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개츠비
글쓰기를 즐긴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 p.30(피츠제럴드)
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매 단어를 마치 이 세상에서 쓰는 최후의 단어인 것처럼 책 한 권 한 권을 쓸 것입니다.
--- p.31(피츠제럴드)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아 소설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청소부가 될까 고민 중입니다. 여전히 [스마트 세트]에 보낼 단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 p.45(피츠제럴드)
오늘 밤 삶에 지치고 왜 이리 기운이 없는지 잉크 찍을 힘도 없습니다. … 다섯 달 동안 빈둥거리고 있는 저는 매분이 지옥입니다. 다시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릴없이 빈들거리고 있자니 이 끈적거리고 불쾌한 우울감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 한편으론 삶도 술도 문학도 다 지겹습니다. 젤다만 없다면 한 3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습니다. … 우리 세대와 함께 허우적거리는 이 무기력하고 절반쯤은 지적인 나약함이 지겹고 또 지겹습니다.
--- p.67(피츠제럴드)
열 배나 더 오래 걸릴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지요.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그런 일이 생깁니다.
--- p.113(피츠제럴드)
그리하여 새 소설은 순전히 상상력만으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단편에서 쓴 것 같은 쓰레기 상상력이 아니라 진실하면서도 찬란한 세상을 그려내는 한결같은 상상력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천천히,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딛고 있으며 동시에 상당한 심적 고통을 느낍니다.
--- p.114~115(피츠제럴드)
개츠비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얼마간은 내 옆을 지키다가 사라지곤 했지요. 다시 개츠비가 내 옆으로 왔다는 걸 이젠 압니다.
--- p.150(피츠제럴드)
나 자신을 믿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편집자님의 한결같은 편지 덕분이었습니다.
--- p.151(피츠제럴드)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는 건 위험하다는 선생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그럴 땐 본능이 최고의 안내인입니다.
--- p.159(퍼킨스)
개츠비는 자신의 창조자에게 더 많은 걸 해줄 겁니다.
--- p.165(퍼킨스)
삶의 수준을 낮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불안한 재정 상황을 더이상 견딜 수도 없습니다.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예술가로 살려고 애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920년에 제대로 살 기회가 왔었는데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그러고 나면 마흔 즈음에는 이 끊임없는 걱정과 방해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p.174(피츠제럴드)
어찌 되었건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서평가와 가십꾼들의 소동이 가라앉으면 『위대한 개츠비』는 걸작으로 우뚝 솟을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똑같이 재주 좋은 말이지만, 잠에 겨운 잡종의 등에 손쉽게 올라타는 것과 기운 넘치는 순종의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은 별개의 것이니까요. 나는 그렇게 봅니다.
--- p.176(퍼킨스)
기적적으로 책이 2만 3000부까지 팔려서 출판사에 진 빚을 싹 청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년 동안 빚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빚은 나의 늙어가는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나마 새 소설을 생각하면 행복해집니다.
--- p.178(피츠제럴드)
결국 난 꾸준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당시 팽배해있던 인식과는 반대로 어니스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거북이고, 그는 토끼라고. 그게 문제의 진실입니다. 내가 그때껏 손에 넣은 모든 것은 길고 꾸준한 노력의 산물인 반면, 타고난 재능으로 비범한 작품을 써낸 어니스트야말로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가라고도 말했습니다. 내게는 재능이 없습니다. 내 재능은 싸구려 재능입니다.
--- p.301(피츠제럴드)
『개츠비』를 출간할 때의 그 기쁨이란! 지금껏 내가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던 그 어떤 책보다 완벽한 책이었습니다. 그런 만족감은 이제 더는 맛볼 수 없을 것 같군요.
(퍼킨스)
--- p.384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놀랍도록 생생한 입 모양, 얼굴과 모습과 태도가 진정으로 탁월한 그녀는 싸구려 장식품들 가운데 한 송이 꽃 같았다. 그녀가 행복하니, 찬란한 감정이 그의 눈에서 솟구쳤고, 목이 멨고, 신경이 따끔거렸고, 거칠고 자극적인 감정이 목 안에 가득했다. --- p.100
결국 그는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그녀에게 다시 키스하고, 그녀의 위대한 부동성 속에서 안식을 찾고 싶었다. 그녀는 일체의 들뜸, 일체의 불만이 끝나는 존재였다. --- p.146
“중독성 없이는 아름다움이란 없지. (…) 먼지로, 죽음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중독성이란 없어…….” --- p.223
그는 떠다니며 꿈꾸며 살기를 갈망하며 헛되이 지냈다. 아무도 떠다니며 살지 않았다, 소용돌이 쪽으로 떠가는 걸 제외하면. 꿈도 꾸지 않았다, 그의 꿈이 우유부단과 후회로 가득한 환상적인 악몽으로 변해가는 걸 제외하면. --- p.367
앤서니 패치는 더 이상 정신적 모험을 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편향된 사람으로 바뀌었다. --- p.370
꿈은 흐릿해지고 그는 혼란에 빠진 유령이 되어갔다. 그는 마음속 기묘하게 벌어진 틈을 돌아다녔는데, 마음속엔 예상치 못한 폭탄들이 가득했고, 기껏해야 혹독하게 멸시하며 눅눅하고 기운 없는 깊은 곳에 도달할 뿐이었다. --- p.500
“아름다움은 찬양을 받을 유일한 대상이고, 사랑을 받을 유일한 대상이다. 주의 깊게 수확하여 선택받은 연인에게 주어져야 한다, 장미꽃 선물처럼.” --- p.504
“알다시피 그런 유의 새로운 소설들은 넌더리가 나. 세상에! 어디를 가나 나는 멍청한 여자들에게 『낙원의 이편』을 읽어보았느냐는 질문을 받아. 여자들은 정말 그걸 좋아하나? 만일 그게 삶에 진실한 거라면,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다음 세대는 망할 거야. 나는 이 싸구려 사실주의가 지겨워. 문학엔 낭만주의자를 위한 자리가 있다고 봐.” --- p.540
속이 안 보이는 짙은 어둠이 그에게 내려와 그의 생각이며 분노며 광기를 덮어버렸다. 우두둑 소리가 확실히 나면서 세상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서 바뀌었다……. --- p.570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었어. (…) 힘든 싸움이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해냈어!”
--- p.574
재즈 시대의 메아리
그럼에도 그 역할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전까지 나는 몇 달간 시대의 대변자로, 문화의 대표자로 떠올랐다. 뉴욕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아니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대도시의 삶이라는 모험을 떠난 지 몇 달 만에 우리는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졌다. 시내 분수대에 뛰어들었다는 별것도 아닌 행위로 신문의 가십난에 오르내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에 우리의 발언이라는 것들이 인용되었다. 사실 우리가 연락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아직 미혼의 대학 친구 대여섯, 그리고 문학계의 지인 몇 명뿐이었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중에서
모든 삶이란 서서히 해체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일 테지만, 그중에서도 중대한 타격은 - 그러니까 외부에서 오는, 혹은 그렇게 보이는 크고 갑작스러운 타격은 - 그래서 우리가 계속 떠올리며 탓을 하고 약해질 때마다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게 되는 타격은 그 파괴력을 단숨에 발휘하지 않는다. 외부의 타격엔 내부의 또 다른 타격이 뒤따르게 되는데, 이를 자각했을 때엔 이미 늦어서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전자에 따른 파손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후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금이 가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