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나, 여행지에서 욕실에 들어갈 때, 나의 등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라 침을 꿀꺽 삼킨다. 좌우의 어깻죽지부터 허리 중심부에 걸쳐 마치 V자를 그려 놓은 것과 같은 흉터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았던 수술자국이다.
첫 수술은 유치원 때였다. 사람의 뼈가 자라는 속도는 근육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한다. 팔꿈치 앞이 없는 나의 경우 그대로 방치하면 뼈가 근육을 뚫고 솟아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 현상이 유치원 때 시작되었다. 팔의 끝 부분에 빨갛게 화농이 잡히더니 드디어는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허리의 뼈를 들어내 팔 끝에 쐐기 모양으로 박아 넣어 뼈의 성장을 막는 수술이었다. 너무 어려서인지 그때의 기억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부모님은 다르시리라. 어린 나를 수술실로 들여보내야 하는 그 쓰라린 마음.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그 영원처럼 느껴지던 긴 시간. 그리고 몇 달이나 깁스를 한 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던 입원생활. 두분에게 그런 기억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내 팔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감자처럼 둥글고 몽톡했던 팔이 서서히 부풀듯 솟아났다.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상태는 심각해졌다.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통증이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더니 예상대로 뼈가 살을 찢으며 파고든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뼈의 성장도 활발해졌던 것이다.
--- p.60
주룩주룩 빗발이 거셌다. 눈물의 비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발표장으로 갔다. 5분도 안되는 거리. 별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도착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도 어머니께서 다녀오셨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 를 직접 체험하기는 처음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인파를 헤치고 게시판 앞으로 나아가... 이런 식의 광경을 상상했던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헤쳐나갈 만큼의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다른 대학 몇 군데에 합격한 사람들에게는 쏟아지는 빗속을 아침 일찍 찾아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녀석들하고 난 근본적으로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의미가 달라!' 터무니없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선 정경학부의 게시판으로 향했다.
'4664, 4664, 4664...'
수험번호를 입 속으로 되뇌어 가면서 게시판을 죽 훑어본다. 어, 어라, 이상한데, 몇 번씩이나 확인해도 틀림없다. 무슨 까닭인지 게시판에는 4664 라는 네 자리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혹시 내 번호가 6446 이었나? 의아한 마음으로 수험표를 끄집어내 다시 확인하지만, 수험표에는 분명히 4664 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합격한 것이다. 와세다 대학에. 바로 내가!!
--- p.200-201
어떤 의미에서 도리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장애라고는 모르고 살던 어떤 사람이 '당신의 아이는 장애아입니다.' 라는 선고를 받으면 어는 누구라도 낳아서 키워나갈 자신이 없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만약 내 뱃속에 있는 아이의 팔다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솔직히 말해 너를 낳았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더욱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 장애가 있긴 하지만 나는 인생이 즐거워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울적하고 어두운 인생살이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팔다리가 없는데도 매일 활짝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관계없는 것이다.
--- p.284
드디어 수영수업을 시작하는 날,'선생님과 함께 들어가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결국 그날은 수영장에 들어가지못했다. 수영복까지 갈아입고 근처까지는 갔지만 역시 너무 무서웠다. 선생님께서는 물속에서 '잠깐이라도 좋으니 들어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선생님도 그런 나를 이해해 주셨다.그러나 어떻게든 내가 물에서 스스로 뜰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만약의 경우 물에 빠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누군가 도와주러 올 때 까지는 최소한 물속에 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습하기를 몇번, 물위에 엎드린 채 얼굴을 물에 담그는 연습을 하고 있을때,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선생님이 나몰래 살짝 손을 놓았다.비록 몇분의 1초라는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그때 나는 분명히 떠 있었다. '봐,오토 떴잖니!!' 선생님께서는 별일 아닌데도 부풀려 칭찬해 주셨다.
6미터.내가 5년이나 걸려 헤엄칠 수 있게된 거리이다.
--- p.92
그러나 '모자 상봉의 그 순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아기....'
대성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을 염려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였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었지만 배 아파 낳은 아들, 한 달이나 만날 수 없었던 아들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어머니에게는 무엇보다 더 컷던 것이다.
이렇게 성공적인 '모자간의 첫 대면'은 곁에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감동 그 이상으로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그랬다. 어머니가 나를 만나 처음 느꼈던 감정은 '놀라움'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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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4월 6일. 활짝 피어난 벚꽃 위로 다가선 부드러운 햇살. 정말 따사로운 하루였다. `응애! 응애!` 불에 데여 놀란 것처럼 울어대며 한 아이가 갓 태어났다. 건강한 사내아이였고 평범한 부부의 평범한 출산이었다. 단 한 가지, 그 사내아이에게 팔과 다리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선천성 사지절단. 쉽게 말해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는 장애아`였다. 출산과정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당시 떠들썩하게 문제가 되었던 살리드마이드를 잘못 복용해서 생겨난 결과도 아니었다.
원인은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간에 나는 초개성적인 모습으로 태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놀라게 하다니, 그건 나말고는 복숭아에서 태어난 동화의 주인공 모모타로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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