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고르거나 제목을 볼때는 기대하는 바가 있다.
1. 정보전달인가? 설득인가? 감동을 주는 책인가?(나는 과학적 사실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학적으로 쓰여진 책보다 더 감성적이라고 느껴질때도 있고 …이 책이 과학책뿐만 아니라 비과학서적까지 다양하게 추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등등이 있겠다.
그 다음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2. 독자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전제 하에 쓰여진 책인가, 아닌가? 가 있겠고. 어떤 경우에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 1에서 아무리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고 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는 책은 단순한 활자의 나열일 뿐이니까. 특히 해당 분야가 수학이나 과학일 경우에는 2가 더 중요한 사항이 되겠다.
뭐 2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읽을"수는 있겠다. 그냥 눈으로 글자를 스쳐 지나가는 행위라면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읽어내려갈 자신이 있으니까.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이 책에 대한 제 평가는요....
제목부터 완벽하게 오독 해 버렸다가 되겠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에서 울렸다는 말이 과학자들이 "엉엉 울었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울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니까. 부제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동'을 기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차게 실패했다. 한 100페이지 쯤에서...'어라, 이거 뭔가 아닌데?'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니 근데 표지에도 눈물표시 그려져 있지 않아?? 당연히 울 각오를 하고 펼쳐들었다고 나는 !!!!!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마음은 건조기에 돌아가는 빨래마냥 바싹바싹 말라가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제목을 읽었다. 내 마음을 뒤흔든. 그래 울린다는 동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겠지 …나는 이 모호한 제목에서 배신감까지 느꼈다.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았다는 것도 10명이 극찬한 단 한권의 책인줄 알았다.(그러면 차라리 그 책에 관심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힘든 일이다. 당장 나한테도 최고의 책 한 권을 꼽으라고 말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10명이 모여서 만든 리스트라니...그런거 안 궁금하다. 리뷰쓰는 와중에 하긴 뭐한 말이지만 애시당초 나는 남의 리뷰엔 관심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일단 퍼먹어봐야 하고, 그 영화가 구린지 아닌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잘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저러한 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던가. 편견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일단 남들이 백 번 "좋다"고 외쳐도 "그래서 뭐?"가 된다는 말이다.
책을 읽기 전 기본 정보라도 검색해 봤어야 했던 걸까? 알 수 없다. 어쨌든 뭔가 잘못 됐다는 것만 느껴졌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상태로 나는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직업적 과학자는 아니고, 그렇게 될 필요도 전혀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좀 더 유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이 '진짜로' 알고 있다고 믿는 '상식적 지혜'를 잠시 미뤄두고, 과학자들이 과연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P.125
합리적인 사고는 불필요한 비용을 막을 수 있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대중은 과학적 지식에 취약하다. 미국인 4명중 1명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모른다. 그 중 인류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48%에 불과하다.
위의 통계는 2012년에 실시된 조사로, 다시 조사를 하면 다른 통계가 나올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떤 걸까? 과학을 뜻하는 science는 scire에서 유래된 말로서 scire(안다) → scientia(아는 것, 지식) →science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안다는 건 뭘까?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작은 수에서 큰 수는 뺄 수 없다고 배운다.
중학생이 되면 음수가 있다고 배운다. 그러나 음수의 제곱근은 없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사실 허수가 있다고 배운다. 갑자기 웬 수학 얘기냐고? 수학이랑 과학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지 않나? 그리고 당장 생각나는 비유가 이것뿐이다... 그럼 과학으로 돌아가 보자, 물은 전기가 통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더 배우기 시작하면 순수한 물은 전기를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좀 더 배우면 약간은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의 특성 중에 과학의 잠정성이라는 놈이 있다는데 이건 새로 입증된 이론으로 인해 언제든지 다른 지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성격이 있댄다.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이나 진리가 없다는 뜻이다. 글쓴이도 '유용하다'고 했지 절대적이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진리란 없으므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자고 하거나, 현재까지 내려진 판단들이 틀렸다던가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해되고 재해석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그럼 우리는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현재 시점에서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틀리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글쓴이의 말마따나, 모든 사람들이 과학자가 될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기준을 정하는 건 어디까지 일까? 적당한 기준이 있다면 대중과 과학자 사이의 인식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인류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것이 단순한 '기술'과 '과학'적인 서술뿐이라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에는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 판단....판단 하니까 말인데 책을 읽다 이런 구절이 나왔다.
20여년 동안 휴대전화 같은 외부 기억 장치에 전화번호 저장을 맡긴 덕분에 암기력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운 좋게도 인공 뼈를 몸에 받는 일은 없었지만, 치아는 부분적으로 인공물이다. 따져보면, 이런 나는 '사이보그'다.
P.17~18
나는 이 부분에서 너무 극단적인 논리의 점프가 아닌가 싶었다. 이게 뭔 소리래??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냉장고는 나온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끽해야 30년이 될까말까 하다. 그러나 이런 패턴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꿔 놓는다.
나는 어릴때 가족과 둘러앉아 케이블에서 방영해주는 프로그램을 봤다. 드라마 한 편을 보기 위해 다섯개에서 열 개 내지의 광고를 봐야 했다. 지금은 9,500원을 내면(그보다 더 적거나 혹은 많이) 광고조차 보지 않아도 되는 세대를 살고 있다. 그럼 정말로 내가 프로그램 한 편을 보기까지의 시간은 줄었을까?
아니, 나는 수많은 영상 중에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거나 부담감이 적은 유튜브 쇼츠 영상을 보기도 한다.
저장장치가 다루기 쉽고 용량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줄어든다.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 한 번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가나다순으로 사전을 뒤지던 세대보다 방법을 찾는 요령을 익히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이보그인가?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가 완전히 바뀌기 까지는 7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 7년에 걸쳐 세포가 갈아끼워진 나는 7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가? 판자의 조각을 계속 갈아끼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라는 건 실재할 수 있나?
나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을 하다 보면 정신병이 와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 뇌 용량이 여기까지 밖에 안된다는 말이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것을 근거로 내려야 할까? 과학? 철학? 신학? 수학? 문학? 놀랍게도! 나는 이 모든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근거로 내세운다고 하면...역시 과학이 제일 그럴듯하겠지. 과학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일단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쨌든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줄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만큼 알 수도 없고, 학교를 다닌지도 오래된 지금은 그나마 알고 있던 지식이나마 흐려지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인지 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과학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흥미도 있다.
그래서 과학 분야의 책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많이 나오면... 그 중 하나는 내 마음에 들거나 나를 이해시켜 주는 책이 있겠지.
어쨌든...이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총평을 내자면, 주말에 드러누워 출발 비디오여행을 한 화 본 기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차라리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는게 좋다. 군데군데 어떤 문장에서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오 이거 나중에 읽어봐야지'라는 건 유의미한 생각이 아니다. 의미가 있으려면 결제 버튼까지 가야 한다. 그치만? 219페이지 까지 훑어내리면서 그렇게까지 끌리는 책은 없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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