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11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330g | 130*190*20mm |
ISBN13 | 9791186900710 |
ISBN10 | 1186900717 |
발행일 | 2018년 1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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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330g | 130*190*20mm |
ISBN13 | 9791186900710 |
ISBN10 | 1186900717 |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10만부 돌파 기념 스페셜 에디션)
16,020원 (10%)
제1라운드 식물vs식물 평화 없는 식물계와 투쟁하는 식물들 치열한 경쟁 사회|가장 치열한, 햇빛을 둘러싼 경쟁|승리의 열쇠는 성장 속도_나팔꽃 관찰 일기|덩굴식물이 가늘고 길게 자라는 이유|감는 방법도 가지가지|장미의 가시는 방어와 공격을 위한 무기|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살인마|남에게 의지하면 고생하지 않고 빨리 클 수 있다? 25|줄기도 잎도 없이 기생한다|세상에서 가장 큰 꽃의 정체|뿌리도 잎도 없는 악마 32|보이지 않는 화학전|단독 승리는 허용되지 않는다|식물계 힘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제2라운드 식물vs환경 고난을 이겨내는 싸움의 기술 강자에게도 싸움은 쉬운 일이 아니다|싸우지 않고 승리한다=CSR 전략|악조건을 기회로 삼는 약자의 생존법|선인장에 가시가 있는 이유|터보 엔진으로 파워 업|수분의 증발을 막는다|고성능 엔진 트윈캠의 등장|물이 부족할수록 뿌리가 성장한다|건조할 때 늘어난다|잡초는 약하다|기회는 역경과 시련 속에 있다_잡초의 숙명|역경은 순조로운 환경이다 제3라운드 식물vs병원균 병원균에 대처하는 식물의 방어 태세 식물의 항균물질은 건강 상품의 주역|식물은 생존에 필요한 것만 만든다|어느 날 나뭇잎 위에서 벌어지는 비상사태|유도체를 둘러싼 공방|싸움의 시작|산소는 폐기물이었다|산소가 일으킨 생물의 진화 |식물의 무기이자 방어 체계, 활성산소의 등장|결사적 작전 ‘적과 함께 자폭하라!’|싸움이 끝나고|다양한 효과가 있는 식물의 물질|악마에게 납치된 식물|악마와의 계약|어느 쪽이 조종하는 것일까|식물 자신도 강화한다|싸우며 공생한 균과 식물의 역사|콩과 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 관계|공생에는 피나는 노력이 들어간다|뿌리혹박테리아를 맞이하는 콩과 식물의 자세|보이기 위한 우정|공생 으로 식물이 태어났다|새로운 공생|당신이라는 이름의 생태계 제4라운드 식물vs곤충 정면충돌은 통하지 않는다 막강한 적을 물리치는 유일한 수단, 독살|식물이 만든 화학무기|유럽에서 창가에 꽃을 장식하는 이유|왜 편식하는 곤충이 많을까|독을 이용하는 나쁜 녀석들|철저하게 이용한다|악취도 효력이 없다|약한 독을 사용한다_먹히는 척하면서 쫓아내기|식욕을 감퇴시키는 작전|먹어야 살 수 있다_곤충의 반격|어부지리를 얻은 인간|알로 꾸며 속인다|천적에게 SOS 신호를 보낸다|의도치 않은 영웅의 등장|경호원을 고용한 식물|입주 경호원을 고용한다|해충이 식물의 경호원을 회유하는 방법|적조차도 이용한다|서로 속이는 것이 이득인가 제5라운드 식물vs동물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식물이 살아가는 법 거대한 적, 동물의 등장|식물은 어떻게 공룡에 대항했을까|속씨식물의 확대와 공룡시대의 종언|속씨식물을 먹는 공룡|유독식물이 공룡을 쫓아냈다|새로운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적이 죽길 바라기보단 함께 진화하기|독을 극복한 초식동물의 진화|모든 식물이 유독식물이 아닌 까닭|가시로 자신을 지킨다|악귀를 내쫓는 가시의 수수께끼|독과 가시 둘 다 겸비한 식물|초원에 사는 식물의 진화|초식동물의 반격|자세를 낮춰 자신을 지키는 볏과 식물의 방어 전략|역경을 이용하는 볏과 식물의 비법|먹힘으로써 이용하다|겉씨식물의 등장|새로운 시대의 도래|초록은 멈춰, 빨강은 가라|동료를 엄선한다|레몬의 신맛에도 이유가 있다|독성분으로 독식을 막는다|역시 씨방은 먹지 못하게 한다|사과의 차별화 전략|동물도 이용할 수 있다 제6라운드 식물vs인간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끝없는 겨루기 식물에게 유인원은 어떤 존재였을까|인류의 극적인 발전|볏과 식물은 인류의 아군이다|식물의 보호제인 독성분을 이용하다|아이들이 쓴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약한 독성분으로 생기를 되찾는다|유독 성분 없이는 살 수 없다|유독 성분은 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인간을 감쪽같이 속인 농작물의 음모|끈질긴 반항아의 등장|비슷하게 변화시켜 제초를 극복한다|잡초를 뽑으면 잡초가 증가한다?|인간에게 들러붙어 살아간다|인간이 만들어낸 식물, 잡초|인간과 잡초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다_제초제의 개발|제초제도 듣지 않는 슈퍼 잡초의 출현|좋은 경쟁자로 싸워나간다 마치며 싸움 속에서 |
1,
식물을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태양을 향해 나뭇잎으로 펼치며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화초. 때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라는 식물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동서고금의 성인들은 식물처럼 사는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하기도 했다.
- p.11
나는 지금 슬프다. 이유 같은 건 없다. 때로는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 그런 슬픔을 느끼곤 한다. 무기력한 삶에서 건져낼 수 있는 건, 바로 그 감정이란 놈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식물을 보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처럼, 감정이란 놈은 나를 저절로 치료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슬픔이란 감정은 마치 식물들의 싸움을 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생존과의 싸움에서 치열한 투쟁을 하기로 한다. 이 무기력한 삶에서 처절한 전투의식을 발휘한다. 싸우는 식물은 그렇게 나의 싸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2.
가지를 뻗고 우거지게 해서 서로 공간을 빼앗려고 격렬하게 싸우는 식물들. 그러나 식물의 싸움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땅속에서는 더욱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식물은 뿌리를 뻗으면서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그럼으로써 주변의 식물에 피해를 주거나 다른 식물의 발아를 방해하며 다른 식물을 격퇴한다. 이처럼 화학물질을 통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작용' 혹은 '알렐로파시'라고 한다. 알렐로파시는 그리스어로 '서로 감수한다'라는 뜻의 조어다. 따라서 본래는 식물끼리뿐만 아니라 식물과 미생물 혹은 곤충끼리나 미생물끼리 등 모든 생물 사이의 간섭 작용을 의미한다.
-pp. 34~35
보시다시피, 『싸우는 식물』은 식물들의 격렬한 싸움을 예고한다. 식물들끼리도 싸우고, 식물은 동물과도 싸우며, 심지어 인간과도 식물은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싸움은 서로에게 유익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식물의 싸움은 자신을 지키이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되긴 하였으나, 이타적인 마무리로 끝이 나는 것이다. 훈훈한 싸움이다.
3.
사실 모든 식물이 많든 적든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방출해 주위 식물을 공격한다. 이렇게 서로 화학물질을 뿜어내는 화학전쟁은 늘 벌어진다. 그러나 어떤 식물이 내보내는 화학물질에 다른 식물이 쉽게 당한다면 싸움이 되지 않으니 주위 식물은 그것을 방어하는 구조로 무장해 피해를 막는다. 이렇게 공방의 균형이 잡히면 겉보기에는 타감작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양미역취외 싸우면서 진화를 거듭해온 주위 식물은 양미역취가 뿜어내는 독성분을 방어하는 구조가 발달했다. 이렇게 해서 균형이 잡혔으니 양미역취만이 땅을 독차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 P.38
식물들은 혼자서 독식하지 못한다. 어떤 식물이 혼자서 독식하려 애쓴다면, 그 혼자서 독식하려 애쓰는 식물을 공격하는 식물 또한 존재한다. 그러므로 식물들의 싸움은 어찌보면 공평하다. 치열한 감정싸움 같은 거, 그런 거,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매일, 날마다 기쁘기만 한 인생, 그거 별로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4.
질경이와 별꽃에는 사람에게 밟히는 일이 더는 역경도, 견뎌야 하는 고난도 아니다. 사람에게 밟혀야 종자를 퍼뜨릴 수 있으므로 밟히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해진다. 길가의 질경이와 별꽃은 도리어 지나가는 사람이 밟아주길 원한다.
- P.62
때로는 사람과 부딪혀야 할 때도 있다. 항상 내 맘에 드는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다. 그런 만남이 잦아진다면, 더 이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역경이나 고난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그 만남을 현명하게 대처했을 때에만. 그런 현명한 만남을 가지고 난 후에는 오히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도전의식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식물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의미까지도 『싸우는 식물』은 보여준다. 식물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5.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면으로 충돌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막강한 적을 힘없는 자가 물리칠 수단이 하나 있다. 독살이다. 막강한 권력자가 의문스러운 죽임을 당할 때는 역사책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그 뒤에는 독살이 있을 때가 적지 않다.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힘이 없는 식물이 막강한 적인 해충을 쓰러뜨리려고 먼저 생각하는 방법이 독살이다. 따라서 식물은 온갖 독성 물질을 조합해 자신을 지킨다.
- P.112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으나, 힘은 없을 때, 그때는 그 사람이 어떤 짓을 할 지 모르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일 필요도 있다. 식물이 독성을 품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그냥 무작정 먹거나, 무작정 없애려고 하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독성을 어르고 달래서 적당히 순화시킬 때, 식물의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그 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모든 생물을 치료하기도 한다.
6.
자연계에 상부상조하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생물도 자기 좋은 대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든 서로 득이 되는 관계가 구축되면 나쁠 것은 없다.
기생벌은 식물을 도울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식물이 SOS 신호를 내보내면 해충을 퇴치할 정의의 아군이 달려오는 구조가 되었다. 식물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 P.141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타적이야,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야, 라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이익이다. 이익의 범주에는 물질적 이익만 있지는 않다. 감정적인 이익도 이익의 범주에 속한다. 식물은 누군가를 도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식물은 그렇게 함으로서 모든 생물을 도와주고 있다. 그 도움의 범주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이 얼마나 오묘한 삶의 법칙일까!
7,
꽃은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고, 곤충은 그 대신 꽃가루를 운반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 관계인가? 그러나 자연계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계다. 서로 도와야 한다는 도덕심은 아예 없다. 반드시 우직하게 돕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곤충을 속여 꽃가루를 옮기게 하는 식물도 있다. 곤충은 꽃향기를 맡고 찾아온다. 향기가 난다는 것은 거기에 꿀 같은 먹이가 있다는 곤충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향기만 풍기고 꿀은 없는 식물이 있다. 그 예로, 좋은 향기를 풍기는 천남성은 파리에게 꽃가루를 운반하게 한다. 천남성에는 암그루(자주)와 수그루(웅주)가 있는데 암그루는 꽃가루를 옮겨온 파리를 꽃으로 유인해서는 파리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 안에 가둔다. 그러면 갇힌 파리가 출구를 찾아 날뜀으로써 수분하는 것이다. 공생과는 거리가 먼 잔혹한 처사다.
- p.150
정말로, 끔찍한 처사다. 결국, 파리를 납치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식물이 있다는 것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다. 어쩌면, 식물의 세계에서는 끝나지 않을 인간과의 교감을 위해 그들만의 법칙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8.
어린아이들은 달콤한 과일은 좋아하지만, 쓴맛이 나는 피망이나 여주는 대부분 싫어한다. 이것은 생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달콤한 과일은 식물이 먹으라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달콤한 설탕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해가 되지만, 자연계에 있는 단맛은 위험한 것이 없다. 또한 인간은 식물이 만들어낸 독성분을 '쓴맛'으로 감지한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들이 쓴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다. 먹히고 싶지 않은 식물과 먹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 사이의 이해가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떠한가. 식물이 일부러 만들어낸 독성분인 쓴맛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쓴맛이 있는 채소를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어른의 취향을 식물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p.210
내가 쓴맛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이 희망적인 말씀. 고로 나는 쓴 채소도 먹지 않는다. 다만, 쓴 맛이 나지 않는 채소는 먹는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9,
식물은 꽃가루를 옮기려고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고, 씨를 운반해주는 새를 위해 달콤한 열매를 준비했다. 인간에게 맛있는 채소와 과일을 준비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다. 인간이 식물을 마음껏 개량해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더 먹히려고 식물 자신이 진화해온 것은 아닐까? 인간은 식물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식물이 인간을 감쪽같이 속여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18
어떤 누군가는 누군가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안간힘을 쓰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의 수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변수라는 것이다. 그 변수에는 사람의 감정, 신의 능력, 인간의 놀라운 힘,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힘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를 이용하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저 식물의 기막힌 반전처럼.
10.
살벌한 자연계에서 동맹을 맺기 위해 식물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식물은 균류와 공존 관계를 구축하고자 먼저 자신의 체내에 균류를 불러들였다. 곤충과 공존 관계를 쌓으려 꽃가루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곤충의 먹이인 꿀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새와 동물에게 씨의 운반을 부탁하고자 과일이라는 매력적인 선물을 먼저 주었다.
다른 생물과 공존 관계를 구축하려고 식물이 한 일, 그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우선하고 먼저 챙겨줌으로써 서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식물은 이 가르침을 설파한 예수가 지상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이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렀다.
- P.233
이제 드디어 『싸우는 식물』의 마무리에 왔다. 식물의 싸움을 보다가, 나의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감정과의 사투는 그렇게 끝나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에게 유익한 일을 먼저 하라는 식물의 싸움은 예수님의 진리로 귀결된다. 내일의 내가 잘 사는 길,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의 유익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길이다. 나눔을 실천함으로서 생명을 보존하고 끝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식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글을 올린다. 이 글을 쓰는 것이, 1차적으로는 누군가를 위한 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양심 있게 밝히면서!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이 아닌, 도서관에서 빌린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김선숙
더숲/2018.11.2.
sanbaram
우리는 식물을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식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러나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우리 눈에 식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싸우는 식물>은 우리 주변의 식물 특히 잡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저자는 농업생태학, 잡초 과학, 농업 연구에 종사하면서 저술과 강연으로 대중에게 식물의 매력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다. 오카야마대학 대학원 농학 연구과에서 잡초생태학을 전공하고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시즈오카현 농림기술연구소 등을 거쳐 현재 시즈오카대학 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쓴 책으로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식물학이야기>, <풀들의 전략>, <이토록 아름다운 약자들>,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도시에서, 잡초>, <잡초의 성공전략> 등이 있다.
<싸우는 식물>은 식물의 시각에서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고, 자연계의 공존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내용은 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 식물 vs 식물에서 투쟁하는 식물들을 다루고, 2. 식물 vs 환경에서는 고난을 이겨내는 싸움의 기술을. 3. 식물 vs 병원균에서는 식물의 방어태세를 설명하며, 4. 식물 vs 곤충에서는 정면충돌은 통하지 않는다. 5. 식물 vs 동물에서는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식물이 살아가는 법을 설명하며, 6. 식물 vs 인간에서는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끝없는 겨루기를 내용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다.
“메꽃의 성장 속도는 나팔꽃보다 더 빠르다. 나팔꽃은 두 개의 떡잎이 나온 뒤 본잎이 나오고 나서 덩굴부터 뻗어간다. 그러나 메꽃은 다르다. 놀랍게도 쌍떡잎이 나온 후 본잎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덩굴부터 뻗는다. 경쟁 식물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성장하려고 먼저 덩굴을 뻗는 것이다.(p.16)” 잎이나 줄기 못지않게 땅속에서 벌이는 보이지 않는 싸움은 치열하다. 식물은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이고자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데, 마찬가지로 다른 식물도 살아남고자 뿌리를 뻗는다. 한정된 땅 속의 수분과 영양분을 서로 빼앗으려고 경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식물간의 경쟁에서 어떤 식물이 방출하는 물질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할 때 쓰인다. 호두나무나 적송 아래에는 덤불이나 다른 나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호두와 소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물질이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기(타감작용) 때문이다.(p.35)”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주로 피는 양미역취는 보통 1-1.25미터까지 자란다. 일본의 양미역취는 보통 2-3미터나 된다. 그런데 일본에서 최근에는 50센티미터 정도일 때 꽃을 피우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어째서 그토록 왕성한 번식력을 보이던 양미역취가 다소곳해졌을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자가 중독’이다. 양미역취는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로 주위 식물을 차례로 몰아내고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다른 식물이 없으니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 양미역취의 독성분이 그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 자기의 성장을 방해하게 된 것이다.
“광합성은 햇빛이 있는 낮에 이루어지므로 식물은 수분의 증발이 심한 낮에 기공을 여닫는다. CAM 광합성 장치는 흡기용 장치를 별도로 분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즉, 기온이 낮고 수분의 증발이 적은 야간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고 농축하여 모아둔다.(p.53)” 낮에는 기공을 완전히 닫고, 저장한 이산화탄소를 공급하여 광합성을 한다. 이렇게 낮과 밤으로 장치의 기능을 구분하여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 식물이 사막에 사는 선인장이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식물은 생존해 왔다. 질경이와 별꽃은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밟혔을 때 신발이나 발에 붙어 씨를 퍼트린다. 질경이와 별꽃에는 사람에게 밟히는 일이 더는 역경도, 견뎌야 하는 고난도 아니다. 사람에게 밟혀야 종자를 퍼뜨릴 수 있으므로 밟히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해진다. 길가의 질경이와 별꽃은 도리어 지나가는 사람이 밟아주길 원한다.
“식물은 병원균에서 나오는 유도체를 감지하고 방어 체계에 시동을 건다. 그때 병원균은 방어 체계가 작동되지 않게 하는 물질을 방출한다. 이것을 억제인자라고 한다. 이렇게 병원균은 억제인자를 이용하여 식물의 유도체 감지장치를 고장 낸다.(p.75)” 식물의 잎 표면은 두꺼운 왁스 층으로 씌어 있다. 이것이 성벽처럼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다. 게다가 병원균은 수분이 있으면 번식하기 쉽다. 그러므로 식물은 잎을 왁스로 코팅해 젖지 않게 한다. 이렇게 해서 적이 공격할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또한 왁스 층 아래의 벽에는 항균물질을 축적해 둔다. 그러나 식물에도 침입하기 쉬운 입구가 존재한다. 그것이 ‘기공’이다. 식물의 잎 뒷면에는 기공이라는 호흡하는데 쓰이는 환기구가 있다. 이 기공이 병원균의 침입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엽록체는 원래 독립된 생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엽록체는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라고 불리는 세균이었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단세포생물에 들어가 공생하게 된 것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연구에서 지지하는 ‘세포 공생설’이다.(p.103)”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한 생물 일부가 그다음에 시아노박테리아와 공생함으로써 엽록체를 손에 넣었다. 이렇게 해서 미토콘드리아만을 지닌 동물과 미토콘드리아와 더불어 엽록체를 지닌 식물이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창가에 많이 장식하는 꽃은 제라늄이다. 단순히 거리를 장식하려고 제라늄을 놓는 것은 아니다. 제라늄으로 장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라늄은 향기가 있어 벌레가 싫어한다. 그것을 이용해 집 안에 벌레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자 창가에 장식한 것이다.(p.114)” 또한 제라늄은 벌레를 퇴치함으로써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에서 집을 지키는 액막이로서의 임무도 담당했다. 한편 쥐방울덩굴은 아리스톨로크산이라는 독성분으로 자신을 지키는 독초다. 놀랍게도 호랑나빗과에 속하는 사향제비나비 유충은 독초인 쥐방울덩굴의 잎을 먹고 산다. 쥐방울덩굴의 독성분을 먹을 뿐 아니라 이 독성분을 자기 몸속에 축적한다. 포식자인 새는 이 독성분 때문에 사향제비나비 유충을 잡아먹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 사향제비나비는 쥐방울덩굴의 유독 성분을 이용해 자신을 지킨다.
“인간 같은 포유동물은 독성이 있는 것을 ‘쓴맛’으로 인식하고 거절하지만, 파충류는 독성 물질에 둔감하다고 한다. 공룡도 유독식물을 식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섭취해버린 것은 아닐까?(p.160)” 어쩌면 공룡 멸종의 직접적인 계기는 소행성의 충돌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식물의 진화에 따라 공룡이 차츰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유독 성분을 입에 넣으면 혀가 감지하여 쓴맛이나 매운맛을 느낀다. 그 덕에 독성분을 먹지 않고 뱉어낼 수가 있다. 인간의 미각은 음식을 맛보려고 발달한 것이 아니다. 영양가가 높고 안전한 것은 달콤하고, 해로운 것은 씁쓸하다는 것을 알고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고자 획득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는 것으로 유명한데, 유칼립투스는 독성 식물이다. 코알라가 유칼립투스밖에 먹지 않는다는 것은 독초만을 먹이로 삼는다는 뜻이다. 코알라는 맹장이 2미터나 되는데, 이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길다. 이 맹장 내의 세균이 유칼립투스의 독을 해독한다.(p.165)” 이처럼 포유동물도 식물이 함유한 유독 성분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지는 않고 그에 맞춰 진화를 하게 된 것이다. 호랑가시나무는 젊을 때만 가시가 있다. 노목이 되면 가시가 없어지고 잎이 둥글어진다. 나무가 늙으면 가시를 잃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삐쭉삐쭉한 잎은 동물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지만, 삐쭉삐쭉한 만큼 잎의 면적은 작아진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는 가능한 한 잎을 펼쳐서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 그래서 키가 작은 젊은 나무일 때는 가시로 잎을 보호하지만, 나무가 커져 동물에게 먹힐 걱정이 없어지면 불필요한 가시는 없애고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한다.
“‘멈춤’ 신호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빨간색’으로 정해졌다. 파장이 긴 붉은색 빛은 다른 색 빛보다 멀리까지 닿기 쉬운 성질이 있다. 그렇기에 멀리서도 인식되기 쉽게 열매는 붉은색으로 바뀌는 것을 선택한다. 또한 식물은 녹색을 띠므로 녹색의 정반대 색깔인 빨간색은 특히 눈에 잘 띈다.(P.187)” 덜 익은 열매는 잎과 같은 녹색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한 단맛이 아니라 오히려 씁쓸한 맛이 난다. 이것은 씨가 아직 익지 않았을 대 먹히면 곤란하므로, 쓴맛 물질을 축적해 열매를 지키는 것이다. 예컨대 떫은 감에 함유된 탄닌이나 아직 덜 익은 녹색 여주에 포함된 모모르테신과 카란틴은 열매를 지키는데 쓰이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자연계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다. 물론 규칙도 도덕도 없다. 모든 생물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상처를 받으며, 서로 속이고 죽이면서 끝없는 싸움을 벌인다. 거기에는 죽이느냐 죽임을 당하느냐하는 의리 없는 싸움뿐이다.(p.232)” 식물은 균류와 싸운 끝에, 균류의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닌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꽃가루를 노리는 곤충은 꽃가루의 운반책으로 쓰며 공생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또한 동물과의 싸움을 통해 씨방이 먹히는 피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밑씨를 지키던 씨방을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씨방을 비대하게 하여 열매를 만들고, 동물과 새에게 먹이로 주는 대신 씨를 옮기게 진화 했다.
“다른 생물과 공존 관계를 구축하려고 식물이 한 일, 그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우선하고 먼저 챙겨줌으로써 서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p.233)” 그런데 인류는 어떤가? 인류는 전 세계의 자연을 정복하며 다른 생물을 철저히 무찔렀다. 이제 인류는 단 하루에 100종의 생물을 멸종으로 내몰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 주변의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