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근속한 그는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로 온 부장의 호출을 받는다. 저성과자로 분류돼 세 번째 재교육을 받기 직전이었다. 부장은 그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한다. 동료들조차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라고 있다는 걸, 교육 후에는 최종 평가서가 나올 거고, 평가 점수에 따라 업무나 업무지가 바뀔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몇 달 전 변두리에 있는 오래된 다세대 건물을 매입했고,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2교대로 일을 한다. 다세대 건물의 누수 수리비, 대출금 이자와 원금, 자동차 할부금, 연금, 보험료, 아들의 학비, 경조사비, 장인의 병원비, 노모의 시골집 수리비…….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그에겐 없다. 걱정과 두려움은 시시때때로 찾아오고, 미래라고 할 만한 건 너무 멀다. 하지만, 그것들이 그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아니다.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는 부장의 권고사직 제안을 거절한다. 결국 최하등급을 받고 타 지역 ‘거점 센터’로 발령이 나 인터넷 상품 영업 일을 하게 된다. 상품 계약을 못 한 달은 월급에서 30퍼센트가 삭감된다. 그는 그 일이 자신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곧 깨닫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의 공유기를 무료로 교체해준 일로 업무 촉구서 경고장을 받게 된다. 곧 두 번째, 세 번째 촉구서가 이어진다. 2주 뒤, 그는 다시 한 번 떠밀리듯 지방 소도시 시설1팀 ‘분기국사’로 발령 난다. 그곳에서 그는 인터넷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 일을 하며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휴가를 내고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하고 온 다음 날 무단결근 통보를 받게 되고 곧 출퇴근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된다. 그가 노조에 가입한다. 몇 달의 투쟁 끝에, 그는 본사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으로서 변두리의 한 소읍인 ‘78구역’으로 복직한다. 그리고 그곳에선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언제까지, 어디까지 밀려나게 될까? 이렇게까지 밀려나면서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를 결국 찾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