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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생활자

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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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에세이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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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22g | 135*195*15mm
ISBN13 9788959065400
ISBN10 895906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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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온함은 곧 깨져버렸다. 사건은 물을 사러 편의점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어젖힌 순간 벌어졌다. 문을 열자마자 갑작스레 옆방에서 문이 활짝 열리더니 몹시 흥분한 이웃 어른이 뛰쳐나왔다. 그러고 나서 말을 그야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얇은 벽 쪼가리를 통해 애인의 인기척이 흘러들어 갔나 보다. 이웃 어른은 적잖이 흥분한 탓에 자기 자신도 말을 버벅거렸다. 조용한 밤 공기를 뚫고 나온 단어들 중 몇 개만 간신히 잡아낼 수 있었다. “남자 새끼.” “혼자 사는 여자.” “어딜 감히.” “들이지 마.” “여자가.”
--- p.15~16

지금은 익숙해진 소음이지만 층간 소음 없는 아파트에서 살다 처음 겪은 소음의 충격은 스무 살 때 고시원에서였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설고 좁은 방 안에서 겨우 머리를 베개에 뉘었을 때 옆집(엄밀히 말하면 옆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벽 쪽으로 손을 뻗으면 그 방의 사람에게 내 손이 닿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르는 타인과 가까이 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일상을 사는 삶은 계속 이어졌다.
--- p.54~55

나도 나의 욜로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다. 몇 년 전부터 제대로 된 직장에서 20대들이 받는 평균 임금 정도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인생은 얼마나 욜로다워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막상 돈을 욜로답게 쓰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언론과 어른들의 기대에 충족하려면 요란하고 거창한 소비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이어야 하는데! 월급의 절반을 적금에 넣고 남은 돈의 절반은 월세로 나간다. 나머지 생활비에서 조금씩 빼놓은 돈으로 가끔 여행을 간다.
--- p.72

그러나 세상에는 더 많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1인 가구, 한부모가정, 비혼 가구,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 이주민 가정, 혈연이나 결혼으로 묶이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게이 커플, 레즈비언 커플 등.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원이나 동반자는 점점 더 늘어날 거다. 나의 가치관과 성소수자 친구들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렇게까지 실감한 적은 없었다. 응급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커다란 허탈감과 허무함, 두려움을 느꼈다.
--- p.98

넷플릭스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데 있다. 나는 웹툰도 드라마도 로맨스나 가족을 소재로 다룬 콘텐츠보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SF, 수사물 등의 장르를 선호한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에서는 해당 장르들이 거의 없고, 보통 가족과 재벌 이야기 혹은 로맨스가 주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여러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에서 나름 탄탄하고 흥미로운 수사물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넷플릭스의 다양성이 압도적이다.
--- p.140

그런데 죽은 지 한참 된 고무나무를 화분에서 덜어내는데, 아니 세상에, 고무나무 뿌리의 흙이 아직도 축축한 게 아닌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무나무는 맞바람 치지 않는 원룸에 살면서 통풍이 잘 되지 않자 흙이 마르지 않은 채 과습해 죽어버린 거였다. 매번 얼굴만 들이밀고 인사만 하고 예쁜 말만 해주고 죽으면 마음만 아파했지, 제대로 이 식물에 대한 공부를 했는지 성찰하기 시작했다. 테이블야자든 고무나무든 모든 식물은 종류에 따라 물이든 온도든 살아가는 조건이 다른 법인데 데려오기 전에 너무 공부가 부족했던 탓이다. 사람이 그렇듯 식물도 혼자서 알아서 그냥 크는 게 아닌데…….
--- p.181~182

이제 이것은 도시 괴담이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었고 경험이었다. 그제야 나도 자각하고 있지 못했던 나의 오래된 습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혼자 사는 여자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온통 공감할 것투성이였다. 대부분의 우리는 놀랍게도 비슷비슷한 습관을 갖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갈 때 항상 열쇠를 손으로 꽉 그러쥐는 게 습관이었다. 단단한 물체를 손에 쥐고 주먹을 날리면 그 타격이 훨씬 커진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다. 열쇠의 양 귀를 손안에 넣고 열쇠 구멍에 넣는 부분을 중지 옆으로 빼 단단히 그러쥐었다.
--- p.206

몇 년 전 공개된 성교육 표준안을 보고 크게 좌절했다. ‘탁탁탁’이 유행하던 10년도 훨씬 더 전보다 크게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성교육 표준안 아래에서 특히 여성의 성욕과 성기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될까? 혼자 산다면 누가 들어올 걱정도 없고 섹스토이가 담긴 택배 박스를 가족이 뜯어볼까 노심초사할 일도 없다. 이 기회로 자신의 몸에 대해 알아보자. 물론 혼자 사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살지 않는 많은 여성도 자위에 관한 편견을 깨고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혼자 하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10여 년 전의 ‘탁탁탁’이 그랬듯이.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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