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인 당신의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보수예요, 진보예요?” 당신이 답하기를 “나야 보수지” 했다. 그러자 아들이 다시 물었다. “왜요?”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신의 답을 들은 중학생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간다면 당신은 진정한 보수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돌아서던 아들이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그럼 진보는 왜 싫으세요?” 이번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을 듣고 아들이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무장되어 있는 보수의 전사다. 이 책은 당신의 아들이 자라면서 당신과 이 대화를 더 깊이 있게 이어가고 싶어 할 때, 그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해 쓰여졌다.
--- p.4-5, 「서문」중에서
영국은 산업, 자원,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볼 때 산업혁명 같은 거대한 변혁이 일어나기 어려운 나라였다. 좁은 국토에 날씨도 나빴고, 특별한 자원도,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정말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약소국이었다. 무엇보다 기술의 면에서 세계에서 조금도 앞서가지 못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천지를 개벽시킨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영국이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것을 가장 먼저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자유’라는 것이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민이 자유를 향유하게 된 나라다.
--- p.27, 「1장 나는 왜 보수인가」중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이익을 위해 뛰게 하는 것, 그럼에도 그것이 저절로 공적(公的)인 선(善)을 이루게 하는 것이 바로 ‘자유와 선택의 원리’다. 이 지구촌에서 국민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곳,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양면에서 국민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나라들은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나라들에는 예외 없이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에게 풍요함, 다양한 선택, 그리고 자부심을 주기 때문이다.
--- p.52-53, 「2장 ‘자유’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중에서
보수가 추구하는 것이 ‘자유와 선택’이라면 진보가 추구하는 것은 ‘공평과 평등’이다. 자유를 통해 떡을 키우더라도 평등이 없으면 결국 그것은 소수의 사람의 배만 불리는 결과가 된다는 생각에, 자유를 다소 제한해서라도 공평과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를 가장 중요한 신성한 가치로 신봉하는 보수와 진보는 영원히 대립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관계다. 한 나라에서 ‘자유와 선택의 원리’에 비해 ‘공평과 평등’의 원리를 추구하는 세력이 너무 약할 때는 그 나라가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법칙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1960년대에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던 아시아에서도 드문 복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약자와 빈자를 챙기는 이념 그룹, 즉 ‘진보’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이 가져오는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다가 지금은 이미 수십 년 동안 후진국으로 머물고 있다.
--- p.70-71, 「3장 ‘보수 대 진보’의 숙명적 경쟁과 갈등」중에서
UN 산하에 SDSN(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해법 네트워크)이라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매년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하고 있는데, 2019년 한국은 156개국 중 54위를 기록했다. 경제적 풍요의 면에서는 10위권인 한국이 행복의 면에서는 54위라니 딱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걱정인 것은 이 순위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5년에는 47위였다. 아시아의 주요 국가 중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이 다 한국보다 높았다. 정치적 자유가 거의 없는 독재 국가 중국만이 우리보다 낮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보고서는 그 이유에 대하여, 한국인이 삶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선택’의 권리가 너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 p.81-82, 「4장 ‘자유와 선택’을 빼앗겨서 심하게 불행한 대한민국 국민」중에서
한국에서 보수가 받는 가장 큰 오해는 이 ‘보수’라는 단어가 자주 ‘수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재난은 ‘보수’, 즉 ‘conservative’이라는 개념이 서구권에서 유입되었을 때, 그 단어를 잘못 번역한 데서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번역 실수’였던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영어로 ‘conservative’라고 한다. ‘conserve’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보존한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보존한다는 것인가? 자유의 위대함을 알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이 자유라는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conservative’라는 말은 ‘보존’이라 번역되었어야 했다.
우리말에서 ‘보존(保存)’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킨다’는 뜻이다. 반면 ‘보수(保守)’는 ‘옛것을 지킨다’는 의미가 강한 단어다. 즉, ‘수구(守舊)’적 뉘앙스가 강하다. 그러나 ‘보수’가 지향하는 것은 결코 ‘수구’가 아니다. ‘보존’, 즉 꼭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자는 말이었는데 ‘보수’라고 하는 바람에 수구로 오해되고 오도된 면이 많다. ‘수구’로 오해를 받게 되면서, 많은 젊은이들, 또는 개혁주의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 p.151-152, 「5장 ‘보수’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중에서
보수의 입장은 모든 분야에서 가능한 한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적용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제 이외의 분야에서 명령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보도 경제에서는 다른 원리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몸으로 체험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보에는 여러 가지 부류가 있다. ‘자유와 선택의 원리’를 깡그리 부인하자는 공산주의자 같은 사람도 있고, 그에 비해 오바마처럼 예를 들어 의료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보도 있다. 비경제 분야에서 진보가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느냐에 대한 생각에 따라 진보도 여러 부류로 나뉜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경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즉 ‘명령의 원리’를 많이 작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지도자는 모조리 실패했다.
--- p.216-217, 「6장 보수로 융합되고 있는 진보의 경제 철학」중에서
결국 법, 즉 제도를 만드는 곳은 입법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제도가 ‘자유와 선택의 원리’에 입각한 제도인가, 아니면 ‘명령’에 입각한 제도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 입법부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의 책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특히 보수파 의원은 모든 입법 사항들을 ‘자유와 선택의 원리’라는 이념에 맞는지 검증하고 고민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 의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깨어 있는 진보’가 되고 싶다면…….
지금 우리나라 보수당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영혼이 없는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우리 보수당이 이념의 문제, 즉 ‘자유’, ‘선택’, ‘자부심’ 등의 이념적 단어를 쓰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면에서는 민주당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사실 그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다.
--- p.221-222, 「7장 보수와 진보의 국가 운영 방식의 차이」중에서
그에 비해 ‘보수’라는 가치는 이러한 역사적 산물이다. 다른 말로, 어떤 현자가 머릿속에서 임의로 만들어낸 그런 가치가 아니라 100여 년간 인류가 경험하고 목격했던 모든 사건에서 얻게 되었던 수많은 통찰과 깨달음의 누적적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보수’라는 가치다. 그런 면에서 보수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불과 100여 년 만에 인류를 분명히 엄청나게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의 가치도 중요하다. 이 세상에 ‘공정과 공평의 원리’도 필요하다. 문제는 많은 경우 ‘공정과 공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주 자유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 간에는 숙명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갈등은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 나라나 인류가 의미 있는 발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한마디로, 한 나라에서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갈등하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갈등이 없을 때다. 거듭, 보수와 진보는 역사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다.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수레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 p.272-273, 「8장 이 땅의 보수의 사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