 경험하는 자아를 만들어두면 나중의 나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행복하다.
읽으면서 배운 것도 깨달은 것도 많아서 내 스스로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내 경험자아를 동원하고 싶어) 리뷰가 길어졌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어떤 식으로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하는지 내 스스로의 성향에 대해 파악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으며, 게으른 시스템 2가 시스템 1이 보내는 것을 검열없이 승인해버려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인지했으니 의식적으로 막을 수 있고, 또한 많은 경험을 통해 시스템 2가 시스템 1이 되어 즉각적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식을 반복하여 무의식이 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읽을 모든 책들과 마주하게 될 상황에 레퍼런스가 될,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꼭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카너먼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대니얼 카너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