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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 산책

유럽 인문 산책

: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리뷰 총점9.5 리뷰 20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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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434g | 137*202*20mm
ISBN13 9791190492416
ISBN10 119049241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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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과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알아내는 사람. 바로 시인이 아닐까요? 시인은 구름과 나무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비와 바람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만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이의 소통이 공감이라면 공감하는 인간의 원조는 시인이 아니겠는지요. 시는 말을 짧게 합니다. 많은 말과 긴 글은 지식을 자랑할 수 있지만 침묵이나 짧은 말 속엔 자연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 시냇물과 풀잎의 말을 알아듣는 교육을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 p.112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햇빛 밝은 거리에 나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빛을 나누는 일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도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내 삶인 겁니다. 나는 곧 당신입니다.
--- p.140

저는 커다란 시계 뒤편 그늘에 서서 창밖의 센강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는 중입니다. 기계장치에 지배당하지 않는 순수한 질적 시간 말입니다. 촌음을 아껴가며 질주하는 양적 시간의 나라에서 저는 이방인처럼 추방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안주하는 노예의 삶보다 길 떠나는 주인의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지금 몇 시입니까?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요? 중요한 건 이런 질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 순간,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릅니다.
--- p.152

『말테의 수기』는 사물의 뒤편을 꿰뚫어봅니다. 표피 안쪽의 세계,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려하기 때문에 시인은 종종 샤먼의 족보에 편입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위대한 시인은 숭고한 예술과 안타까운 정신병의 문틈에 곧잘 끼이는 겁니다. 새로운 길을 가려는 이의 운명이지요. 길은 먼저 가는 사람이 만드는 겁니다. 누군가 걸어가야 합니다. 길을 여는 사람. 그 최고 경지에 오른 이가 진정한 행인입니다.
--- p.157

빛과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광대 정치꾼들에게 속지 않기. 극단에 머물러 격분하지 않고 꿋꿋하게 조절하기. 파리의 아랍문화원 건물 내부를 거닐어보면 빛의 조리개 안쪽 세계를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라베스크를 통과하는 햇빛. 은은하게 누그러진 아름다움입니다. 삶은 결국 대립의 조절을 통해 조화에 이르는 길임을 새로 배웁니다. 정치는 불만을 가진 타협이지만 문학과 철학과 예술은 꿋꿋한 조절입니다.
--- p.194

순례길을 걸으면 스스로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기회가 생기지요. 동행하는 이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가운데 나와 대자연이 고독하게 마주하는 경험 말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이 되어, 점점 더 작은 점이 되어, 마침내 스스로가 무화되는 겁니다. 무화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된다는 뜻입니다. 길 가는 이의 본질은 고독입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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