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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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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도서]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저 좋은여름
10% 25,200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74g | 127*188*20mm
ISBN13 9791191905687
ISBN10 1191905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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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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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의 향을 흡수하는 일이다. 그가 사용하던 숟가락, 접시, 침대보를 내가 쓴다. 치약이나 샴푸, 세탁세제 따위도 얻어 쓴다. 그가 밑줄 그은 책을 읽고 그의 체형대로 모양이 잡힌 옷을 빌려 입는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서 나는 향이 같아진다.
--- p.24

이 집에서는 새것이 들어오면서 이유없이 헌것을 쫓아내지 않는다. 버려지는 것은 최소한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은 꼭 업사이클링 하는 것이 아네뜨의 방식이다. 물건의 쓸모는 여러 가지로 변신하여 아네뜨의 삶 안에서 돌고 돈다.
--- p.39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나는 쥴리와 아네뜨가 내어주는 정도에, 그들은 내가 받아들이는 정도에 만족한다. 취향이 같거나 목표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된다는데, 우리 셋은 만족의 지점이 비슷해 친구가 된 듯도 하다.
--- p.105

내 나이대면 지금쯤 한창 몰아쳐 일하고 자리를 잡을 시기, 어찌된 일인지 내 일상의 그물코는 더 성글어지는 것만 같다. 6년 전 캠프힐을 다녀온 후 확실히 그렇다. 조금 덜 완벽하게, 조금 덜 열심히… 한국에 돌아온 후 회사와 가족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렇게 저렇게 살아보며 6년을 지내는 동안, ‘이래도 되는걸까?’ 모아둔 도토리 하나 없이 겨울을 목전에 둔 다람쥐의 마음이 될 때도 왕왕 있다. 그럴 때면 내 인생의 도토리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것 외엔 불안을 잠재울 방법이 없다
--- p.108

체육시간에는 교실이나 운동장 스탠드를 지키는 아이였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던 각종 게임의 룰을 나는 전혀 모른다. 대신 ‘가만히 있는 것’에 익숙하고, 그것을 잘했다. 가만히 있으면 많은 것이 보인다. 아무도 신경 안 두는 곳에 놓인 아무렇지 않은 물건도 가만~~~히 보면 재밌기도 구슬프기도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면을 가지고 있다. 검정 카페트 위 어르신들의 옷걸이도 그렇게 가만히 보면 각자의 표정과 이야기가 비친다.
--- p.131

겪은 적 없던 행복을 누군가 톡톡 보내 주고 있다는 묘한 낌새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는 내가 원하든 말든, 준비되었든 말든 고려하지 않고 툭 보내고선 어떻게 대처하는지 빼꼼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런 것 어때? 피하지 않아도 돼. 가져 봐, 이젠.” 이불을 덮고 눈을 감자, 생일 다음의 날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소곤소곤,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 p.164

영화 [향수]에서 주인공 그르누이는 자신이 냄새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충격에 빠지고 방황한다. 그는 냄새가 좋은 사람들을 찾아 세상을 떠돌며 냄새를 수집하는 데 일생을 건다. 그동안 내가 친구와 그의 가족을 열심히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움직인 것은 그르누이의 방법 같았던 걸까? 그르누이는 결국 다른 사람의 좋은 냄새만을 모아 향수를 만들어 몸에 뿌린다. 향수 덕에 사람들에게 사랑받지만 그 향에 잠식당해 자기 존재를 없애 버리는 끝을 선택한다. 나는 비슷한 결말을 예감했던 것 같다. 이야기가 없이 태어난 나는 사는 동안 타인의 이야기를 탐닉하다가 때가 되면 흔적 없이 혼자 사라지는 것이다.
--- p.173

무엇을 만들지는 어떻게 살지를 말한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무엇을 남길지를 말한다. 내가 만들 탄생자수에 어떤 모티브가 채워질지 완성본은 누구도 모른다. 나의 스티치는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 p.175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사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마치 수면 위의 잔물결이 저 멀리까지, 우리가 알 수 없는 곳까지 닿는 것처럼.
--- p.181

물건뿐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나 말, 손길, 시선, 관심 하나하나가 사람에게 남겨져 영향을 준다는 생각도 우리는 같았습니다. 내 밖으로 꺼내어져 누군가에게 전달된 것이 인생에 평생 남겨질 이야기가, 유산이 된다는 것을요.
--- p.196

지금은 나 자신이 내가 바라는 나무의 씨앗이 되고, 사슬의 첫 번째 고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책이 될 수도,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대단한 각오는 없습니다. 잡동사니 같아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꼭 간직하고 싶은 보물상자이듯, 나와 닮아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는 어떤 것이 된다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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