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천에서 시작하여 무한히 치밀하게 발전해 나가는 강,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각하기에도 벅찰 만큼 복잡한 “수많은 색깔의 유리 돔”과 같다. (……) 그러니 인간의 존재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써 보자. 우리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지는 순간부터, 우리가 묶여 있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리고 인생의 여러 단계, 그러니까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를 통과하면서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종교, 예술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마주 바라보고 함께 걸으며 지적인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보자. 그러다 보면 우리의 복잡한 삶이 지닌 가치와 의미, 그리고 진실이라는 총체적인 시야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들어가며」중에서
우리가 죽음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種)의 일시적인 도구이며, 생명이라는 몸속의 세포일 뿐이다. 생명이 젊고 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는 죽어서 떨어져 나간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성장이 억제되고, 청춘은 지상에서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란 멋 내기와 똑같이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제거하는 과정, 불필요한 것을 잘라 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가는 몸에서 자신의 일부를 떼어 낸 뒤, 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늙은 몸이 죽기 전에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 사랑을 통해 이 새로운 형태의 자신에게 생기를 전해 준다. (……) 개인은 실패할지라도 생명은 성공한다. 개인은 어리석을지라도, 생명은 자신의 피와 씨앗 속에 몇 세대에 걸친 지혜를 품고 있다. 개인은 죽을지라도 생명은 지치지도 풀이 죽지도 않고 계속 이어지며 궁금해하고 갈망하고 계획하고 노력하고 높은 곳에 오르고, 또 갈망한다. ---「5장 죽음에 대하여」중에서
전쟁에 종지부를 찍자고 인류의 양심에 모호하게 호소하는 방식은 역사를 통틀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양심은 경찰관 앞에서 생겨난다. 현명한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것이다.
전쟁 문제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통 크고 너그러운 감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원인과 분쟁을 연구하고 참을성 있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평화에도 전쟁처럼 현실적인 계획과 조직이 필요하다. 모든 요인에 미리 대비하고,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미리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정치가들이 가끔 국내 문제를 회피하려고 슬쩍 평화를 말하는 식으로는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15장 전쟁에 대하여」중에서
우리는 좁은 원 안을 빙빙 돌며 살아간다. 그 원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생물학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며, 그 너머에는 우연한 사고와 계산 불가능한 운명의 영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교육은 절제의 기술뿐만 아니라 한계도, 그리고 그 한계를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 한계 안에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평생을 살아도 닳지 않을 만큼 아주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기능이 되어야 한다. ---「21장 교육에 대하여」중에서
과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대개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돌돌 말아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시킨 과거일 뿐이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과거다. 저 멀리 이미 잊힌 세대에까지 이어진 유전적인 뿌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환경 요소,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사람들,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일이 우리의 기억, 몸, 품성, 영혼에 쌓여 있다. 도시, 나라, 종족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들의 과거이므로, 과거를 모르고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죽는 것은 현재이지 과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토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이 순간은 우리와 눈과 손가락을 스치고 사라져,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삶의 받침대 겸 기반 속으로 영원히 들어간다. 살아 있는 것은 과거뿐이다. ---「22장 역사의 통찰」중에서
나는 지금 세대가 덧없는 현재의 소식들에 쏟는 시간이 너무 많고, 살아 있는 과거에 쏟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새로운 소식이 목까지 쌓여 질식할 지경이고, 역사에는 굶주렸다. 하지만 역사가 없이 어찌 그런 사건들을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하고, 크고 작은 것을 가려내고, 표면의 변화 밑에 자리한 저류를 찾아내고, 미리 결과를 예견해서 치명적인 실수나 터무니없는 희망의 변질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겠는가?
볼링브로크 경은 투키디데스의 말을 인용해서 “역사는 사례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역사는 세상을 공방으로, 인류를 재료로, 기록을 경험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현명한 사람은 타인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경험에서조차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역사는 수많은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겪은 경험이다.
---「22장 역사의 통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