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문을 열면
성당의 종탑과 이끼 낀 돌층계와
언덕길이 보이는 곳,
가끔 까치들이 산책 나오는
잔디밭과 채마밭이 보이는 곳,
수녀원을 다녀가는 손님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웃음소리가
음악으로 들려 오는곳
나는 이방을 '꽃자리 선물방' 또는 '누구라도 시인방'
이라고 부른다. 나는 매일 이 방에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글을 쓰고 가끔은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만난다.
이방을 다녀가는 이들에게 나는 솔숲에서 주운 솔방울이나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가비들, 몽당연필이나 앙증스런
색종이 상자를 작은 선물로 준다.
내게 말없이 참을성을 가르쳐 주는 꽃과 나무들,
수도원 식구들, 독자들, 친지들........
모두를 다시 소중한 선물로 받아 안으며 나는 오늘도
선물방 주인이 된다.
편지쓰기
내 일생 동안
매일 매일
편지를 썼으니
하늘나라에 가서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쓸까
내가 처음으로
너를 좋아할 때의
설레임으로
따뜻함으로
편지를 써야겠다
한때는 목숨 걸고
힘들게 글을 썼지만
하늘나라에서는
더욱 즐겁게
여유있게
담백하게
죄없이 순결한
편지를 써야겠어
너는 답장 대신
흰구름을 올려다보렴
--- p.72-73
나를 위로 하는 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 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 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 본문 중에서
꽃샘바람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짐짓 모른체하던
어느 옛친구를 닮았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함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얄밉도록 오래 부는
눈매 고운 꽃샘바람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
--- p.51, --- '꽃샘바람' 전문
건강하지만 인색한 사람들
늘 말로만 그럴듯하게 살아 있는
자비심 없는 사람들 모습속엔
분명 내 모습도
들어 있는 걸
나는 알고 있지
정말 왜 그럴까
왜 조금 더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토록 이기적일까, 우리는......
--- p.69
*삶과 시
시를 쓸 때는/ 아까운 말들도/ 곧잘 버리면서
삶에선/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열매를 맺어야 하리
종이에 적지 않아도/ 나의 삶이 내 안에서/ 시로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맑은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로소/ 살아있는 시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
*건망증
금방 말하려고 했던 것/ 글로 쓰려고 했던 것/ 잊어버리다니
너무 잘 두어서/ 찾지 못하는 물건/ 너무 깊이 간직해서/ 꺼내 쓰지 못하는/ 오래된 생각들
하루 종일 찾아도/ 소용이 없네
헛수고했다고/ 종이에 적으면서/ 마음을 고쳐 먹기로 한다.
이 세상 떠날 때도/ 잊고 갈 것/ 두고 갈 것
너무나 많을 테니/ 미리 작은 죽음을/ 연습했다고 치지 뭐.
--- p.
*삶과 시
시를 쓸 때는/ 아까운 말들도/ 곧잘 버리면서
삶에선/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열매를 맺어야 하리
종이에 적지 않아도/ 나의 삶이 내 안에서/ 시로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맑은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로소/ 살아있는 시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
*건망증
금방 말하려고 했던 것/ 글로 쓰려고 했던 것/ 잊어버리다니
너무 잘 두어서/ 찾지 못하는 물건/ 너무 깊이 간직해서/ 꺼내 쓰지 못하는/ 오래된 생각들
하루 종일 찾아도/ 소용이 없네
헛수고했다고/ 종이에 적으면서/ 마음을 고쳐 먹기로 한다.
이 세상 떠날 때도/ 잊고 갈 것/ 두고 갈 것
너무나 많을 테니/ 미리 작은 죽음을/ 연습했다고 치지 뭐.
---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