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슬로건과는 달리, 어디에도 그냥 ‘살기 좋은 도시’는 없었다. 상황과 조건에 따른, ‘나랑 잘 맞는 도시’가 있었을 뿐. 그래도 도시와 사람이 똑같지는 않은 것이,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지만 도시는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었다.
내가 체코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반년 동안 살아 본 유럽에 딱 맞지는 않았다.
우리와는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유럽인들은 그들에게 알맞은 도시를 만들어냈고, 도시는 다시 그들의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실로 거대한 순환이었다. 그걸 본 나는, 우리가 도시를 바꾸고 도시가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순환에 미미하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유럽에서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았는데, 이에 대답부터 하자면 [얼마든지]이다! 당신이 유럽의 도시 스타일에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말이다. 그 판단에 도움이 되라고 유럽의 도시 스타일과 유럽인들을 여기, 이 책에 얼마간 담아내었다.
혹여 유럽에서의 파란만장한 체류기나 외국에서 한 달 살기의 묘미 따위를 기대했다면, 나는 그런 글을 쓰지 않았다고 분명히 일러두고 싶다. 오히려 이건 유럽의 도시에 겹쳐 보이는 ‘한국의 도시와 도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 「프롤로그,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중에서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우리 DNA 속에는 ‘열심히’ 해서, ‘빨리’ 성과를 내는 것이 입력된 듯했다. 전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한국의 토목공사와 건축공사속도는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같은 속도로서는 훌륭한 결과물을 자랑했다. 빠른 속도에서 오는 능률이 그만큼 매력적이란 사실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30년이 지나면 노후 아파트 소릴 듣는 우리네의 주택들. 유럽에선 백 년, 이백 년 된 건물이 비교적 최신에 지어진 편이라고 설명하던 교수님의 말씀이 내겐 신기하게 들렸다.
최근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나는 이것 또한 속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단순히 지역개발(또는 인기 상승)로 인해 세입자나 영세상가가 쫓겨나는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보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다.
--- 「그들이 사는 속도」중에서
그럼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떨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빠른 나머지, 인간 DNA의 업데이트 속도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이제 우리는 옆집 사람과 ‘내키진 않지만 불가피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 일도, 식량 조달도, 여가 생활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마주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현대의 도시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이웃과는 어색하게 지낼지라도 차로 한 시간 거리 떨어진 친구와는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무대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형태의 생활방식이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도시는 우리에게 선택권의 확대로 인한 자유를 선사했다.
어쩌면 도시는 우리에게,
무정이라는 저주를 내린 게 아니라 자유라는 선물을 준 걸지도 모른다.
--- 「도시의 저주, 어쩌면 선물」중에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군대와 아르바이트는 직장을 다녀보지 않은 내게도 사회생활이란 걸 맛보게 해줬다. 남의 돈 벌어 먹고살기가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며 세상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재밌으면 계속하고 힘들면 그만두지’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다는 건, 내겐 일종의 사치에 불과했다. 그저 버티는 삶에서는.
“저라고 뭐 이걸 천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람 다 똑같잖아요!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그래, 자고 싶고. 그러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아침에 눈 떴을 때 일어나기 싫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란 거죠. 근데 그다음이 달라요. 일단 일어나서 내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나는요, 점점 힘이 솟아요.”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라고 하고서는, 가이드님은 쌀국수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어쩌면 만만한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이나 사치, 재밌고 말고를 다 떠나서,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스케치북에 색연필을 갖다 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못한 나는 그저 용기가 없었던 거고.
--- 「마음속 스케치북에 빈칸이 남아 있는지」중에서
“천천히라도 계속 뛰어야 해. 힘들다고 걸어버리면 금방은 좋을지 몰라도 다시 뛸 마음이 사라지니까.”
10km 마라톤을 준비시키던 중학교 역사 선생님은 내게 음료수를 건네며 그렇게 말했었다. 레이알 광장(Placa del Rei)의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파란 하늘을 볼 때 문득 기억이 난 거지만, 그때는 당신의 말씀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흔히 듣는 것과는 다르게,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길게 보고 페이스 조절하는 게 비슷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목표 지점을 하나로 잡고, 기록을 재면서, 남들보다 빨리 가야만 하는 종목은 아니었다는 거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거기엔 빠름과 느림, 그리고 잠깐 멈춤과 되돌아가기도 포함된다.
그러니 부디,
타인의 속도로 자신을 재단하려 들지는 말자.
당신의 속도와 방향은, 이미 그 자체로서 의미 있기에.
---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니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