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5월 초였다. 나는 그때부터 메그의 임신을 짐작했다. 한 보름쯤 지났나, 메그가 의약품 통로에서 임신진단기를 집어 들자 내 짐작은 사실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 둘 다 출산을 겨우 6주 앞뒀고, 메그는 내 역할모델이 되었다. 메그를 보면 결혼생활과 엄마 노릇이 그렇게 쉬워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메그는 죽여주게 매력적이다. 마음만 먹으면 모델이 되고도 남았을 거다. 캣워크에서는 거식증 환자들 말고, 건강하고 섹시한 옆집 여자 타입 말이다. 왜, 세탁 세제나 주택 보험 광고에서 늘 꽃 핀 초원이나 해변을 래브라도종 개와 함께 달려가는 그런 여자들 있잖은가.
위의 모두가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나는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딱히 예쁜 편도 아니다. 아마 위협적이지 않다는 표현이 딱일 거다. 모든 예쁜 여자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덜 매력적인 친구가 바로 나다. 그 애들이 받아야 할 조명을 훔쳐가지 않고, 그 애들이 남긴 것(음식이든 남자친구든에 감지덕지할 사람.
--- p.13~14
처음 시작할 때는 어린 남자아이의 완벽한 방을 꾸밀 멋진 계획을 품고 있었건만, 내 상상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나를 잘 대해주기만 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는데.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기가 그 순간을 골라 내 신장을 세게 걷어찬다.
“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아기가 나를 다시 걷어찬다.
“또 그러면 차 절대 안 빌려줄 거야.”
때때로 아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암살자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잭한테 저지른 짓 때문에 나를 벌하고 있는 태아 고문자. 아기가 차고 팔꿈치로 찌르고 박치기를 할 때마다 복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초음파는 매번 내 영원한 수치를 일깨운다.
--- p.63
“너한테 말하려고 했어. 정말이야. 거의 매일 연락했지만 너는 내게 화가 나서 떨어져 있고 싶어 했잖아.”
“우리는 떨어져 있지 않았어! 헤어졌다고!”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지. 네 이메일을 뒤졌으니. 하지만 모르겠니? 그때 나는 틀림없이 임신했었을 거야. 호르몬이 미쳐 날뛰었던 거지.”
헤이든이 화면에서 몸을 밀어낸다. “맙소사, 젠장, 나는 이걸 감당할 수 없어!”
“네가 집에 오면 같이 이야기해보자.”
“안 돼! 당신하고 만나고 싶지 않아.”
“아기는 어쩌고?”
“나는 동의한 적 없어.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 알겠어?”
화면이 꺼진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헤이든을 도로 불러올 수 없다.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헤이든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냥 지금은, 내가 해군 막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제복 입은 남자한테 올가미를 씌워 낚아채려는, 군인에 환장한 그런 여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 생각은 틀렸다. 나는 헤이든을 사랑한다. 헤이든에게 내가 얼마나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헤이든은 한쪽 무릎을 꿇고 내게 결혼해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30년쯤 지나면 우리는 웃음 속에 이 일을 돌아보며 우리 손주들 얘기를 할 것이다.
--- p.86~87
저기 있다! 안도감이 밀려든다. 메그는 건강하다. 임신한 상태이다. 완벽하다. 주방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재료를 꺼낸다. 나는 마음을 놓고 나무에 등을 기댄다. 다시 행복해진다. 편안하게 숨을 쉬고 꿈을 꿀 수 있다.
내 가장 큰 단점은 사람들한테 너무 잘 끌린다는 것이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발견해서 그 사람한테 집착한다. 친구 되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내가 메그의 주변에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굴면서, 너무 가까워지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지켜봤던 거다. 나는 메그의 시간표, 친구, 습관과 삶의 리듬을 안다. 어디서 식료품을 사는지 안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숍, 가족 주치의, 미용사, 여동생, 그리고 부모님이 어디 사는지도 안다. 모든 관계와 교차로, 메그 삶의 지리학과 지형학을.
스파이를 하라면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놀랍도록 무색무취하고, 물처럼 모습을 바꿀 수 있으며, 공간에 스며들고 빈틈에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없이 부드러워지고 잔잔해져서 주위 환경을 반사할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 내 모습이 남의 눈에 띄는 일은 거의 없었고, 내 목소리가 남의 귀에 들리는 일은 더 드물었다.
--- p.110~111
킹덤 홀에서 질투가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라고 배웠건만, 나는 매일 그 죄를 짓는다. 나는 잘생긴 사람, 부자, 행복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인맥 넓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을 질투한다.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새로 엄마가 된 사람들을 질투한다. 나는 엄마들을 따라 상점들로 간다. 공원에서 엄마들을 지켜본다. 갈망 속에 엄마들의 유모차 안을 들여다본다.
내 생물학적 시계는 망가졌고 고칠 수 없다. 내 차례가 올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해머스미스 병원의 한 전문가는 내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남자의 뺨을 갈기고 고함치고 싶었다. 희망이라고? 희망은 원하는 걸 갖게 해주지 않아. 희망은 이렇게 속삭이지. “한 번만 더.” 하지만 결국은 실망시켜. “희망은 아침 식사로는 좋지만 저녁 식사로는 별로지.” 우리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야.
--- p.157~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